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우선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청소를 한 뒤에 커피를 한 잔 내려서 책상에 앉는다. 오전까지 처리해야 하는 일 몇 가지와 오늘 꼭 읽어야 하는 책, 적어도 이번 주에는 들어야 할 강의와 읽어야 할 논문들. 그러고 나면 별로 하는 것 없이 오후 세시가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지금!이 오후 세시다) 요즘의 나는 그렇게 지낸다. 경력 쌓기, 생산성 향상과 자기계발, 보육 기관을 이용한 육아 아웃소싱, 회복을 위한 커피 한 잔 그리고 급하게 아이 픽업하기.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에 집중하자며 재택근무를 선택했지만, 여전히 '언젠가'를 꿈꾸고 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균형잡기란 여전히 어렵기만 하고, 그 사이에서 허둥대는 사이 가장 중요한 일들은 다른 모든 일에 시간을 쓰는데 쉬이 밀려난다. 예컨대 이런 것. 오늘 아침에도 아이의 등원시간은 복작복작했다. 아이는 엘리베이터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 했고, 지하주차장의 자동차들이 밤새 무사했던지, 단지 내 모든 나무들이 건강한지 살펴야 했다. 나무 안녕, 빵빵 안녕! 하며 연신 손을 흔들어대는 아이를 붙잡고 '선생님이랑 언니 오빠들이 채니를 기다리고 있대! 우리 어서 가볼까?'하고 재촉한다. 맞다. 그건 정말 재촉이었다. 그러다 문득, 니나의 한 마디가 떠올라 그것을 그만두었다. 엄마, 조바싱 내지 마요.
아이의 발걸음에 맞추어,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특별했다. 덕분에 나는, 아직도 개미가 멸종하지 않았네?(개미라는 존재를 자각하지 않은지 대체 몇해던가;ㅁ;...) 아파트 단지 안에 사과나무가 있었다니! 의외로 거미집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잖아? 하는 감탄을 내뱉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방향을 틀어버렸기 때문에 발견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최단거리'만을 유일한 길이라 믿으며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