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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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말은 이따금 뒤따라오는 말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의 것으로 만든다. 이를테면 '왜'가 '사는가' 혹은 '죽는가'라는 말과 함께 놓일 때. 삶이란 결국 무게를 견줄 수 없는 이 두 개의 질문이 번갈아 드나들며 파도를 만드는 어떤 해안선 같은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너무나도 평화로워서, 혹은 너무나도 단조로워서 그 해안선을 조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것들은 대개 극단의 상황에 이르러서야 드러난다. 적어도 전쟁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는 재난 소설이다. 하지만 그 재난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전쟁인지, 자연재해인지, 아니면 다른 종류의 어떤 것인지), 그 원인이 무엇이었던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어떤 일이 있었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건- 그들은 살아남았고, 살아가야 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상황이 어찌 됐건 간에) 앞으로도 계속,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황량한 세상은 생각보다 쉽게 왔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면서도 낯선 이를 마주하면 몸을 낮추고 상대를 유심히 살폈다. 그가 위험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판단된 다음에도,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우리 둘 다 살아남았네요'하는 인류애보다는 '둘 중 하나는 죽을지 몰라'하는 경계심이 더 컸다. 그것은 전쟁이든, 바이러스든, 자연재해든- 그 원인이 무엇이 됐든 간에 그것보다 더 큰 재앙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사는 세상에, '우리'가 없다는 것.

어른들은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말이란 감정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 같았다. 말이 길어질수록 비난과 원망처럼 차디찬 감정이 찰랑찰랑 흘러넘쳤다. 언성 높여 싸우거나 흉한 말을 내뱉는 것도 아닌데 대화의 끝은 자꾸 서늘해졌다. 살아남은 것도 죄고 살겠다고 도망치는 것도 죄라는, 너나 나나 몹쓸 인간이라는 자조와 책망이 눈빛에도 말투에도 깃들어 있었다. 안다. 불행해서 그렇다는걸. 죽음에 억눌려 있다는걸.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고 미래를 전망하기도 힘들어서라는 걸. 그래서 난 더더욱 불행을 닮아 가고 싶지 않았다. 삶을 업신여기고 싶지 않았다. 죽음이나 삶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을 어떤 잘못이나 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는 엄마의 죽음도 나의 삶도 견뎌 낼 수 없다. (본문중에서, 36-37쪽)

다행인 것은, 그곳에도 아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어린이는 아니지만, 아직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은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이 경험한 사회란 '학교'와 '가정'일 터. 나를 경계하는 사람보다는 나를 보듬어주는 사람이 많았던 환경일 것이다(물론 이들의 생활이 그리 원만치만은 않았지만). 어쩌면 그 점이,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린아이의 간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괴담이나 거리낌 없이 난무하는 살인과 인신매매 사이에서도, 삶을 가치롭게 여길 줄 아는- 오늘을 소중하게 대할 줄 아는 그 태도가.

상자를 열어 봤다. 립스틱이었다. (......) 도리가 내게 그것을 주어서 내가 그것을 얼마나 원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황량하게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끝도 없는 길 위에서, 불행과 절망에 지친 사람들 틈에서 나는 바로 그런 것을 원하고 있었다.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지만 나를 좀 더 나답게 만드는 것. 모두가 한심하다고 혀를 내두르지만 내겐 꼭 필요한 농담과 웃음 같은 것. (본문중에서, 42-43쪽)

재난 소설에서 재난의 종류와 그 경과를 싹 들어내고 나니, '사람들'이 더 잘 보였다. 그래서일까. 읽는 동안 여러 번 목이 타들어가듯 메말라졌고, 오아시스라도 만난 것처럼 물을 들이켰다. 커피와 쿠키를 책상 앞에 가져다 놓은 적도 있지만, 쉬이 손이 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 때로 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보다 더 공포스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긴장감이, 도리와 지나가 만난 이후에도 쉬이 꺼지지 않았다. 어쩌면 소설이 그것만으로는 해소가 되지 않을 질문을 던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예컨대 건지의 에필로그 같은 것. 평생 묻고 또 물어도 알 수 없는 그런 것.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걷고 걸었다. 위험은 수없이 많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땐 그게 전쟁인지도 몰랐다. 뭔지도 모르고 사람을 죽였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살아남는 것. 그게 가능할까. 그런 사람이 있을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세계는 뒤집어졌고 인류의 질서는 제로가 되었다.
생명은 여전히 고귀한가. 살인은 아직도 죄악인가. (본문중에서,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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