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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시대의 철학
김정현 지음 / 책세상 / 2018년 1월
평점 :
최근 등장하는 '성과 사회', '피로 사회', '불안 사회', '분노 사회' 같은 용어를 돌아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소진되어간다. 과잉 활동은 불안과 피로를 낳았고, 온전하지 못한 오늘들 사이에서 사색이란 너무 먼 이야기같다. 이 책 <소진 시대의 철학>은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분석하고 치유적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 주요한 개념들을 소개한다. 니체, 쇼펜하우어, 프롬 등 익숙한 이름들이 숱하게 등장하고 그들의 저서들이 계속해서 인용된다. 방대한 양의 참고문헌을 통해서 저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고민했던가를 엿볼 수도 있다.
활동적인 사람들의 주요 결점-활동적인 사람들에게는 흔히 고차적인 활동이 부족하다. 개인적 활동이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관리로서, 상인으로서, 학자로서, 즉 일정한 부류의 존재로서 활동하지만, 아주 특별한 개별적이고 유일한 인간으로서 활동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게으르다. (...) 활동적인 사람들은 돌이 구르듯 기계의 원리 같은 우둔함에 따라 구른다.- 모든 인간은 모든 시대가 그랬듯이 지금도 노예와 자유인으로 나뉜다. 왜냐하면 하루 시간의 3분의 2를 자기를 위해 쓰지 않는 사람은 노예이기 때문이다. (니체, 본문 125쪽에서 재인용)
삶이 불안할수록 '소유'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여기에서의 소유는 물건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대상이 된다. 근대의 도구이성은 우리의 생활 세계를 점령하고 식민지화하며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사물화하고자 한다. 성과주의의 분주함과 무정신성의 부산함 속에서 불안과 인간관계의 불통은 삶의 고통과 자아신경증을 초래하게 된다. 하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 생각해보건데, 사람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사회와 시대가 닦달하며 요구하는 성과나 외형적, 세속적 가치를 떼어내고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정 나의 삶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를 실현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주변 사람들과 진실한 만남 혹은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나와 상대를 함께 성장시킬 수 있다. 상생의 만남은 깨어있는 정신들이 나누는 생명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정 나의 삶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아마 우리는 평생에 걸쳐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할지 모르겠다) 무어는 현대인의 가장 큰 병폐가 '영혼의 상실'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영혼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영혼에 대한 지혜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건강과 장수, 맛집 탐방이 삶의 목표가 된 시대, 더 이상 깊은 생각을 하지 않으며 인내와 기다림의 미덕이 없어진 시대, 분노와 공격성의 분출이 너무 쉬운 시대. 아무런 향기도 없는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자문하지 않으면, 쉽게 시대의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어가 버린다.
어쩌면 니체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가장 고약한 적은 밖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다'고 쓴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던지 모르겠다. 밖에서 오는 자극과 사건 혹은 대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니 말이다. 이는 독일의 현대 철학자 슈미트가 '우리는 자기 삶을 의식적으로 이끌어갈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매 순간 깨어 있는 삶, 자신의 힘으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세에 대하여 생각하며, 오늘의 나는 어떻게 살고있던지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