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식량 - 인류는 자연환경의 위기에 맞서 어떻게 번성하는가
루스 디프리스 지음, 정서진 옮김 / 눌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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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두 달 간,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의 '대한민국 치킨전' 시리즈였다. 실제로 축산업에 종사하며 농축산업을 연구하고 있는 정은정 농축산사는 귀하디 귀한 음식이었던 치킨이 어떻게 불과 몇십 년 만에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인기 있는 음식이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그 시작은 편의점보다 많은 치킨집이어서 깔깔거렸지만, 닭이 대량으로 키워질 수 있었던 결정적 역할을 한 사료 이야기나 양계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마냥 깔깔댈 수만도 없었다. 그렇게 지난겨울을 보냈다.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양념치킨의 달콤한 끝 맛이 입가를 맴돌았다. 그리고 동시에, '식량'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란 종은 거의 늘 굶주림의 위협 속에서 살아왔다. 인간에게 '먹을거리'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에 '도대체 무엇을 먹으며 살아야 하나'에 대한 인간의 고민은 끝이 없었다. 이 책 <문명과 식량>은 바로 그 이야기, 인류가 채집하고 사냥하고 농사짓고 교역해 온 '식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위기와 성장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인류의 여정을 살펴보며, 그를 통해 인류의 놀라운 과거가 불확실한 미래를 성찰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 먹고 있는 것을 어째서 먹게 된 것인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류가 보다 많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기울인 온갖 노력들은, 우리가 먹고 있는 치킨이 실은 '옥수수로 키운 닭'을 '옥수수에서 뽑아낸 올리고당'으로 버무린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주는 충격과 비슷한 충격을 주었다)

 식량은 인간 활동의 모든 측면에서 궁극적인 에너지원이다. 석탄이나 가스 같은 기계를 움직이는 그 어떤 동력원보다 훨씬 중요하다. 식량이 없다면 도시, 교역, 요리, 언어, 미술품, 교향곡, 소설, 연극 등 우리가 다른 종과 뚜렷이 구분되는 다른 특징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야생 식물을 채집하고 짐승을 사냥하던 때부터 도시에서 식품을 사 먹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식량은 언제나 문명의 원동력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본문 중에서)

20세기에 이르러 인류는 차고 넘치는 식량을 생산하게 되었다. 거대한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한 이후, 농촌에서 공급되는 충분한 잉여 식량 덕분에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현대 문명의 암묵적 합의 속에서 농사가 아닌 다른 일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합의에 따르면, 계속해서 줄어드는 소수의 농업 종사자가 나머지 인구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이들은 공장이나 사무실, 가게에서 일하거나 다른 방식을 통해 현대 경제에 기여하게 된다. 사실 이것은 2018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라,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찬찬히 다시 생각해보면 슈퍼마켓은 인간이 평범한 포유류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도시에 사는 종이 되기까지 지나왔던 길고도 험했던 여정의 산물들을 품고 있다. 최초로 작물을 재배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던 때부터 도시나 교역, 새로운 비료나 수많은 혁신적인 사상과 방법들이 그 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인간이 불과 1만 2,000년 전에 농사를 짓기 시작한 종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실로 이는 대단한 성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이러한 풍요를 누리고 있을 뿐, 상당수는 식량 증가의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유한 국가라 하더라도 최하층에 속한 국민들 역시 풍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그 결과 오늘에도 여전히 매일 밤 굶주린 채 잠드는 인구수는 10억 명에 달하고, 전 세계 인구 13명당 2명이 영양 결핍을 겪고 있다. 식량이 충분한 이들조차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자연 훼손 역시 문제다.

문명과 식량의 발달사를 통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장기적이고 폭넓은 시각을 맛봤다. 채집인에서 농부로, 다시 도시인으로 진화하는 인류의 여정은 우리의 역사이기도 했고, 우리의 미래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상생해왔던가를 보여주는 흔적들이기도 했다. 나무가 빽빽이 자라던 자리는 빌딩 숲으로 채워진 요즘이다. 거대한 톱니바퀴 시대의 슬로건은 '더 많이, 더 많이'였지만 많다는 게 반드시 더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는 모순 그 자체일지 모른다.

어쨌거나 우리는 오늘의 위기를 성장을 위한 전환점으로 이어나갈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촉발된 거대한 변화가 과거의 사건들과는 다른 결말로 이어지지 않을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물론 그전에 우리 인류가 '잉여'에 대하여, 또 '양극'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찰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물론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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