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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이재의 초대를 받은 경윤은 그 단순한 메시지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재가 처음 말을 꺼냈을 때는 독한 종류의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 결행할 모양이었다. 이혼 세일이라니. 시간은 여섯 명의 친구가 며칠에 걸쳐 어렵게 정했고, 장소야 당연히 경윤이 격주로 드나들었던 이재의 집이었다. 크고 작은 살림들을 처분하는 게 일차적 목적이지만, 이재의 새 출발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정세랑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이혼 세일' 중에서)
그렇게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문을 열어주는 이재의 모습은 평소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다행한 마음이었다. 하긴, 이혼이 인생의 큰 사건이기는 하지만 인생이 무너질 일까지는 아니었다. 무너지지 않을 테니, 이혼을 결심한 걸 테고. 이재가 내어주는 차를 마시며 서로의 근황을 묻고, 건강을 묻고. 이런저런 경험담들이 가볍게, 또 무겁게- 혹은 무심하게 오갔다. '이혼 세일'은 "찻잔, 가져가고 싶은 사람 있어?"하는 가벼운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찻잔은 누가, 옷과 가방은 누가, 러그, 커튼, 세탁기, 청소기, 화장대 같은 굵직굵직한 가구와 가전도 팔렸다. 물건마다 덧없이 싼 가격을 포스트잇으로 붙여놓은 채, 이재는 더 주겠다는 제안에도 고개를 젓는다. 그런데 이거, 혼자여도 다 필요한 물건들이잖아-하는 친구의 말에 이재는 작은 캠핑 카라반으로 친구들을 이끈다.
"그냥, 결혼이 부동산으로 유지되는 거란 생각을 했어.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금액의 집을 사고, 같이 갚으면서 유지되었을 뿐인 게 아닐까.
그래서 한동안 동산만 가지고 살아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