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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양장) - 개정판 ㅣ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그 초조함과 불안함이 일찍 왔다. 그러니까 아마도 마리가 '나를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처음 만났던 뫼르소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고, 그 이후에는 괴팍하거나 조금 불안한 인물이었다면- 이번에는 뭐랄까, 부유하는 이미지에 맞닿아있었다. 맞다.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식을 끝내고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바다에 몸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때의 감각, 그러니까 세계의 중력이 조금은 무너지고 차가운 바닷물이 내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가 풀어놓는 그 기분이 소설 전반을 압도했다. 바다에 몸을 맡기는 것은 분명 이 세상의 일이지만, 이 세계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바닷속에서는 땅을 딛고 두 발로 서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법칙이 작동한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나는 바다에 몸을 맡기는 것이 두렵고, 또 무섭다. 상대를 모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것의 실체와 상관없이, 그것이 나를 언제고 집어삼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늘 안게 된다. '이방인'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방인'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단순히 제3국이 아닌 전혀 다른 풍토에서 사는 사람이고, 그 때문에 우리가 아는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뫼르소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그가 사는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계와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자기와 결혼하고 싶은지를 묻는 마리의 말에 '그건 하나 안 하나 같은 거지만 만약 네가 그걸 원한다면 우리는 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 65쪽)'라던 뫼르소의 대답도 낯설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 대답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것도 이 세계의 도덕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태양 살인은 가능한가'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날의 햇볕은 엄마를 묻던 날의 것과 똑같은 것이었고, 뫼르소는 그 뜨거움 때문에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었다.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을 때, 아랍인은 칼을 뽑아 뫼르소에게 겨누었다. 하지만 아랍인이 겨눈 것은 (뫼르소에게) 칼이 아니었다. 칼 위에서 반사되어 뫼르소의 이마를 찌른 빛이었다. 그 순간을 표현해낸 두 문장, "나는 이마에서 울려 대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희미하게, 여전히 내 앞의 칼날로부터 찔러 오는 눈부신 단검 말고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 불타는 칼은 내 속눈썹을 물어뜯고 내 눈을 고통스럽게 파고들었다.(본문 중에서, 87쪽)"를 곱씹어 보면 먼저 찔린 쪽은 뫼르소다. 뫼르소의 입장에서 다시 읽어보면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뫼르소의 태양 살인이 정당방위였다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우리가 뫼르소의 행동을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인 사건 뒤에 이유를 붙인다. 돈, 명예, 사랑 같은 것들이 주로 그런 이유가 된다. 사람을 죽여놓고, '태양이 눈부셔서요'하는 대답은 아무리 가해자의 입을 통한 것일지라도 이유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많은 이들이 걸려 넘어진다. 뫼르소는 대체 왜! 왜 아랍인을 죽였는가,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세계의 상식으로는, 옥죄어 오는 태양이 눈두덩을 땀으로 덮는다 한들- 그게 살인의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방인. 이 세계에 사는 이가 아니다. 해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이 그에게는 전혀 의미 없는 것일 수 있다. 그가 속한 세계를 알지 못하는 우리가, 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 세계의 프레임 안에서 설명하려니 자꾸 삐걱거렸던 것이다.
다시 읽은 <이방인>은 내게 그런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대체 왜 알 수 없는 것,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우리 상식이 통용되는) 설명의 체계 속으로 가져와서 설명하려고 드는 걸까. 우리는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밖의 세계가 있음을 쉬이 인정하지 못할까.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부조리'라는 세 글자로 못 박아버리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나를 깨운 건 바스락거리는 소리였다. 눈을 감고 있었던 탓인지 방 안의 흰색이 전보다 훨씬 환해 보였다. 내 앞에는, 그림자 하나 없었고, 물체 하나하나가, 모서리의 각들이, 모든 곡선들이 예리하게 눈을 에려 왔다. 엄마의 친구분들이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그들은 모두 십여 명쯤 되었고, 그 눈부신 빛 속으로 소리 없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본문 중에서, 23쪽
몇 번을 읽었어도 스쳐 지나갔던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장례를 기다리며 마주했던 빛은 그랬다. 조금은 졸린 듯, 몽롱했던 그의 세계로 어떤 소리와 빛이 들어온 것처럼- 그렇게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무엇으로 뫼르소는 저 세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나는 전보다는 조금 더 뫼르소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또) 생각했다. 고작 몇 십분 전에 저 세계에 살고 있는 뫼르소를 이 세계의 상식으로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부조리라고 써놓고는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