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 - 무민 골짜기, 시작하는 이야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토베 얀손 지음, 이유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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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었던 1939년 겨울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게 아무 쓸모 없는 일로 느껴졌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글을 쓰고 싶어진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동화여야만 했지요. (서문 중에서, 4쪽)

 

평온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는 무민의 세계는 제2차 세계 대전의 한 가운데에서 시작됐다.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몰랐고, 매일 겪어도 전쟁의 고통은 일상이 되지 못했다. 수많은 가족들이 흩어졌고, 다시 만날 날을 속절없이 기약하며 피난길에 올랐다. 이 책 <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는 그런 시대적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잔혹했던 세계 대전의 민간인 희생, 그로 인한 피난이 이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다.

무민의 엄마는 (세계 대전의 피난민처럼) 갖은 위험을 무릅쓰고 어린 아들과 함께 무민의 아빠를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너무 달거나 너무 썼던 위협들을 만나고, 그럴 때마다 예상치 못했던 도움을 받으며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아무리 아름답게 그려졌다 해도)(상상해보면) 쉽지 않은 과정인데, 그 안에 고됨보다는 온정과 사랑이 더 커 보인다. 그래서인지 무민 가족은 그들을 향해 뻗은 손을 큰 의심 없이 잡고, 어려운 이웃을 만나면 서슴없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기도 한다. 주고받은 선행은 마치 기적처럼 무민의 아빠를 만나게 했고, 그가 가족을 위해 지은 튼튼하고 아름다운 집으로 닿게 했다. 100쪽이 채 안 되는 이 짧은 이야기는, 그렇게 뜨겁게- 끝났다.

'큰' 홍수는 사실 어마어마하게 무서웠다. '작은' 무민 가족은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고, 튼튼하게 지었던 집도 떠내려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어려움 앞에서 그들은 무릎 꿇지 않았다. 연대했고, 그래서 살아남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두가 어려운 요즘,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민 가족이 만나는 다양한 인물들은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연대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서로 돕고 나누는 사이에 홍수는 지나가고, 햇볕이 내리쬐었다. 우리에게도 그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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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류형정 지음 / 뜻밖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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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에 거창한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깊이 생각하고 뛰기보다는 뛰는 것 자체를 즐기고 싶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리고 또 말한다. 달리기 좋지. '근데' 말이야... (중략) 스무 살 무렵까지 낙서를 많이 했다. 낙서 역시 지나고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내면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습관처럼 낙서하던 어느 날, '의미'가 들어간 그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가방에 넣고 다니던 드로잉 북과 펜을 들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결국 의미를 두면서 별 의미가 없었던 것까지 멈춰버리게 된 것이다. ...'의미'라는 것은 하지 않으면 생기지도 않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본문 중에서, 63쪽

최근 몇 달 동안 '하고 싶다'와 '해보자', '할 수 있을까?' 사이에서 머뭇거리던 내 모습이 책에 비쳐 보였다. 좋은 것은 있는 그대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해보려니 잘 안됐다.(해보자,라는 마음 뒤에도 넘어야 할 산이 또 있었다. 몇 개의 산을 넘어야 '시작해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내 마음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도 아닌데 그랬다. 그건 아마도 나를 보는 나의 시선이거나,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도 아닌-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만들어낸 머뭇거림일 것이었다. 맞다. 지레 겁먹었다. 그게 뭐라고, 그냥 하면 되는데.

이 책 <나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도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다. '할 수 있을까?'와 '해볼까?' 사이에서 머뭇거리던 그녀는 대단한 결심을 하는 대신, 차곡차곡 일상의 조각을 모아나갔다. 그랬더니 샛노란 꽃이 피었다. 이 꽃은 아주 작아서, 멀리서 보면 그냥 노란 군락일 뿐인데-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하나하나가 꽤 귀엽다. 그 귀여움은 한 송이 한 송이 모두 싱싱하고 건강한 데서 오는 게 아니다. 어떤 꽃은 자기를 완전히 펼쳐내고 있는 데 반해, 어떤 꽃은 아직 조금 수줍어 보이고, 또 다른 어떤 꽃은 벌써 시들해졌다. 한 가지에서 난 여러 송이의 꽃들이 이렇게나 제각각일 수 있다는 게 놀랍고, 그럼에도 어느 한 부분이 모나 보이지 않는다는 게 또 놀랍다. 그러니까 이 책은, 개나리를 닮았다.

때로 그녀는 조금 무던해 보이기도 했고, 우울해 보이기도 했다. 부러운 날들도 있었지만, 위태로워 보이는 날도 분명히 있었다. 어떤 날들은 나와 완전한 평행선에 있어서 그와 내가 마주할 일이란 전혀 없겠군, 싶다가도- 어떤 날들에는 선명한 접점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가 쌓아둔 오늘의 조각을 들춰내보며 나의 오늘을 살폈다. 모든 꽃송이가 꽃을 피워내는 것은 아니지만, 개중에 어떤 것은 너무 빨리 시들어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꽃들은 퍽이나 예뻤음을 결론지을 수 있었다. 그런 결론을 내리며 책을 덮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가볍지 않은 마음 태우고, 굳어지지 않는 마음 아래 두고 둥-둥- 오늘을 살아내야겠다. (그러다 보면, 나만의 색깔도 만들어지겠지^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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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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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출신이세요?" ...그것은 (얼마간은) 그에 대한 호감의 표현일 수 있다. 그와 나의 연결고리를 (어떻게든, 빨리) 만들어보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질문을 받는 쪽은 좀 복잡해진다. 그가 말하는 '출신'이 내가 태어난 곳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유년기를 보낸 곳인지- 혹은 대학인지, 전에 다녔던 직장인지 대화의 전후 관계를 곰곰 생각해 대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든다. 혹시 내 말투에 사투리가 배어 나왔나? 내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특정 지역색을 띠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혹시 말실수를 했나? ...기타 등등.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출신'을 묻는 이력서 앞에서 멈칫한다. 그의 경우에는 사실 좀 더 복잡했다. 그가 태어난 나라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 출신에 몰두하기 시작한 사실을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았다. 혈통과 출생지가 분류 기준의 특징으로 이용되고 국경선이 새로 정해지고 여러 개의 소국으로 분립된 나라의 메마른 늪에서 국익이 등장한 시대에, 그리고 타민족 배척이 정책 프로그램으로 다시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시대에, 나와 우리 가족의 출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내겐 진부하고, 참으로 파괴적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본문 중에서, 85쪽)

 

이 소설 <출신>은 저자 사샤 스타니시치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고, 모두가 알다시피 그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태어났던 집은 여전히 그때 그 자리에 있지만, 집 밖의 풍경들은 한순간에 몽땅 변해버린 것이다. 창밖의 산은, (그때와 변한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이제 더 이상 유고슬라비아의 산이 아니다. 그의 가족은 열네 살 때 전쟁을 피해 독일로 이주했다. 부모님은 전문 지식을 갖고 즐겁게 하던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들은 독일에서 몰락하지 않으려고 주어진 거의 모든 일자리를 수용했다. 유고슬라비아인들의 처지는 어디서나 마찬가지였다. 고용주들은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임금은 낮았고, 초과근무는 대개 강제적이고 수당도 지급되지 않았다. 명백한 차별이었지만, 부모님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비참했겠지.

그럼에도 그는 꽤나 운이 좋은 편이어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독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성적으로 이해해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편견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또 공격적이고 야만스럽고 불법적이지 않은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 법도 배웠다. 알뿌리와 싹, 다른 식물에 붙어사는 식물. 다시 말해, 본의 아니게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의 계몽 의식 같은 것에도 발을 담갔다.

그가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드리나 강가에 위치한 작은 도시에서 보낸 유년 시절 속에 그는 많은 것들을 두고 왔다. 그는 그것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서, 어떻게? ...찢어지고 잊혀진 기억의 조각들을 끼워 맞춰본다. 그 사이에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 예고 없이 출현한 어떤 사람들도- 어쨌든 이곳에 함께 살고 있으므로 이웃이고 학우이고 동료였다. 사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들을 자기 삶을 구성하는 요소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물론, 수많은 단어, 규칙, 지식 덕분에 그의 삶은 곧잘 덜컹거렸지만.

우리는 유고슬라비아 사람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출신이고 우리의 미래입니다. (본문 중에서, 124쪽)

 

나는 이 선언에 의미를 잔뜩 부여했다.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출신은 창조물이다. 한번 입으면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같은 것. 행운이거나, 저주. 개인의 재능과 전혀 상관없는- 하지만 분명한 장점과 특권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것이 어떤 시선으로, 어떻게 읽히건 간에 나의 출신은 변함없는 것이다. 지리적 위치, 부모님의 사회적 위치, 유전자, 조상... 바꿀 수도 없고, 나의 삶에서 완전히 떼어내 버릴 수도 없는 것들. 그렇다면 모든 것을 안을 수밖에.

더하여,

1. 내게 '나라를 잃었다'는 '일제강점기'와 동의어로만 쓰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게 일제강점기의 한반도는 분노와 공포, 슬픔 같은 극단적인 감정뿐이었다는 것도.

2. 이 책의 마지막 챕터는 단연코 하이라이트. 길이도, 내용도 읽는 이의 선택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페이지를 뒤로, 앞으로 넘겨가며 마지막 순간을 만난다. 찰나의 선택과 물리적인 움직임이 일으키는 작은 파동에 그의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쓰여진 것, 하지만 분명히 내가 만들어가는 것.

3. 이범선의 <오발탄>이 자꾸 떠올랐다. 사샤의 할머니는 여러번 철호의 어머니와 오버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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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해결사 깜냥 1 -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 고양이 해결사 깜냥 1
홍민정 지음, 김재희 그림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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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고양이는, 예민하고 사람들을 피하는 편이며 그래서 얼굴도 잘못 보고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이 고양이 '깜냥'은 좀 다르다. 일단 직립보행을 하고, 손으로는 제 몸집만 한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닌다. 할아버지 앞에 처음 나타나던 날도 몰래 들어온 것이 아니라 '노크'를 했고, 하룻밤을 '부탁'했다. 응? 이제껏 알던 고양이와는 전혀 다르잖아!... 진짜 그랬다. 깜냥은 그 어떤 고양이와도 달랐다. 예의가 무엇인지 알았고, 똑똑했고, 무엇보다 아이들 마음을 잘 알았다.

고작 몇 시간 만에 깜냥은 주민들의 인기 스타가 되었다. 아직 부모님이 귀가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었고(누구보다 실감 나게!), 오디션을 앞둔 아이에게는 ‘조용히’ 춤추는 법을 알려주었다.(같이 신나게 춤을 추기도!)

"고양이 경비원 있어요?"

 

벌써 깜냥을 찾는 주민들도 있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으며 깜냥을 조수로 채용했다.

앞으로 이 아파트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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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제학 - 왜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는가
새뮤얼 보울스 지음, 최정규 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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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다른 얘긴가 싶지만)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다. 아이가 인형 유모차를 갖고 싶다고 해서(그걸 사고 싶지 않은 마음에;ㅁ;) 처음으로 보상 제도를 해 봤다. 하루에 해야 할 워크북의 양을 정해두고, 그걸 열흘 동안 하면(스티커 열 개를 받으면) 유모차를 사주겠다는 거였다. 사실 워크북은 올해 들어 계속하던 것이었고(보상 없이 즐겁게 하던 것), 보상만 새로이 추가된 것이었는데-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나, 아이가 대뜸 "이제 세 번만 더 하면 유모차 살 수 있겠다. 그치? 그럼 이제 워크북 안 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보상 제도 이전에는 먼저 워크북을 하자던 아이였기 때문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인센티브가 있으면 목적이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즐겁던 것을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날 당장 유모차를 샀다. 그리고 워크북은 스티커 없이 계속하고 있다.

이 책 <도덕경제학>을 읽으면서 도덕과 인센티브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고민했다. 인센티브가 우리 안의 이타심을 무너트리는 다양한 사례를 마주하면서, 명쾌한 경제 논리 이전에 '사람'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자본주의의 시작도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자본주의의 개념을 제시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 이전에 <도덕감정론>을 썼다. 대개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여섯 글자만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도덕감정론이 국부론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은 시장에서 도덕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윤추구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윤추구나 사적 이익이 궁극적 목적이 아닌 '수단'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자유 시장은 사회 자원의 적절한 배분이 목적이다. 그러니까 처음 디자인됐던 자본주의의 모습은 잘 사는 사람을 더 잘 살게 하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살게 하는 부익부 빈익빈의 세계가 아니라, 모두 다 잘 사는 세상, 다시 말해 복지사회를 만드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늘의 많은 물음표들이 느낌표로 바뀐다. 병원 문을 닫고 대구로 내려간 의료진들,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면 마스크를 만든 할머니의 손길, 시키지 않아도 돼지 저금통을 깨서 기부하는 아이들.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 모습들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보기에는 퍽이나 이상한 장면들이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는 늘 그랬다. 경쟁하는 마음, 조금 더 갖고 싶은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함께 먼저 일어나자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이게, 이 장면이- 이 책 <도덕경제학>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바라고 서로를 도왔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순수한 이타심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들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했다면? 아이가 즐겁게 하던 워크북도 스티커를 받자 멈추려 했던 것처럼- 그들의 선의도 멈추었을지 모를 일이다. 책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인센티브는 선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인센티브를 통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자의) 목적이 너무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에, 대상이 되는 사람은 인센티브를 설계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내가 수행해야 할 일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모든 상황, 모든 종류의 인센티브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처벌과 보상은 긍정적인 행동을 강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사람임을,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하는 것임을 먼저 상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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