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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평점 :
"어디 출신이세요?" ...그것은 (얼마간은) 그에 대한 호감의 표현일 수 있다. 그와 나의 연결고리를 (어떻게든, 빨리) 만들어보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질문을 받는 쪽은 좀 복잡해진다. 그가 말하는 '출신'이 내가 태어난 곳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유년기를 보낸 곳인지- 혹은 대학인지, 전에 다녔던 직장인지 대화의 전후 관계를 곰곰 생각해 대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든다. 혹시 내 말투에 사투리가 배어 나왔나? 내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특정 지역색을 띠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혹시 말실수를 했나? ...기타 등등.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출신'을 묻는 이력서 앞에서 멈칫한다. 그의 경우에는 사실 좀 더 복잡했다. 그가 태어난 나라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 출신에 몰두하기 시작한 사실을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았다. 혈통과 출생지가 분류 기준의 특징으로 이용되고 국경선이 새로 정해지고 여러 개의 소국으로 분립된 나라의 메마른 늪에서 국익이 등장한 시대에, 그리고 타민족 배척이 정책 프로그램으로 다시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시대에, 나와 우리 가족의 출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내겐 진부하고, 참으로 파괴적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본문 중에서, 85쪽)
이 소설 <출신>은 저자 사샤 스타니시치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고, 모두가 알다시피 그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태어났던 집은 여전히 그때 그 자리에 있지만, 집 밖의 풍경들은 한순간에 몽땅 변해버린 것이다. 창밖의 산은, (그때와 변한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이제 더 이상 유고슬라비아의 산이 아니다. 그의 가족은 열네 살 때 전쟁을 피해 독일로 이주했다. 부모님은 전문 지식을 갖고 즐겁게 하던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들은 독일에서 몰락하지 않으려고 주어진 거의 모든 일자리를 수용했다. 유고슬라비아인들의 처지는 어디서나 마찬가지였다. 고용주들은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임금은 낮았고, 초과근무는 대개 강제적이고 수당도 지급되지 않았다. 명백한 차별이었지만, 부모님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비참했겠지.
그럼에도 그는 꽤나 운이 좋은 편이어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독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성적으로 이해해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편견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또 공격적이고 야만스럽고 불법적이지 않은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 법도 배웠다. 알뿌리와 싹, 다른 식물에 붙어사는 식물. 다시 말해, 본의 아니게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의 계몽 의식 같은 것에도 발을 담갔다.
그가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드리나 강가에 위치한 작은 도시에서 보낸 유년 시절 속에 그는 많은 것들을 두고 왔다. 그는 그것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서, 어떻게? ...찢어지고 잊혀진 기억의 조각들을 끼워 맞춰본다. 그 사이에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 예고 없이 출현한 어떤 사람들도- 어쨌든 이곳에 함께 살고 있으므로 이웃이고 학우이고 동료였다. 사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들을 자기 삶을 구성하는 요소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물론, 수많은 단어, 규칙, 지식 덕분에 그의 삶은 곧잘 덜컹거렸지만.
우리는 유고슬라비아 사람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출신이고 우리의 미래입니다. (본문 중에서, 124쪽)
나는 이 선언에 의미를 잔뜩 부여했다.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출신은 창조물이다. 한번 입으면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같은 것. 행운이거나, 저주. 개인의 재능과 전혀 상관없는- 하지만 분명한 장점과 특권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것이 어떤 시선으로, 어떻게 읽히건 간에 나의 출신은 변함없는 것이다. 지리적 위치, 부모님의 사회적 위치, 유전자, 조상... 바꿀 수도 없고, 나의 삶에서 완전히 떼어내 버릴 수도 없는 것들. 그렇다면 모든 것을 안을 수밖에.
더하여,
1. 내게 '나라를 잃었다'는 '일제강점기'와 동의어로만 쓰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게 일제강점기의 한반도는 분노와 공포, 슬픔 같은 극단적인 감정뿐이었다는 것도.
2. 이 책의 마지막 챕터는 단연코 하이라이트. 길이도, 내용도 읽는 이의 선택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페이지를 뒤로, 앞으로 넘겨가며 마지막 순간을 만난다. 찰나의 선택과 물리적인 움직임이 일으키는 작은 파동에 그의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쓰여진 것, 하지만 분명히 내가 만들어가는 것.
3. 이범선의 <오발탄>이 자꾸 떠올랐다. 사샤의 할머니는 여러번 철호의 어머니와 오버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