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트라우마 - 삶의 면역을 기르는 자기 돌봄의 심리학
멕 애럴 지음, 박슬라 옮김, 김현수 감수 / 갤리온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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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트라우마'란 뭘까요? 흔히들 이야기하는 트라우마가 큼직큼직한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이를테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것), '스몰 트라우마'는 그에 반대되는 개념일까요? 굉장히 직관적인 느낌이라 이 책에서 개념화한건가, 싶었지만 사실 스몰 트라우마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정신 장애 진단 분류체계라고 합니다.(진짜 빅 트라우마, 스몰 트라우마라는 말을 쓰는 거더라고요. 우리가 상상한 바로 그 개념으로요!) '스몰 트라우마'는 우울감, 무기력증, 고기능성 불안장애 등의 형태로 우리 에너지와 잠재력을 서서히 고갈시키는 일상 속의 작은 위협을 의미해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우울하긴 해요, 하지만 우울증은 아니에요." 네, 바로 그게 스몰 트라우마였던 겁니다. 말로 늘어놓자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내가 너무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이고, 그렇다고 아무 말 안하자니 내 속만 타들어가는 것. 그렇게 별것 아니면서, 별것인 일들은 내 안에 쌓여 나를 갉아먹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책에서는 미세 공격 스몰 트라우마라며 이런 예시를 들더라고요. 



-하지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네가 자란 배경을 생각하면 아주 잘하고 있는 거지.


-그렇군요. 근데 원래는 어디 출신이에요?


-와, 그런 상태인데도 -를 할 수 있다니 굉장하네요.


-남편분은 안 계시나요?


-난 피부색 같은 거 신경 안 써.



예시를 살펴보니 어떤 게 미세 공격 스몰 트라우마인지 알 것만 같죠? 상대는 그냥 지나가면서 가볍게 툭, 던진 말일지 몰라도 듣는 입장에서는 때때로 생각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바로 그 말들입니다. 이런 말들은 만성적인 불쾌감을 낳아요. 이 책 <스몰 트라우마>는 '덜 중요한 스몰 트라우마는 없다'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중요한 건 그게 별말이었냐, 별말 아니었냐가 아니라 그 말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고, 그에 대한 당시의 감정이 아직도 유효한가라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오직 나의 감정뿐이라고 말하는 이 책이 고맙기도 하고, 위로도 되었어요.



내가 이제껏 안고 살아온 상흔들은 나의 내일에 기필코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이렇게 찾아오는 불편한 기분, 불쾌한 감정은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건강한 몸을 위해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하듯, 우리의 삶을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작고 일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어요. (쓰고 보니 너무 뻔한 말) 마음이 좀 더 쓰린 날에는 <스몰 트라우마>와 함께 배포된 워크북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내용을 살펴보니 음, 이런 거- 끄덕끄덕하게 되는데, 막상 쓰려고 펜을 들면 쉽게 쓸 수 있는 문항들이 아니더라고요. 그만큼, 제 안에 쌓인 미세 공격 스몰 트라우마들이 많다는 걸까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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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 인간 - 좋아하는 마음에서 더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정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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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은 놀랍도록 나와 비슷해서 자꾸 표지를 다시 보게 된다거나, 책의 앞면, 옆면, 뒷면을 살피게 된다. (어디서 누가 나 보고 있는 거 아니야?) "살아있을 때 재미있으면 좋으니까 '여러 이름'을 뒤집어쓰고 '여러 존재'로 환승하며 살아봐야지."라는 저자의 생각은 이름을 바꿔쓰는 것 빼놓고 평소 내가 매일같이 하고 다니는 말과 완전히 같다. (나는 계속해서 '박찬선'이고 싶은데, 이때의 '박찬선'이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안고 산다. 세모 모양의 박찬선과 네모 모양의 박찬선, 타원형의 박찬선과 육각형의 박찬선이 있었으면 좋겠다) 재미와 의미가 삶의 1순위인 나는 재미x의미 지수가 떨어질 때마다 더 재미있는 일, 혹은 더 흥미 있는 일로 환승해왔는데- 어쩐지 세상 모든 일에 멍해지는 순간이라던가, 세상 모든 일이 재미있어 보일 때는 난감해져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기도 한다. (그런 지점 역시 저자와 비슷해서 흠칫. 저자는 이런 순간을 '흥미 대출 정지 구간'이라 불렀고- 그래서 그녀는 소설을 직접 썼다. 재밌는 소설을 발견하지 못해서 쓰는 소설이라니. 정말 내 스타일이야!) 뭐,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 또 한 번 흔들리는 시기라- 아주 강력한 안정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 색연필로 밑줄을 긋기도 했지만- 우리는 안다. 이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푸하하핳)


결국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다.


정말 좋은 사랑이라는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온전한 ‘나’가 남는 것이다.


오롯이 나로 환승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69쪽


+ 저자와 내가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반복해 확인하면서, 그가 골라 소개해 주는 책들 역시 읽고 싶어졌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부적>, 이인성 작가의 <한없이 낮은 숨결>, 마틴 러드윅의 <지구의 깊은 역사>, 차이밍량 감독의 <안녕, 용문객잔>도 곧 마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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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넘기
이안 지음 / 키위북스(어린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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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여덟 살의 최대 난제, #줄넘기


하나씩 하나씩 겨우 같이 넘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휙휙 스무 개, 서른 개씩 해내자 우리 집 여덟 살은 더욱 위축되었다. (이제 아예 안 하려고🤣…) 그런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어 준비한 그림책 <줄넘기>. 숨도 차고, 힘들기도 하고, 발맞추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하다 보면 재미있을 거라고 으샤으샤해주는 그림책을 넘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당장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줄넘기하는 그림책 속 친구들의 표정이 어찌나들 밝은지!) 

 


사뿐사뿐 휙휙, 리듬을 타며 손과 발의 움직임을 맞추는 일이 파도 타는 일처럼 자연스러워질 때 진짜 가벼워질 수 있겠지. 같이 나가보자! 줄넘기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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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흐르는 강물처럼, 하회마을 시간을 걷는 이야기 4
김유경 지음 / 키위북스(어린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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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마을을 상상할 때 우리가 흔히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이를테면 마을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600년 된 느티나무, 울퉁불퉁 돌이 박힌 돌담, 나란히 선 좁다란 골목, 방 안에 걸린 근사한 소나무의 자태같은 것. 물론 하회마을에도 그런 것들이 있다. 하지만 하회마을의 특별함은 고즈넉한 옛풍경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포크레인이 기와를 고쳐 얹고, 마루에 앉아 수박을 나누어 먹으면서도 어제 주문한 택배를 설레는 마음으로 뜯어보는 일상에 있다. 옛것은 소중하지만, 옛것이기만 할 때 지키기 어려워진다. 고치고 보태어가는 과정 모두가 역사의 일부이고, 그 모든 시간이 소중해질 때 역사는 지난 날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남는 것 아닐까.



편하고 쉬운 것을 좇는 바쁜 세상 속에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쓰시던 물건을 소중히 간직하고,

낡은 곳은 조금씩 고쳐 나가며,

600여 년을 한결같이 살아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얼마나 귀한 일인지.

(그림책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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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
김휘훈 지음 / 필무렵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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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어둠 사이로 두 개의 빛이 반짝, 빛난다. 거북의 눈동자다. 거기 있었구나, 한참을 찾았어. 나와 함께 오르자꾸나, 하는 다정한 문장 뒤로 무표정한 거북의 얼굴이 보는 이를 짓누른다. 이렇게 깊은 데 까지는 아무도 안 온다고, 그러니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거북의 말을 따라 위로 오른다. 찬란한 빛이 있는 세상,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강화 유리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거기, 거북이 나타났다. 다들 꽤나 놀란 눈치였고,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아니, 나는 너를 해치지 않아. 하지만 무표정하고도 커다란 거북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의 눈가에 노란 리본이 눈에 띈다. 한때는 모두의 가방이나 핸드폰에 달려있기도 했던 노란 리본. 어느 순간부터 '아직도?'이기도 했고, 많은 순간 잊고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아홉 번째 4월 16일을 맞이하는 사이 우리는 4월 16일을 잊고 지난 364일과 하루의 4월 16일들을 보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거북의 표정이 왜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진다. 정말로 잊고 지낸 날들. 정말로 찾지 않았던 날들이 그렇게나 많았다.


문화는 개개인이 각기 책임의 경로를 다할 때만이 발생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책무를 인식하고 수행한다면, 진실은 발현될 것이다. 전체 국가의 문화는 어떤 다른 것들 위에서도 세워질 수 없다(케테 콜비츠, 1915)


반짝이는 다섯 개의 별을 올려다보며 다시, 표지로 돌아온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창 안에 우리를 찾아온 거북이 있었다. 너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던, 애써 봐야 겨우 찾아낼 수 있었던 거북은 일 년에 한번 찾아오는 4월 16일일까. 많은 순간 잊고 지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어김없이 어떤 날에는 너희들을 생각한다고. 아마도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4월 16일은 너희를 생각할 거라고. 그렇게 규율을 통해 실현될 수도, 종결될 수도 없는 애도를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계속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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