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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도쿄의 어느 건물 옥상, 하늘에 누군가가 떠 있다. "천사, 님...?" 그는 울면서 소리친다. "이 미친 세상에서 저를 데려가 주세요! 저를 구원해 주세요!" 그러자 그의 몸이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마치 체중이 사라져가는 것 같이. 그쯤 되자 철제 난간에 기어오르는 것도, 가느다란 난간 위에 두 발로 서 양팔을 활짝 펼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에게는 순백의 커다란 날개가 있으므로, 그 움직임은 천사님을 향한 날갯짓이므로. ... 그렇게 또 한 사람이 목숨을 끊었다. 마약 때문이다.
소설은 '스노우 엔젤'이라 불리는 마약을 쫓는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성분인지,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 전혀 모르지만- 표면에 눈 위의 천사가 새겨진 것만은 확실한 어떤 것이다. 마약 단속관인 미즈키 쇼코는 이 '스노우 엔젤'을 도쿄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원인으로 짐작하고, 복수를 위해 자신을 철저하게 지우고 살아온 전직 형사 진자이 아키라에게 수사에 협조할 것을 권한다. 진자이에게 맡겨진 임무는 스노우 엔젤을 유통하는 비밀의 남자, 하쿠류 노보루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 그를 위해 진자이는 이사라는 마약 판매상과 접촉하여 스스로 마약상이 되면서까지 고독한 싸움을 이어나간다.
쉽지 않은 임무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자이의 일은 생각보다 잘 풀린다. 덕분에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었고, (이야기에) 속도가 붙을수록 나는 더 깊게 진자이에게 이입되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아픈 기억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이었고, 그가 지켜내고자 하는 신념은 정의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진자이였기에, 평범해 보이는 주부나 학생들에게 각성제를 건네면서 그가 했던 생각들에 동의하면서도, 그 손길은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의 끝에는, 그들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으로 턱, 턱 막혀오는 숨을 참았다.
이제 곧 천사는 '최후의 레시피'라는 주문에 의해 봉인에서 풀려나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겠지. 이윽고 천사는 증식에 증식을 거듭하여 세상 구석구석까지 날아갈 게야. 그리고 오래도록 지속되어온 이 인간 세상을 뿌리부터 바꿔버리게 될 테지. ... 인류는 비로소 영원한 평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주 먼 옛날, 우리의 조상이었던 이가 신과의 약속을 깨고 지혜의 열매를 따 먹은 이래 시달려온 분노로부터, 원한으로부터, 질투로부터 비로소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영원히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던 진정한 평화를 마침내 얻게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17쪽
그런데, 그 끝에는 전혀 다른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완전한 의존, 완전한 복종을 바라는 악마의 속삭임. 그것은 비단 마약 판매상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누구도 무너트릴 수 없는 거대한 권력을 원한 이들은 다름 아닌 국가였다. 국가는 보다 더 강력한 수단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복종하게 하고 싶어 했다. 그런 그들에게 신체에는 무해하면서도 정신에는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스노우 엔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지가 되었다.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퍼즐이 하나씩 맞추어질 때마다 나는 진자이처럼 놀랐고, 또 놀라지 않은 척 애썼다. 머릿속에 수많은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카지노, 가정집 같지만 사실은 도박장인 어느 주택, 영롱한 빛을 내는 술잔, 지금 이 순간에도 몇십만 캔 이 소비되고 있을 콜라까지도.
동시에, 인간의 뇌 내 마약을 분비시키는 물질이 어째서 자연계에도 존재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맴돈다. 카나비노이드를 함유한 대마, 모르핀을 지닌 양귀비, 코카인은 코카, 메스암페타민은 마황, 니코틴은 담배, 카페인은 커피와 차. ...우리의 뇌에 마약 분비를 촉진하는 물질은- 우리가 생겨나기 훨씬 이전부터 식물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 이런 식물을 창조해낸 것 또한 신이라면, 신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고 있는 것일까. 유혹은 견디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완전한 기쁨을 바라는 순수한 열망과 일상이 주는 고뇌와 번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찾아내면 좋을까. 모르는 사이 우리를 완전히 포위해버린 이 어마어마한 계획들 사이에서, 과연 무너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데블 인 헤븐>을 당장 읽어야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