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 - 인간관계부터 식품.의료.건축.자동차 산업까지, 향기는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
로베르트 뮐러 그뤼노브 지음, 송소민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오랜 시간 인지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 하나, 나는 향에 민감한 편이다. 담배 냄새에 민감했던 것은 기관지가 안 좋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향수를 뿌리는 남자친구(지금은 남편이 되었다)를 만나면서, 내가 향에 예민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사랑하는 향수는 내게 너무 세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사실 '제발 그 향수만은 쓰지 말자'라고 말할 때만 해도 내가 향에 유난히 민감한 것인지, 남자친구가 쓰던 향수가 유달리 향이 강했던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 임신을 했다. 입덧은 여러 가지로 고역이었는데,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가 '냄새'에 대한 것이었다. 온갖 데서 예상치 못한 냄새가 흘러들었다. 대형 슈퍼마켓이나 백화점 식품 코너에 가려면-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다잡아도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그동안은 어째서 이 지독한 냄새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는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수천 번 했으나, 출산 이후 이 현상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다만, 진열되어 있는 모든 물건들(혹은 생물들)이 냄새를 뿜어대는 그때의 감각만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제서야 돌아보니, 쓰고 있던 화장품은 향이 거의 없는 제품들이었다. 비누나 샴푸, 바디워시, 주방 세제나 세탁세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새삼, 이렇게 많은 향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책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은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향에 누구보다 민감했던 시기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책에서 소개하는 것 중 끌리는 몇 가지의 향을 테스트하러 당장 자리에서 일어섰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향이 있는 제품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향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세상 모든 것들은 고유한 향을 품고 있다. 사람은 물론이고 책상, 책, 컴퓨터, 먹고 마시는 것 모두에 고유의 향이 있다. 그것을 디자인할 수 있는 거라면, 매일 쓰는 물건들에서- 혹은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더 편안한 향이 풍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꽤나 막연하다. 향이라는 것이 본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후각에만 의존하여 판단해야 하는 것이므로 계속해서 의구심이 피어오른다. 게다가 후각이라는 감각은 상황에 금세 익숙해지게 마련이어서 아무리 낯선 공기라도 금세 둔해진다(후각은 예민한 만큼 쉽게 피로해져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를 '후각 피로현상'이라 부른다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번 기억된 향은 오랫동안 우리 무의식에 남아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예컨대 바닐라향. 아기는 태어난 후 곧바로 모유나 분유에서 바닐라 맛이 나는 것을 기억해둔다. 때문에 사람들은 평생토록 바닐라 맛을 유난히 뚜렷하게 인지한다. 바닐라 향이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신뢰감이 들게 하는 것은 태어나자마자 경험했던 세상에 대한 신뢰감에 기초했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니 향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향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왜 사용되었는지를 알아보는 일은 생각보다 더 흥미로운 일이었다. (아주 옛날 사람들이 종교적 목적으로 향을 피웠던 이유는- 향이 좋은 연기를 타고 자신들의 소원이 신에게 더 빠르게 닿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도 성당이나 절, 교회에 들어서면 특유의 향이 난다. 어떤 향인지는 모르지만, 그 특유의 향이 사람들을 종교적 희열에 빠져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책은 향에 대해 무지한 사람도 자신에게 맞는 향수를 어림잡아 볼 수 있도록 많이 쓰이는 향들을 텍스트로 설명해두기도 했다. 물론 향을 '글'로 설명한다는 게 한계가 있겠지만, 찬찬히 읽으면서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후각에 예민한 나로서는, 매장에서 직접 향을 맡아보는 일 자체가 꽤나 힘든 일이기도 하므로. (기본적으로 매장의 구조는 한 번에 한 가지 향만 온전히 맡을 수 없으니까)
코를 킁킁거리며 읽게 되는 이 책은 그래서-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공간 구성에 색, 빛, 소리, 촉각 이외에 냄새도 항상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에 밑줄을 그으며 정말이지 오랜만에 향초에 불을 밝혔다. 은은하고 따스한 느낌이 드는 것은 조용하게 타오르는 불빛 때문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 후각을 자극하고 있을 향 때문인가. 아마 이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하나의 공간,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걸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