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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하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평점 :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판타지 또는 추리 소설이라고 단순히 규정하기엔 너무나도 그 속에 담긴 내용을 말하기엔 부족한 듯 하다. 그 이유 첫째는 저자의 기호학, 중세철학, 신학 등으로 나타내어지는 지식의 깊이를 추리 소설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함이다. 둘째는 주인공으로 나오는 윌리엄 수도사의 말을 통해서 나타나는 저자-움베르트 에코-의 논리, 지혜를 엿볼 수 있는데 이를 어떻게 소설이란 이름으로 넣을 수 있을까?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서문을 읽고는 몇 주간을 덮어 두었었다. 결코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이란 생각이 들어서 괜시리 읽어가기엔 부담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결코 책 장속에만 두어서는 안 될 책이란 걸 알았기에 조금씩 시간을 내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7일동안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통해서 펼쳐지는 저자의 지식과 지혜의 깊이에 빨려 들면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수많은 글에 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로 규정하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중세철학을 등장인물의 대화로 풀어가는 것을 볼 때면 참으로 엷은 지식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기호학/논리력으로 이어지는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문구를 볼 때면 내 자신의 지혜의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또한 <장미의 이름>이란 소설로 말미암아 많은 연구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 소설로 참으로 많은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음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창작노트가 쓰여지고 문학가, 철학가, 중세 연구가들 가운데 이루어지는 후기들은 참으로 흥미진진함 끝에 오는 뿌뜻함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장미의 이름>을 단연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것은 움베르토 에코의 지식세계 - 기호학, 중세철학, 미학, 신학 -의 집대성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각각의 학문에 대한 연구로 인해 한 편의 논문이 쓰여진다면 <장미의 이름>이란 한 편의 소설로 학문의 뿌리가 하나임을, 그래서 저자로서는 책 한 권에 자신의 지식세계를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서 필자가 이야기 하지 않을 것 외에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건 너무나도 자명하다. 더불어 지식과 지혜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에서 뿐 만 아니라, 아드소를 통해서 표현되고 있는 에코(또는 중세 신학자,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신앙철학을 봄으로 더욱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인상 깊은 구절]
내 나이 해마다 늘어가고, 행하고자 하던 의지가 나날이 부질없이 보인다. 내가 알기로, 유일한 구원의 길은 믿음이다. 끈질지게 기다리되, 너무 많은 회의로 저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야말로 구원으로 통하는 믿음의 길이 아니겠는가.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p73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