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되면 일어나라 사계절 1318 문고 127
정명섭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좀비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잔인하게 물어 뜯어 죽이지만 좀비에게는 목적도 이유도 없다. 그렇게 되는 원인도 모른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만 있을 뿐이다.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막막함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세계를 그려내서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최근 들어 좀비물이 너무나 많다. 책, 드라마, 영화.... 굳이  보고 싶지 않은데도 어찌어찌 하다 보면 보게 된다. 잔인함과 두려움이 넘치고 희망은 보이지 않는, 종말의 세계를 그리는 작품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회복불가능한 어떤 지점에 놓여있음에 대한 반증이려나?

책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책을 읽었다. 보랏빛 표지, '새벽이 되면 일어나라'는 제목. 옆에 있던 아들이 자신처럼 늦잠 자는 아이들을 계몽할 목적으로 쓴 자기계발서일 것 같단다. 음... 일리가 있다. 아침형 인간으로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도 던져줄 것 같은 제목이다. 허나... 책을 펼치는 순간 바로 반전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학교가 거지 같아 학교 따위는 가고 싶지 않은 규빈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민욱이가 좀비로 변해 같은 학교 친구를 물어 뜯어 죽이는 사태를 목격한다. 그러고 세상은 아수라장이 된다. 원인도 이유도 모르지만, 그렇게 변해 버린 세상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이들, 그리고 그 몸무림으로 덕분에 유지된 10년 후의 아이들의 공동체.

 그 공동체의 첫 번째 규칙은 '새벽이 되면 일어나 이곳을 떠나라'이다. 왜냐하면 19세 생일이 되는 날이면 아이들은 좀비에게 물어뜯기지 않더라도 좀비가 되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스스로 공동체를 떠나는 규칙을 만든 아이들의 선택이 눈물 겨운 소설이다.

 왜 하필 19세 생일일까? 작가는 밤늦도록 공부하다가 강연장에 와서 조는 아이를 보고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대학 입시라는 꼭짓점을 향해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공부만 할 것을 강요하는 이 세상이 이유를 모른 채 좀비가 되어야 하고, 그리 되어버린 세상을 바꿀 해법도 모르는 소설 속 세상과 닮았다. 소설 속에서는 그렇게 되도록 계획한 어떤 어른들의 집단이 존재하지만.... 어른들의 삶이라고 무에 그리 다를까?

좀비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나에게는 이 책을 평가할 깜냥이 없다. 다만,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지 않고 죽 읽게 되는 흡입력은 큰 장점이다. 또한 작가가 이 소설을 시작하게 된 출발점의 질문에 공감한다. 어른들은 파릇파릇해야 할 아이들을 사랑이라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좀비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 19의 시대, 희망이 없는 시대, 참고 버티며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는 평범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이, 아이들이 만든 공동체의 첫 번째 규칙이라 생각한다.

'새벽이 되면 일어나라'

나를 희생해서라도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우리는 새벽이 되면 일어나서 나갈 용기를 가져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