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기 위해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내 최대 취미는 매일 오는 신문의 텔레비전 편성표를 펼쳐놓고 무엇을 볼까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치던 것이었다. 간혹 프로그램명 밑에 작은 글씨로 소개글을 짤막하게나마 달아놓았던 칸도 있었는데, 이걸 읽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시간별로 구획된 단정한 칸들 안에 빼곡히 써진 각종 텔레비전 프로그램들과 나의 주말 단잠을 포기하게 만들던 <디즈니 만화동산>까지, 그때의 내 작은 일상은 편성표와 함께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 <가요톱10>을 보려 부랴부랴 밀린 학습지를 풀었고, <연예가중계>를 보려 엄마에게 나름의 로비(!)도 했었다, 콩을 다 먹을게요, 동생과 안 싸울게요, 내일 약수터에서 물 떠올게요.

 

한 지방 초등학생의 “일상과 시간성에 영향”(154면)을 상당히 끼쳤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편성 역사에서 1980년대는 주요한 위치를 담당한다. 또 하나의 국민 시계이자 알튀세르의 표현을 빌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130면 주1)인 텔레비전은 당시 정권에 의해 “‘전파영토’를 전유”(133)했고 “당시의 사회적 시간에 간섭하면서 시청자로 하여금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뉴스의 시간성과 리듬을 의례적인 일상의 리듬으로 받아들이게 했다”(148면). 컬러방송과 아침방송, 각종 미디어 이벤트(156-59면, 일상적인 시청과는 다르게 축제적인 시청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1981년 제62회 체전’이나 ‘국풍 ’81’) 등은 “텔레비전의 시간성과 국민의 일상시간이 점차 연동”(155면)시키고 “텔레비전을 매개로 해서 국민의 일상시간이 정치적 자원으로 동원 가능”하게 했다. 정부의 입김이 셌던 만큼 시청자들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1984년 시청자들은 “시청료 거부운동”(165)을 통해 시청자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이것이 당시 정권과 체제의 변혁을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

 

김학선의 <24시간 시대의 탄생>은 텔레비전 뿐 아니라 1980년대 국민의 일상 시간을 주무르고 그것을 자원으로 이용하려했던 신군부정권의 정책과 그 집행과정들을 풍부한 통계자료에 근거해 파헤쳐 간다. 나에게는 낯선 ‘야간통행금지제도’(제2부 3장), ‘등화관제훈련’(제2부 4장), ‘서머타임’(제4부 8장)이 본격적으로 열어젖힌 “24시간 시대의 탄생”(5면)과 여전히 존재하는 줄 몰랐던 ‘국민생활시간조사’(제3부 5장), 근대적 국민국가의 정체성과 일체감을 상징화하는 ‘국경일, 법정기념일, 법정공휴일 제도’(제4부 9장)는 1980년대의 시간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당시의 시간성을 둘러싸고 저항하고 기꺼이 충돌했던 국민들의 반향이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사회적 시간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과 그들이 일상을 구성하고 통제하는 수단인 동시에 그 일상의 경험을 거쳐 새롭게 조직되는 결과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14면).

 

<24시간 시대의 탄생>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시간 규율을 내면화하고 있는 우리네 의식의 연원이 1980년대의 “근대화 담론 속에서 근면 이데올로기와 연결”(20면)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1980년대 시간성의 변화는, 발전국가 시기였던 1970년대와 민주․소비사회로 지칭되는 1990년대를 연결하면서 이후 대한민국 사회를 21세기 성과사회로 나아가게 한 하나의 변곡점으로 역할”(67면)했다고 지적한다. 근대적 시민이나 세계화 시민을 양성한다는 하에 실은 국민의 시간을 발전을 추동하게 하는 자원으로 인식하고 관리하려했던 1980년대 국가의 주체 논리가, IMF를 거치고 신자유주의와 함께 개인에게로 옮겨온다는 것이다. 푸코의 입을 빌리자면 ‘자기 자신의 기업가’이며 한병철의 입을 빌리자면 성취하는 개인으로 재탄생한 개인이 ‘지배없는 착취’를 행하는 것. 이제 모두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자본은 더이상 토지나 노동과 결합하지 않고도 순환을 통해 이윤 창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돈과 등치된 시간도 마찬가지로 노동과 직접적인 관련 없이 증식․투자․축적․순환이 가능”해짐에 따라 “하루 24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이 아니다. 이러한 시간성의 지속은 시간과 돈의 빈부격차를 더욱 벌려놓는다. (…) 현대사회에서 시간 빈곤의 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의 게으름이나 나태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시간과 돈의 구조적 연결에 기인한 것이다”(22-23면).

 

내가 가장 자신 있는 ‘킬링 타임’(killing time). 그러나 킬링 타임을 하고 나면 난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모두가 자신의 시간에 미시적으로 정치를 해야 하는 이 시대의 논리에, 시간을 돈처럼 아껴서야 하는 이 시대의 논리에 역행하는 행동이기 때문일까? 1980년대의 시간 정치의 양태를 아주 꼼꼼하고 세심하게 살펴본 저자의 수고에 감사하며, 「마치며」에서 그가 언급하듯 1990년대와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1980년대의 시간성에 대한 저자의 다음 연구를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24시간 시대의 탄생>은 내게도 다른 여지를 남겼다. 나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시간자원의 양극화 현상”이 계층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자원마저 오그라드는 상황들을 다소 목격했다. 이에 대한 연구도 찾아보고 싶다. 


덧붙이는 말. 아는 교수님들이 미주에 많이 등장해 반가웠다.



* 함께 읽고 싶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