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과 전복 - 현대 한국 영화의 어떤 경향
김영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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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과 전복: 현대 한국 영화의 어떤 경향(이하 순응과 전복)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열리고 닫힌다. 먼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가 한국의 영화감독들을 아비 없는 자식들”(15)이라고 칭하는 데서 등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한국적 장르 영화의 전통적 꼴”(16)에 익숙하지 않았고 또한 의식하지 않았는데(여기에는 한국 영화의 장르 역사가 비연속적 궤적”(18)을 가진 것과도 연관이 있다), 이 지점이 족보도 계통도 없는 모험”(27)인 동시에 이었다. 이 책은 주로 2000년대 전후의 괄목할 만한 한국 영화 작품들, 다시 말하면 모험이자 힘인 그것들을 감독들의 필모그래피 순에 따라 조명하고 있다.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감독들 것이다,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등.


아버지는 마지막 장에서 다시 언급된다. 영화감독들에게 아버지는 없었지만, 영화라는 작품 속에서 상징적 아버지는 차이와 반복을 거쳐 왔다. “대다수 한국 영화는 끊임없이 좋은, 훌륭한 아버지를 희구하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 대다수의 집단의식을 늘 의식하고 만들어진 창작의 결과물이다. 그 안에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자로서의 피해의식과 인정투쟁이 공존한다”(329). 저자는 <태극기 휘날리며>,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부터 <곡성>, <아수라>에 이르기까지 서사 속의 아버지의 효과를 탐구한다. 아버지를 영웅시했든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든 간에, 아버지는 무의식적으로 추구되어온 것이다.


순응과 전복은 몇 가지 측면에서 영화 비전공자/비전문가들인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우선 한국영화사를 인물 중심(감독)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1960년대나 70년대, 더 넓게는 90년대 초반까지 상대적으로 심리적 거리가 있는 한국 감독들과 함께 그 당시를 대표하던 작품들과 경향을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어떻게 장르의 규칙을 변용했는지”(5)에 대한 집중은 코리안 뉴웨이브 세대(박광수, 장선우 등)를 거쳐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에 이르기까지 감독들의 대표작들로까지 이어진다.


영화를 다루고 있는 도서를 읽는다는 것은 영화를 발견하는 데도 그 의의가 있을 터. 두 번째로, 순응과 전복은 독자들에게 영화를 발견하게끔 해준다. 친숙한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내가 보지 않은 영화를 발견할 수 있을 뿐 더러, 내가 이미 본 영화라도 그 영화를 깊이 있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영화를 재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영화에 대한 기술적이거나 전문적인 지식이 전무하더라도 읽어나가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저자의 영화에 대한 분석은 서사 중심으로 이뤄지며, 다루는 감독·작품들도 소위 메이저급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동시에 이것이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이자, 독자들이 그 외의 다른 영화들은 스스로 찾아봐야할 몫으로 남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1990·2000년대의 어떤 한국 영화를 볼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다면 이 책이 꽤 실마리를 주는 편이다.


저자는 2010년을 넘어가며 한국 영화들에서 주목할 만한 감독과 표현법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지만 어떤 방향에서든 새로운 바람은 불어올 것”(330)이라는 기대는 남긴다. 아비 없는 자식이었지만, 그래서 또는 그랬기 때문에 필모그래피 속에 그들만의 인장을 남긴/여전히 남기고 있는 박찬욱, 봉준호 등의 세대가 어느덧 중견 감독이 되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저자가 차근히 풀어놓았던 한국 영화의 어떤경향을 길잡이 삼아, 앞으로의 그 경향들이 어떻게 순응되거나 전복되어가는지를 지켜볼 과제가 남았다. “인과론적 서사의 변형과 파괴와 세련, 그것을 통한 쇼트 이미지의 기능적 확장을 꾀하는한국 영화를 만날 과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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