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 주고 눈을 맞추는 책, 사계절 <일과 사람> 시리즈 

일과 사람 1. 중국집 요리사 편 <짜장면 더 주세요!> 자세히 보기

서울에서, 그것도 학원 가방을 세 개씩 겹쳐 들고 다니며 자란 저에게, 풀이란 그저 초록색 하늘하늘한 식물이었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나물이요, 먹을 수 없는 것은 잡초라고 분류하는 수준이었지요. 다 자라서 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하나씩 풀이름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가 풀이름을 알게 되면서 겪은 가장 놀라운 깨달음은, 이름을 알면 그 풀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풀이라면 그저, 식물, 잡초, 푸성귀라 부르는 초록색 엽록소와 질긴 섬유질을 지닌 물질이었는데, 이름을 알게 되면, 찾아낼 수 있고, 혹시 여기에도 있는지 둘러보게도 되는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파주 출판단지를 산책하다가 만나는 풀밭에서도 이름을 아는 풀들은 눈에 쏙쏙 잘도 들어옵니다. 아, 저건 강아지풀이다. 쑥, 민들레, 꽃다지, 쇠비름, 명아주 개망초도 있구나!



국민, 민중, 인민, 대중, 군중. 무어라 부르건, 사람들 무리도 그런 것 같아요. 선전의 대상, 돈 꺼내는 소비자, 돈을 벌게 해 주는 노동력, 믿을 수 없는 유권자라는 어떤 막연한 것으로 분류될 때가 많아요. 무턱대고 못 미더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불쌍히 여기기도 하지요. 무리의 속성에 따라 내가 속해 있으면 우리 편, 아니면 나쁜 편으로 가르기도 하고요.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사연을 듣고, 눈빛을 알고, 손 생김새를 보아야 합니다. 무리를 가리키는 개념어에 홀리지 말고, 그 속에 있는 구체적인 삶들을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찾아낼 수 있고, 혹시 있는지 둘러보게 되도록 더 잘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야만 내 삶과 연결 지을 수 있고, 공동의 희망을 가꿀 수 있으니까요. 

일과 사람 2. 우편집배원 편 <딩동딩동 편지 왔어요> 자세히 보기

일과 사람 시리즈가 바로 그런 책입니다. 이름을 불러 주고 눈을 맞추는 책입니다. 동네에서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을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가족들과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일을 하면서 어떤 보람을 느끼고, 무엇 때문에 힘들고 속상한지, 내일에 대한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책입니다. 이렇게 이웃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애정을 가지게 되면, 이웃이 내 삶과 연결되는 부분, 도움과 돌봄을 나누는 지점을 찾을 수 있고, 이웃과 세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정성껏 만든 책입니다. 이 점을 살리기 위해서 작가들이 무척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작가들을 고생시키느라 편집부도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자랐습니다. 책을 만들면서, 책 속에서 이웃과 세상을 만났거든요. 무거운 팬을 들고 일하느라 오른팔 보다 더 굵은 왼팔을 보았고, 불 앞에서 일하느라 늘 벌겋게 익은 얼굴도 보았어요. 집배 정밀도를 익히며 골목골목 소식을 전하는 믿음직한 두 다리를 만났고, 고향에서 올 편지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새색시에게 필리핀 친정에서 온 편지와 사진을 전하는 기쁜 얼굴도 만났고요. 

작가들과 편집자들이 책을 만들면서 만난 이웃과 세상을 어린이들에게 내놓게 되어 뿌듯합니다.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고 동네에서 만나는 이웃에게 더 반갑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일하며 사는 부모들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랑스럽고 뿌듯한 모습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책을 만들려고요. 작가들을 더 고생시키면서요. - 사계절출판사 '일과사람'팀 심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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