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과 기록으로 탄생한 누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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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가 자라고 자라서>
정미라 글, 박지훈 그림 / 한울림어린이

아들이 초등학생 때 선운사로 여름휴가를 떠난 적이 있다. 선운사 입구 참나무 숲 나무줄기에 사슴벌레가 나무진을 빨아먹으며 우글거리는 걸 발견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두 마리만 길러볼까 싶어 미안하지만 집으로 모셔왔다. 사육상자를 만들고, 수박을 썰어주었더니 붓처럼 생긴 혀로 잘도 빨아먹는다. 아들은 사슴벌레 오줌에서도 수박 냄새가 난다며 배를 잡고 웃어댔다. 

사슴벌레나 개미 혹은 금붕어를 기르면서 관찰해본 경험이 있다면 관찰이란 게 얼마나 놀랍고도 탐구적인 활동인가를 알 수 있다. 짧은 시간이라도 대상물을 바라보면서 나의 오감과 정신을 온전히 끌어낼 수 있으니까! 더 살펴보고, 더 듣고, 더 냄새 맡고, 더 느끼면서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여기에 서너 줄 관찰 일기를 쓴다면 금상첨화다.

<누에가 자라고 자라서>는 누에나방의 애벌레인 누에를 직접 기르면서 관찰하고 그려낸 관찰 그림책이다. 주인공인 초등학생 재진이가 40일 동안 누에를 관찰하면서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누에나방이 되는 극적인 성장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재진이는 누에를 가족처럼 여기며 틈날 때마다 상자 안을 들여다본다. 누에들이 쉬지 않고 뽕잎을 먹어치워 먹이가 다 떨어지자 재진이네 가족은 뽕잎을 찾으러 가까운 산으로 총출동한다. 드디어 뽕나무를 찾아내고, 열매인 오디를 따서 맛보게 된다. 까맣게 익은 오디를 맛보고 입 주위가 시꺼메진 아이들 모습이 정겹다.
먹고 한숨 자고, 먹고 한숨 자는 사이에 누에는 쑥쑥 자라 네 번이나 허물을 벗고 5령 애벌레가 된다. 책장을 넘기면 하얀 바탕의 화면이 검게 바뀌며 두 마리의 누에가 클로즈업된다. 이 대목에선 아이들과 함께 달뜬 목소리로 책 속 문장을 읽고 싶어진다.

얼마 후, 누에가 집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입에서 뭔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형, 이것 봐! 실이야. 누에 몸 속에 실이 있나 봐.” 구불구불 8자 모양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하얀 실입니다.

몸에서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 누에의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바로 이 실이 비단을 짜는 명주실이다. 고치를 뚫고 나온 누에나방이 짝짓기를 하고 나서 알을 낳은 다음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죽은 것이다. 
 
이를 알아차린 재진이는 “누에나방아! 남은 알들은 내가 잘 돌볼게” 속삭인다. 한 달 넘게 함께 지낸 나방의 죽음 앞에 재진이의 서운한 마음이 전해져 금세 책장을 덮을 수가 없다. 

따스하고 세밀한 그림과 함께 펼쳐지는 이 책은 누에의 한살이 지식을 알려줄 뿐 아니라 자연 관찰의 기쁨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깨닫게 해준다. 책의 부록에는 누에박물관과 체험관에 관한 정보가 실려 있어 체험 활동을 해본다면 더 좋을 듯싶다.

나무에서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는 이 좋은 봄날, 아이들과 함께 자연 관찰을 하며 봄나들이 가보자. 관찰을 위해 특별한 도구나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다. 공책과 연필, 밝은 눈과 귀, 신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날마다 지나치면서도 잠시 멈추고 바라보기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멋진 일들이 눈앞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김순한(어린이책 작가, <이렇게나 똑똑한 식물이라니!> 저자)  

* 본 글은 아침독서신문 초등48호 4월1일자 10면에 게재된 서평을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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