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가 주는 아련한 느낌을 그대로 지닌 동시집입니다. 제가 아는 시가 제법 되어 반갑더라구요. '안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울만큼 유명한 작품들이긴 하지만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 냇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 이원수 「고향의 봄」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 냇물아 퍼져라, 널리 멀리 퍼져라. /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여 주어라 //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 냇물아 퍼져라, 퍼질 대로 퍼저라. / 고운 노래 한마디 들려 달라고 /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여 주어라. - 윤석중 「퐁당퐁당」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ㅡ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ㅡ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윤동주, 「소년」

엄만
내가 왜 좋아?

ㅡ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ㅡ그냥...... - 문삼석, 「그냥」 


한 줄 한 줄 눈으로 따라갈 때 자연스럽게 입가를 맴도는 멜로디. 대부분 시로 기억되기 보다는 노래로 더 친숙합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애송 동시 50편을 묶은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에는 이렇게 익숙한 즐거움과 아이처럼 맑은 서정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시인이 생기거나, 뜻밖의 발견을 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기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에 동의하실 수 있나요?^^ 여기 모인 모든 시인들은,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것은 동시라는 신념이라도 가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예쁜 구슬처럼 한복처럼 곱고 단아한 노래를 합니다. 재기발랄하고, 참신한 언어로 주목을 받으며 한국 동시의 지평을 넓혀가는 시인들의 행보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지만, 오래되었으나 잊혀지지 않은 이 시들의 몫 또한 더욱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문학 작품들이라면 마땅이 그러하듯, 우리가 시 혹은 동시에 기대하는 정서를 충족시켜주니까요. 

동시집의 여백이란 것이 워낙에 무궁무진한 감상의 여지를 주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 속을 배회합니다. 한국인의 애송동시로 선정된 50편의 목록이 어떤 권위를 갖거나, 완성도의 높고 낮음을 가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백석의 시가 실리지 않은 것은 좀 아쉽다는 생각, 책 속에 담긴 알록달록한 삽화는 엽서로 만들면 정말 예쁘겠다는 생각, 또... 매일 보는 식구들의 얼굴이 새삼스럽게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공연히 아버지를 불러보고 싶고. 우리 시골동네 친구들이 생각나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네요.

그 정겨웠던 시간들을 돌아볼 여유 없이 바로 오늘, 혹은 내일 코앞에 닥친 일에 전전긍긍하며 아둥바둥 하던 생활에 잠깐 쉼표를 찍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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