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사계절 즐거운 책읽기> 2009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
  

 시작은 결코 반이 아니다! - <파브르 곤충 이야기> 를 작업하며  : 사계절출판사 아동교양팀 최일주
 

서울은 겨울도 춥지만 여름도 덥다. 2002, 나는 창문을 열면 시원한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상상을 하며 한여름의 폭염을 말없이 견뎌 나갔다. 6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한여름을 견디는 건 무척이나 힘겨운 일이었다. 여름이면 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뜨거운 태양이 창문을 정조준하기 전 서둘러 몸을 피해야만 했다. 난 그 때마다 집 근처 경희궁을 찾아갔다. 딱히 갈 곳, 가고 싶은 곳도 없고, 길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전철을 자유자재로 갈아 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비록 인공 숲이었지만 경희궁엔 작은 숲이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 멍하니 앉아 해가 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지루한 주말을 보냈다. 신문로 일대를 활약하는 야생 길고양이들의 근거지인 줄로만 알았던 경희궁을 다시 보게 된 것도 그즈음이다. 온갖 꽃과 곤충 그리고 다람쥐들이 도심의 세렝게티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마침 술과 고기를 멀리하던 차에 경희궁의 세렝게티에서 보내는 주말의 야생 생활은 자연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찬바람이 불자 창밖에 심어져 있던 쥐똥나무의 좁쌀만 한 하얀 꽃이 쥐똥처럼 새까만 열매로 변해 버렸다. 썩 달갑지 않은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방이 좁아 계절이 바뀌면 옷을 고향 집에 보내곤 했는데, 무슨 일인지 가을 옷이 올라오지 않아 여름옷으로 혹한의 가을바람을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밤마다 가을 모기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자연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때 읽었던 책이 바로 『파브르 곤충기』였다.
  

  

책이 출간 되기 전 여러 가지 표지 시안들
   

최종 표지 (아래)

『파브르 곤충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건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4년쯤이다. 그 동안 난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곤충에 관한 재미난 과학적 사실을 모아놓은 책 정도라고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파브르 곤충기』는 곤충의 세계를 인간의 역사와 탐욕에 빗대어 풀어 가는가 하면, 어느새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의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나는 책장을 덮고 "이런 내용이었구나!"라는 감탄을 수없이 되뇌었다.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어린이판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것도 아마 이즈음이다. 그리고 파브르의 또 다른 저작인 『파브르 식물기』를 읽으며 겨울을 났다.

2003년 파브르의 나라 프랑스에서 폭염으로 수천 명의 노인이 목숨을 잃었다는 끔찍한 소식이 들려왔고, 그 해 12월 우리 회사는 파주로 이사를 왔다. 『곤충기』를 기획하기 시작한 건 2004년이다. 우리 팀은 파브르가 쓴 『곤충기』와 『식물기』를 '사계절 아동교양 클래식'이란 시리즈로 출간하기로 했다. 흔히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나는 이 속담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파브르 시리즈의 '시작'은 결코 ''이 되지 않았다.

글을 완성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파브르 곤충기』를 아이들에게 읽히려면 완역만이 능사는 아니다. 초등학생들에게 읽히려면 몇 가지 장치가 필요했다. 먼저 1800년대에 나온 『곤충기』는 현대 곤충학에서 보면 잘못된 부분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이런 오류들을 바로잡는 데만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수없이 등장하는 복잡한 실험과 관찰을 아이들에게 글로 이해시키는 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원본에는 표본 그림만 몇 컷 있을 뿐 그림이 거의 들어 있지 않아 실험이나 관찰 상황을 유추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따라서 단순한 번역만으로는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문학적이면서도 철학적 사유의 깊이가 느껴지는 파브르의 문체를 온전히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은 무척이나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쉽게 풀어 써야 했다.
 

 

  곤충 스케치 

  

문제는 그림 작업이다. 논픽션 도서의 가장 큰 문제는 늘 그림 작업이다. 『곤충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곤충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프랑스까지 날아가 취재를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많은 도감과 전문서적 그리고 동영상 자료를 찾아가며 마치 퍼즐을 맞추듯 힘들게 그림을 완성했다.

이제 파브르 시리즈 작업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다. 물론 5년 동안 이 책만 만든 것은 아니다. 파브르를 통해 생명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기도 했지만, '시작'이 결코 ''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만큼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프랑스의 희곡작가 에드몽 로스탕은 "파브르는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과학자처럼 관찰하며 시인처럼 표현한다."는 말을 남겼다. 사계절출판사 판 『파브르 곤충기 이야기』를 읽고 독자 여러분이 어떤 파브르를 만나게 될지 사뭇 기대가 된다.  

▶ 장 앙리 파브르 지음 / 성기수 풀어씀, 사계절 출판사 <파브르 곤충 이야기> 자세히 보러 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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