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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미술관 - 아픔은 어떻게 명화가 되었나?
김소울 지음 / 일리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비문학을 어려워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비문학이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보다 더 많은 지식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거나 어렵게 설명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이다. 나에게는 비문학 한 권에 담긴 지식이 한 번에 흡수되지 않아 언제나 부담이 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바로 적당한 픽션이 적절히 섞여 있어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유명한 그림과 작가들에 대해 알아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작가들의 이야기가 마치 커다란 이야기의 한 등장인물들처럼 느껴지게 한 닥터 소울의 설정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인상파 화가들'이라는 소재>
이 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다양한 인상파화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상파, 인상주의라는 것이 무슨 사조인지 배웠지만 뒤돌아서면 잊어버렸다. 개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단어만 무턱대고 배우니까 당시에는 이해한 것 같아도 실제 체감되진 못했던 탓이리라.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인상파 화가들의 개인적인 이야기(적절한 픽션이 섞인)를 들으면서, 인상파 화가들이 무엇을 고민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그려내고 싶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서 큰 수확이었다.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그림에 대한 규칙에서 벗어나 자신이 보고 느끼고 담고 싶은 내용을 담으려는, 즉 자신이 대상에서 받은 ‘인상’을 그림이라는 형태로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인상주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가들이 닥터소울을 찾아와 마음의 고민을 털어놓고, 그것을 화폭에 나름의 방식으로 옮겼다는 설정이 적절하게 느껴졌다. 더불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이렇게 표현되었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그림에 대한 이해도 더 높아지는 것 같았다. 단순히 그림을 보면서 이건 뭘 뜻하고, 이건 무슨 기법이고 분석하듯, 공부하듯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 안에 작가의 이런 고민과 마음이 담겼겠구나 생각하니 자동으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주입식으로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그림을 봤을 때와는 정말 다른 경험이었다. 책이 마음에 쏙 들었다.
<15명의 화가들 >
이 책에는 총 15명의 화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각자 고민을 가지고 상담소에 찾아온다는 설정이다. 상담가인 닥터소울은 적절한 질문을 던지거나 화가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그 그림에 대해서 화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독자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 화가들의 이야기도 알게 되고 그림에 대한 이해도 넓힐 수가 있다. 다소 픽션이 들어간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미 있는 알려진 사실을 차용했다고 하니 편안하게 독서하면 될 것이다.
아픈 사랑을 조각으로 남긴 클로델, 장애가 있지만 오히려 그 장애를 넘어서는 그림을 그리려던 로트렉, 모리조라는 모델을 써 인상깊은 그림을 남긴 마네와 그의 모델이자 화가였던 모리조. 행복한 그림만 그리고 싶어했던 르누아르, 자신의 상처를 그림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젠틸레스키. 자신의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예술에 몸바친 고갱과 불안한 정신세계를 가졌던 고흐. 그 외에도 프리다 칼로, 에곤 쉴레, 고야, 드가, 뭉크, 세잔 등의 화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재미있었던 화가들의 이야기>
모든 화가들의 이야기가 다 유익하고 재미있었지만, 특히 재미있었던 화가들의 이야기는 마네와 모리조, 젠틸레스키, 고갱과 고흐 이야기였다.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에 대한 지식을 얻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이제 그 그림을 볼 대마다 그림 속 모델인 모리조의 눈길속에 담긴 풍자적 의미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성폭행을 당한 아픈 상처 때문에 남자를 칼로 찌르고 죽이는 그림을 그린 젠틸레스키의 이야기와 그림은 같은 여자로서 큰 공감이 됐다.
고갱과 고흐..각각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달과 6펜스>와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책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너무 장황한 이야기에 그 작가들이 실제하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닥터 소울과 이야기를 하는 고갱과 고흐의 이야기를 들으니 왜 더 몰입되고 현실감이 생기지? 대박... 특히 정신병원에서 밖을 바라보며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린 고흐의 이야기에는 가슴이 뜨거워지고 아프기까지 했다.(이 설정은 픽션이었지만 적절하면서도 효과적인 픽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설정을 한 것은 작가가(닥터 소울) 고흐에게 그만한 애정이 있고 상상력을 썼다는 뜻이리라...
닥터소울 : 어떤 마음을 담아서 그렸나요?
고흐 :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화가였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고,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격렬하게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제가 어느 날 창밖으로 별빛을 보게 된다면 이런 풍경이 나를 맞이해 주었으면 했어요. 정말 유약했고..., 상처받기 쉬웠고...,마음이 여렸던 한 남자가 보고 싶었던 밤하늘이예요.
<마무리 감상>
당시에는 정말 그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때 제약이 많았던 것 같다. 기존에 수용되는 관례가 있었고 그림이 너무 외설적이면 안되며, 여자는 그림을 그리면 안된다거나 그리더라도 그릴 수 있는 대상(물건)이 정해져 있다든지 하는 것들...물론 그 때의 고민과 지금의 고민은 다르다. 하지만 그 시절의 화가들의 고민을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은 경험이었다.
그림을 통해 내면의 아픔을 이겨낼 힘을 기른다든지하는 그림의 치유적인 성격을 잘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화가들이 가졌음직한 숨은 고뇌들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그로 인해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까지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었으니, 그림을 잘 모르지만 관심은 많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책일거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더 좋은 책이었다. 작가분이 화가들과 그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으면서 인간적인 따스한 애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설정의 책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그림이 더 좋아졌다고 해야하나? 단순히 지식을 전하거나 그림을 보고 자신이 느낀 것을 에세이처럼 전달하는 형식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작가의 시선으로 녹여낸 따스한 시선으로 전달한 것이 마음에 든다. 그런 시각은 여태 쉽게 접해보지 못한 시각이라 독서 후에 의외의 은은한 감동을 남겼다.
그림을 볼 때 더 진지하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들이 하고 싶은 말을 그림을 통해 잘 듣고 싶어졌다. 사회에 대한 분노나 비판인지, 상처받은 내면의 모습인지, 인정받고 싶은 욕망인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바람인지...그림 안에서 작가들을 살아있는 인간으로 볼 수 있게 해준 이 책이 참 고맙다.
닥터소울 : 어떤 마음을 담아서 그렸나요?
고흐 :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화가였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고,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격렬하게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제가 어느 날 창밖으로 별빛을 보게 된다면 이런 풍경이 나를 맞이해 주었으면 했어요. 정말 유약했고..., 상처받기 쉬웠고...,마음이 여렸던 한 남자가 보고 싶었던 밤하늘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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