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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송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윤해서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평점 :
가끔(자주) 외로움이 넘칠 때가 있다.
오늘도 역시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그냥 내 외로움을 벗 삼아, 이 책을 주머니에 찔러넣고(책이 작다. 폰트가 크다. 베리 굿.) 집을 나왔다. 가게에서 녹차를 마시면서 몸이 뜨뜻해지고 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이 책을 읽었다.
단상같은 군상.
이름들이 나오고 사건이 나오지만 연결되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저 쾰른 강,한강처럼 한 방향으로 흐르는 무심하고 외로운 인간의 삶을 어린왕자의 의자에 고쳐 앉듯이 몇번이고 의자를 움직이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그런 느낌이다.
이야기가 짤막하게 계속 끊기고 설명을 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이름을 외우고 인과관계를 연결하느라 초반에 좀 어려웠다. 그러나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사건을 이해하는 동안,그렇게 우리를 기다려주며 이야기는 계속 어떤 분위기를 향기처럼 내뿜고 있다.
스무살에 쌍둥이를 낳았으나 그 아이들을 두고 독일로 간 여자. 그리고 그녀의 삶. 평생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아 결국 혼자 남은 아들이 그 조각을 모으려 한국으로 온 이야기.나는 책을 읽으면서 책 속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 어머니의 내면의 목소리가 침묵 속에서 들리는 듯 했다. 모든 것을 말하고 드러내고 공유하는 가치를 덕목으로 내세우는 현대에서, 오히려 평생 가슴에 묻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슬픔의 이야기가 너무도 묵직하게 느껴졌다. 말을 한다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까?음악이라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었을까(연결의 매개체로 쓰이기는 하지만)? 마지막 무덤 위에 놓인 두 장의 뒤늦은 사진. 그것으로 고요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이미 시간은 강처럼 흘러갔을 뿐이다. 그녀의 이야기에 다른 등장인물들의 내적 독백들은 부수적인 '목소리' 로 여겨질 정도였다.
줄거리나 상징, 이야기 해석을 쓰기보다(제목이 왜 암송이지?암송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하긴 한데...이야기들이 조각조각 잘리니까)
외로울 때 같이 걷기 좋은 소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실제 나는 걸으면서 읽고, 차 마시며 읽었는데,내 외로운 마음에 (녹차의 기운인지도 모르지만) 뭉근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식물인간이 되어 내면의 목소리만 낼 수 있는 여자, 그리고 목소리들을 들어야만 하는 여자, 그리고 목소리를 내지 않고 간직한 여자와 그 여자들 주변의 남자들. 남자들만이 주인공이 아니어서 또 좋았다.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 에서처럼 여자가 주인공이되(너무 뻔하게 주인공이 여자다 섀키들아!!가 아니다) 조연인 남자들도 분명한 서사와 캐릭터가 있는 이야기라. 좋았다.
닿지 않는 목소리, 기다리는 믿음, 흘러가는 삶, 뒤늦은 이해, 뒤늦은 위로.
그리고 흐르는 강과 시간.
뭘 가르치려 하지 않는 이야기라 좋았다.
시 같기도, 사진을 물끄러미 보는 것 같기도, 음악을 조용히 혼자 듣는 것 같기도 한 소설이었다.
혼자 있을 때, 저,들리나요? 내 말 들려요?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 P79
나는 타인의 고독과 더불어 홀로, 마음속 깊이 홀로 있다.(출처: 가스통 바슐라르, <촛불>, 김병욱 옮김, 마음의 숲 2017 - P144
강물은 이유를 묻지 않는다. 목적을 묻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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