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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 오감에 대해 애커먼은 생물학, 인류학과 지극히 개인적인 에세이류를 넘나들며 장황하게 얘기를 해주고 있다. 특정 분야에 국한된 글쓰기를 꼭 해야하는 것은 아니나, 과학적 이야기가 나오고 갑자기 "색채의 이상한 성질은 그것에 특별한 목적이 없다는 점이다" 며 갑자기 감정적 모드로 전환되는 애커먼의 글쓰기는 내겐 반갑지 않은 양식이다. 무슨 이야기가 이렇게 많아서 472페이지나 될까?  좀 더 가지치기를 했더라면 더 나았을 성 싶다.
아마도 이 책의 주제는 다음의 내용인 듯 싶다.

"가장 멋진 일, 삶과의 가장 멋진 연애는 가능한 한 다양하게 사는 것, 힘이 넘치는 순종의 말처럼 호기심을 간직하고 매일 햇빛이 비치는 산등성이를 전속력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위험이 없다면, 그 모든 넓이와 계곡과 봉우리와 우회로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영토는 무미건조할 것이고, 인생에 매력적인 지형은 전혀 없이 오직 끝없는 거리뿐인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것은 신비에서 시작되었고 신비로 끝날 테지만, 그 사이에는 얼마나 거칠고 아름다운 땅이 가로놓여 있는가"

이 주제가 시종일관 관철되는 내용이었다면 훨씬 더 근사한 책이 됐을 거 같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바닐라콩'에 대한 부분인데, 그 부분을 읽노라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가 당연 떠오른다. 바리스타가 등장해야 할거 같은 각종 고급커피의 난해함, 그윽한 향을 누리기 위해 정성을 들여야 하는 다도처럼 바닐라도 "자연산"을 맛보기 위해 수많은 공정과 과정이 필요한데, 우리는 공장에서 대량생산 된 합성성분의 바닐라가 원조인마냥 익숙해졌다. 나 또한 "바닐라난" 존재자체도 몰랐다.
"진짜 바닐라는 바닐라콩의 종류, 신선도, 원산지, 가공 방법과 기간 및 햇빛의 세기에 따라 단맛에 먼지 맛에서 습기의 맛과 흙 맛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맛을 내고, 오랫동안 힘들게 보살펴야 열매를 맺고 익는다.  바닐라는 덩굴난의 콩꼬투리를 말한다.  바닐라난은 향기 없는 녹색과 흰색의 꽃을 잠깐 피우는데, 꽃은 겨우 하루밖에 가지 않기 때문에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제때 꽃가루받이를 해주어야 한다.  바닐라콩은 수정이 된 후 성숙해지기까지 6주가 걸리지만, 수확하기 위해서는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  바닐라콩이 완전히 성숙하면, 그것을 끓는 물에 집어넣어 숙성을 멈춘다.  그런 다음 건조시켜 가공 처리를 한 뒤, 햇볕 속에서 천천히, 6개월에서 9개월간 건조시킨다."

오! 공장과 합성성분의 위대함이여! 이 고상한 번거로움을 한.방.에 날리시다니~!!
 

2여년 전 이사올 때 주위 소소한 반대에도 거실장을 했었다. 다행히 빈집인 상태라 거실장을 해놓고 저녘마다 짐을 옮긴다는 핑계로 거실장 감상을 하곤 했었다. 그 후 아이들이 어줍잖은 상장을 받아올 때마다 진열을 하곤 했었는데, 어느 날 놀러온 조카가 진열 된 상장을 보고 감탄을 했었다. 외숙모(내)가 하는 행동 - 상장 진열하기 기타등등 -은 자기가 교육받은 각종 연수내용에 있었다며, 외숙모는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시냐고.
어헛! 아마도 그건 말이쥐, 내가 많은 책을 읽어서이지 않을까, 짐짓 난척하며 순간 이 책을 떠올렸다.
대체로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기념비 앞에 선 사람들은 어쨌거나 감정이 끓어오르고, 눈에 비치는 삶은 대개 기념비적이며, 다른 것에 비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침을 알기에 정부에서 끊임없이 기념비를 세운다는, 이 책에 나온 내용이 떠오른 것이다.
하여, 독서에 대한 기쁨과 뿌듯함을 느끼며 나만이 알 수 있는 끄덕거림을 했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이 책은 이사 오고도 한참 지난 후 읽었던 책이었다. 그저 단기기억에 머물고 있던 책 내용이 조카의 말한마디에 불쑥 튀어나와 고상한 지적 탐구활동을 합리화하며 어울리지 않는 뿌듯함을 준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기억력으로 사실을 왜곡하지 않도록, 난 끊임없이 나를 의심해야 한다. 



 

읽은 날 : 2010. 11. 29.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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