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로 꿈꾸다 - 여덟 가지 테마로 읽는 고구려 고분벽화 이야기
이종수 지음 / 하늘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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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로 꿈꾸다, 이종수, 293쪽> 

 

책읽기와 글쓰기 시간이 쌓여갈수록 '괴로움'의 시간이 늘어가는 건 제대로 하고 있어서, 라 생각 

하고 싶다.  앎과 실천의 괴리에서 오는 괴로움은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불청객인데,  매번 변변한  

대접을 못하곤 한다. 불청객은 주인이 되고 싶은지 갈수록 강도를 높여 찾아온다. 

활자와 불청객 사이에 갇혀 옴싹달싹 못하느라 책읽기도 쉬어버린 어느 날, 독서 대신 운동을 하면 

좋으련만, 습관을 이기지 못하고 책을 펼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습관을 탓할 새도 없이 푹 빠져버린 이 책 <벽화로 꿈꾸다>의 재미는 '괴로움'을 밀쳐내고 순수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하니, 짐짓 모른채 순수한 독서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당신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해 얼마나 친분이 있나요?' 하며 편안하게 운을 띄는 이 책은 고구려  

벽화를 이렇게 안내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나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니면,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 

지요, 혹시, 우리 집 앞 그 카페에서 만나요, 이 정도로 친한 사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고구려 고분벽화의 생애와 아름다움에 대해 혹은 옛글과 풀이에 기대어, 혹은 즐거운 상상으로. 이 

제 간단한 인사는 나누었으니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대하면 좋겠다. 고 

구려 시대의 벽화라니, 오랜 시간을 거슬러 가야 하는 길이다." 

 

저자의 친근한 소개와 문장은 1500년 전 고구려 고분벽화를 지금의 시간으로 옮겨놔준다. 과거에 

존재했던 사실이 아니라, 2012년 지금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알려주니, 도올 김용옥 선 

생이 말씀하신 '역사는 고중근(고대.중대.근대)이 아니다'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 < 

벽화로 꿈꾸다>를 통해, 박제된 고구려 벽화가 아닌 벽화의 생애를 통해 지금을 돌아볼 수 있다. 

아, 이 얼마나 멋진가! 벽화의 생애라, 벽화에게 말을 걸어가며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일 말이다. 

 

무덤 입구, 느닷없이 안방으로 들어섰을 때의 황당함을 배려해 방으로 만들어진 길, '연도 羨道'를 

따라 현실(玄室 - 어두우면서도 깊고도 그윽한 공간, 탄성이라 해도 좋을 한숨이 흐른다)로 들어가 

처음 만난 벽화는 초상화다. 

초상화가 주인공이었던 고분에 이어 408년 덕흥리 벽화고분 앞에서 말을 건다. 너는 왜 이전까지 

벽화가 보여준 초상화를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냐고. 너는 왜 새로운 형식의 벽화를 보여주고 있냐 

고. 

상상으로 얻은 벽화의 답이다. 

"초상화를 포기할 마음이 없었어. 주인공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 그에게 어울리는 줄거리를 만들 

어 조연을 투입하면 어떨까 생각했지." 

 

 

 <덕흥리 고분벽화>

 

5세기 말 각저총 앞에서 말을 건다. 너는 왜 영원성을 위해 개성적인 아름다움을 포기하기로 했던 

초상의 약속을 어겼냐고.  그러자 각저총 주인공이 오히려 되묻는다.  우리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 

냐고. 부부 초상 대열에 서겠다고 자청한 기억이 없다고. 

이 대답에 저자는 난처해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음....그렇다면, 이런 상황이니? 길 떠나는 남자를 배웅하는 여자 이야기 같은? 

일상이되, 일상이 아닌 이별들. 때론 짧은 헤어짐 후에 재회의 기쁨을, 하지만 때로는 그 자리가 영 

원한 작별의 순간이 되기도 한? 그 순간에 빗대어 묘주 부부의 초상을 그린...거니? 

 

 

<각저총, 전별도>

 

그 다음 많은 상징을 가진 연꽃으로 장식한 고분의 이야기를 듣는다. 

"연꽃은 말이야, 이야기를 모두 생략하면서도 '벽화'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낸 새로운 방법이야. 

 지금까지 얘기해 온 직설법이 부담, 아니 낯간지러워서 이미지로 대체한 거라고." 

아, 그래? 그런데도 여전히 궁금해. 그 책임을 왜 콕집어 연꽃에게 맡긴, 걸까? 

 

 

 

 

"그 '아름다움'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엿보이지 않니? 아름다움의 힘을 너무 가벼 

이 여겨서는 안 되. 아무리 의미와 상징이 중요한 세계라 해도 그렇지, 묘실을 온통 '불상'으로 채 

웠다고 상상해 봐. 너라면 그 안에서 편히 쉴 수 있을까." 

  

벽화의 마지막 이야기는 '사신도'이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앞 시대의 인물들을 위해 짐짓 무심한 척 약간의 자리를 용인했던 수렵총에 

서, 사실 모두는 서로의 갈 길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마지막 순간이 다른 누군가에겐 새로 

운 시작임을. 

앞 시대 선배들과 달리 자기 안에서 은밀하게 몸부림치고 고민하며 조연에 머무르다가, 화려하게 

주인공으로 부상한 사신도는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다. 

배경을 정리하고 자신만의 힘으로 모든 평가를 견딘 강서대묘의 사신도는 '단순함'이 어떻게 아름 

다움까지 얻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묘실에 사신을 그려 넣는 일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미 4세기 초에 중국 무덤에서는 그 형식 

을 완전히 갖춘 사신도가 그려졌다. 그런데 유독 고구려에서, 묘실 전체의 주연으로 사신의 지위가 

격상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고구려만이 자신의 독자적인 길로 들어선 배경은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고구려가 이웃 문화의 영향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자신만의 회화를 찾았다는 점이 

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고구려의 벽화가 이 시대, 이처럼 찬란한 사신도 벽화에서 최후를 맞이한 

다는 사실이다. 절정에서 산화한다는 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결말은 아닐 터, 아름다운 그에게 맞 

춤한, 그런 마지막이다." 

 

중국, 일본 어디서도 보기 힘든 자신만의 회화를 찾고, 찬란한 아름다운 절정에서 산화했다니,  

'그리고....안녕....' 문장에서 느낄 수 있는 아련함, 그리움, 안도감이 밀려온다. 

언제고 고구려 벽화앞에 서게 되면, 벽화가 탄식처럼 내뱉는 '그리고....안녕....'을 듣게 되겠지.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그들, 아쉬움의 한숨을 길게 내뱉는다. 

 

 <강서대묘의 사신도>

 

읽은 날  2012. 9. 14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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