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해가 너무 쨍쨍해서 더워 못 견디겠다거나, 비가 너무 많이 온다거나, 날이 춥다고 불평을 한다. 하지만 달빛이 비친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달이 뜨면 다들 행복해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달에게 고마워한다. 아이들은 자기들 그림자를 구경하고 달빛 속에서 논다. 사람들은 공터에 모여앉아 얘기꽃을 피우고 밤새 춤을 춘다. 달이 뜨면 온갖 행복한 일들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가 달처럼 살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p.29 

전쟁이 시작된 그때...
나는 겨우 열두 살이었다.

참 어린 나이에 겪게 되는 전쟁이야기....
래퍼를 꿈꾸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이웃마을로 장기 자랑을 하러 나선 길이었길래 아무에게도 작별인사조차 하지못했다.
함께 했던 형과 친구들 6명....
전쟁이 났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가족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기.....
어쩔 수 없이 피난길에 오르기.......
겨우 탈출한 곳으로 배가 고파서 또는 여러가지 상황으로 다시 되돌아 가기 반복.......

그러면서 보게 되는 전쟁의 참혹성.....
겨우 도망가서 다른 곳에서 몇번 정착도 하지만
아직 전쟁을 겪지 못했던 마을 사람들은 피난을 갔다가도
반군이 들이닥치는 시간이 지연되는걸 가지고 전쟁을 피해간다는 생각에 생업에 복귀했다가
아무런 준비없는 상태에서 기습공격에 속절없이 당하고 이산가족이 되고........

이스마엘은 이과정에서 함께했던 형과 친구들을 모두 잃고 홀로 낙오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하게도 된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단지 여럿이 몰려 다닌다는 이유로 반군으로 오해를 받아서
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살아 있는 한, 더 나은 날이 오고 좋은일이 생길거라는 희망이 있단다. 더 이상 좋은 일이 생길거라는 희망을 잃게되면, 그때 죽는거야." p.80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올 때마다 나는 눈을감고 죽음을 기다려. 아직 살아있다해도 체념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때면 내 일부가 조금씩 죽어가는 것을 느껴. 머잖아 난 완전히 죽고 너희들과 함께 걸어가는 나는 텅 빈 껍데기만 남게 될거야.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말이 없겠지."p.102

이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아직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을 다시 만날 수도 있게 되었다는 희망도 잠시
눈앞에서 반군의 습격을 받아 가족 모두가 죽게 되는걸 눈으로 보게 되고....
반군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게 된다.

안전할 줄만 알았던 정부군이  보호하는 곳으로 찾아갔지만
어쩔 수 없이 소년병이 되어야 하는 상황.......
아이들에게 마약을 먹여가면서 전쟁터로 몰아가는 상황
정부군이나 반군이나 다를게 뭐가 있을까?????

‎"종교가 있다면, 내말은 기독교인이라면 말이다,
 오늘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라. 다시는 그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해산." p.167

물 먹는것보다 사람 죽이는게 쉬울 정도로......
복수를 하는게 당연하다고 믿게 되는 아이들.....

숲속을 전진해 나가면서 점령하여 기지로 삼은 마을들이 어느덧 내 집이 되었다. 우리 분대가 내 가족이었고, 내 총이 나를 먹여 살리고 지켜주었다. 내가 따라야 할 규칙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뿐이었다. 내 사고도 그 범위 이상을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2년간 전투를 했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과는 살인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어린 시절은 끝나버렸고, 내 심장은 차갑게 얼어 붙었다. 달이 뜨고 해가 뜨면 밤낯이 오고가는 줄만 알았지, 그날이 일요일인지 금요일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래도 나는 내 삶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96년 1월 마지막 주부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열다섯 살 되던 해의 일이었다. p184

12살부터 15살까지 겪은 전쟁...
그나마 15살에 유니세프에서 주관하는 재활치료를 받았던일이 이스마엘에게는 행운이었다.
더 많은 나이의 다른 사람들은 구제를 받지 못했으므로......

"난 네 간호사야. 그뿐이야. 나랑 친구가 되고 싶다면, 네가 나한테 친구가 되자고 부탁을 해야 할테고, 내가 먼저 너를 믿어주어야겠지." 그녀가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라 슬쩍 웃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내 갑작스런 미소에 당황하는 기색이었지만, 곧 이렇게 말했다. " 웃는 모습이 근사하구나. 좀 더 많이 웃어보렴."

재활치료를 하는 동안 제일 많이 사용한 말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그러나 그 말자체가 영 불편했던 아이들.....

아이들을 전쟁터에 내몰고 소년병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일에 대해.......
소년병의 숫자가 30만명이나 된다는 소리에 놀랄수밖에 없었다.
1996년...... 그다지 멀지도 않은 시기의 일이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점이라면,
그렇게 재활의 손길을 내밀었던 곳도.........
가족으로 새로 받아 들여 주었던 삼촌이 있던 곳도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또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로 돌아선 그곳.......

소년병으로 있을때...
그게 당연한것처럼 생존본능에 의존해서 살았을때도 힘들었지만
재활치료를 받고 그게 옳지 않은 일인지 모두 알아버리고 난다음에도
또다시 소년병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라는거.....
자신의 나라를 떠나지 않고서는 그 어디도 자유롭지 못하다라는 거.............

유니세프(unicef)의 도움으로 전쟁터를 빠져나온 이스마엘은 열일곱살이 되던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있는 유엔 국제학교에서 고교과정을 마쳤고, 2004년 오벌린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외교관계위원회와 해병대 전쟁 연구소를 비롯해 여러 ngo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어린이 인권의 실상에 대해 증언했으며, 유니세프에서 주관하는 '소년병 근절을 위한 국제회의'에 여러차레 연사로 참석하였다. 현재 뉴욕에 거주하면서 국제 인권감시기구 '휴먼 라이츠 위치(Hyman Rights watch)'의 어린이 인권분과 자문위원과 '유니세프 소년병 캠페인 홍보대사(UNICEF Advocate for Children Affected by War)'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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