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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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후에도 계속 이 작품을 쓰고 있을 것만 같다’고 작가의 말에 밝히셨어요. 쉽게 놓지 못할 것 같은 작품이라는 의미일까요? 모든 소설이 특별한 의미가 있겠지만, 이 작품은 작가 개인에게는 어떤 작품인가요?

“내가 20대를 통과해 나왔을 때 가졌던 바람들. 그 말들이 이 작품 안에 많이 들어 있어요. 힘들었고……. 그땐 다 그랬죠. 나만 그랬겠어요. 그런데 누군가가 ‘언젠가…… 지금 이 시기를 통과해나가면, 지금 느끼고 있는 것들이, 지금의 슬픔이나 고민들이 누그러지고 괜찮아진다’ 이렇게 말해주길 바랬던 것 같아. 그래서 책도 많이 읽었고, 존경하는 사람들의 말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귀를 기울이기도 했죠. 그 시기에 듣고 싶었던 말들, 그때 가지고 싶었던 감정이 많이 담겨 있는 작품이에요.”

한국 소설 끝을 내 본적이 별로 없다..
항상 읽다 보면 왠지 모를 답답함이 일어 끝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중 신경숙 작가님의 인터뷰 내용을 우연히 읽게 됐었다.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3001&cont=4543

막 사춘기를 통과하는 우리아이들.....
힘들어 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성장 소설 쯤으로 생각했었다.
윤서, 단, 명서, 미루 네명의 청춘이 등장하는 사랑이야기......
캠퍼스 내에서의 사랑이야기 인줄 알았다...
그냥 그저 그런 갈등을 내포한........... 

읽고 있는 동안 참 먹먹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람의 평생에 가까이 있는 단 한사람의 죽음이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가끔 들어왔던 터...
근데 한명도 아니고 여기서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나온다.
윤서의 어머니, 윤서의 오랜벗 단, 명서의 오랜친구 미루, 미루의 언니, 미루언니의 남자친구,
그들 모두를 하나로 엮어 주었던 윤교수님...........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들......
병으로든, 사고든, 의문의 죽음이든, 자살이든.....
어떤 방법이냐가 중요할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겨워 하는지가 중요한건 아니지 싶다.

함께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 잊.지. 말.자.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책속에서..

 - 천칠백여 편의 시를 서랍 속에 남겨두고 죽은 시인이래. 첫 시집이 죽은 지 사년만에 출간되었대.
- 누구?
- 에밀리 디킨슨
- 에.밀.리.디.킨.슨
- 이 세상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보는 사람 같아.
- 다른 것 뭐?
- 보이지 않는 것 말야. 죽음이라든가.. 그런거.
p32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책에 얼마나 많은 곳에서 죽음을 접할 수 있을지......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모여드는 모양이다'로 시작되는 <말테의 수기>의 다음 문장은 '그러나 나는 오히려 여기서 죽어간다고 생각될 뿐이다'로 이어진다 p34
 

- 미안하다니, 뭐가 말이니?
- 모든게 다.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는 사촌언니에게만큼은 다 미안했다. 잘 웃지 않은 것도 미안했고, 신혼집 방에 검은 도화지를 붙여놓고 지낸 것도 미안했고, 상냥한 성격이 아닌것도 미안했으며, 엄마를 잃어 사촌언니의 마음을 쓰이게 한것도 미안했다.  p35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윤이처럼 미안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거 같다.
죽어가는 자신을 옆에서 지켜보는 딸에게 미안해 아픈동안 애써 밀어내기를 한 정윤의 엄마도,
(정작 정윤이는 엄마 옆을 지키고 싶어했는데)
자신의 실수로 언니의 평생의 꿈을 망쳐 버렸던 미루도,
실종된 사랑하는 님을 찾으러 폐인처럼 돌아다니던 미루의 언니도,
끝내 분신자살을 한 언니를 지키지 못하고 평생을 죄책감속에서 산 미루도...
(미루는 언니에게 두번이나..... 만약 미루 부모님들이 고통을 덮어버리려 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싸웠더라면......... 정면에서 받아들이려는 미루를 막지 않았더라면..... 때론 최선이라고 믿는 일의 상당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망치기도 하는건지...... )
자신을 향한 단이의 마음을 받아들여주지 못했던 정윤이도
(난 사실 단이의 죽음에 대해서 윤이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좌절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었었다.. ㅜ)
힘들어했던 미루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못한 미루엄마, 윤이, 명서도....
 

윤교수도 좀 전에 윤미루와 함께 연구실을 나가던 그와 똑같은 말을 건넸다.
- 좀 전에 손을 내밀어줘서... 나는 정면으로 바라보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지 자네처럼 잡아줄 생각을 못했어. 자네가 윤미루를 향해 손을 내미는데 내가 부끄러워졌네. 자네 손을 잡지 않았어도 윤미루는 어째 자네 때문에 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p.77

이말이 주는 복선이 끝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참 슬펐다.
벗어났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아픔이 너무나 컸었던걸까???
 

폭력에 이로운 문장은 단 한 문장도 써서는 안된다.
우.리.는.숨.을.쉰.다.에 수록된 원고의 첫문장이었다. p.89

그의 냄새가 좋았다. 그 냄새는 윤미루는 지금 어디 있어? 묻고 싶은것을 밀어넣게 했다. 그녀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그를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할까? 그가 윤미루 얘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에서 나는 물안을 느꼈다. 그에게서 윤미루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어쩐지 나는 그의 등에서 내려 상처투성이의 맨발을 내디디며 이 어수선하고 혼란에 휩싸여 있는 도시를 홀로 걸어가야 될 것 같은 예감. 나는 갑자기 윤미루에 대해 격렬하게 솟구치는 나의 궁금증이 두려워졌다. 그렇게 알게 되는 것들은 그와 나 사이를 가깝게 할까, 멀어지게 할까?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가깝게 해준다고 여겼던 적이 있었다. 가까워지기 위해서 내키지 않는 비밀을 털어놓은 적도.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말로 꺼내기 어려웠던 소중했던 비밀이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 다른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의 상실감.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가까와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책을 일기전에 이부분에 대한 인용글을 어디선가 본듯도 하다..
참으로 많은 공감을 했었다.
누군가에게 비밀을 털어 놓는다 = 누군가와 친하다의 절대 공식일까?
아닌거 같다...
그냥 힘들어 할때 옆에 있어주고 그 순간을 견딜수 있게 만들어 주는거......
그게 진짜 친하다의 공식은 아닐까?????
털어놓아야 하는 비밀이 아니라 곁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비밀이 진짜 아닐까???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만 떠오른다. 진실과 선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올바름과 정의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폭력적이거나 부패한 사회는 상호간의 소통을 막는다.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나중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아 더 폭력적으로 된다.

나부터 독립적이고 당당하길 바란다. 숨김이 없고 비밀이 없으며 비난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원한다.
p183-184
 

우리 엄마는 나에게 누군가 미워지면 그 사람이 자는 모습을 보라고 했어. 하루를 보내고 자는 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라고. 자는 모습을 보면 누구도 미워할 수 없게 된다고. 나는 화가 나거나 힘겨우면 일단 한숨 자는걸. 자고 나면 좀 누그러져 있지 않아? 사람은 자면서 새로 태어난다고 생각해봐.
p.195
 

언젠가는.............
지금이 아니고 훗날의 어느때에는.......이라는 강한 의미의 소망들.....
그런데 그게 왜 여기에서는 모두 슬픈 현실이 되야 하는걸까???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것
우리가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 밖에는 담지 못하지. p241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내가 여러분에게 종종 들려주었던 물을 건너는 인물 크리스토프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 깊고 어두운 강을 건너는 중입니다. 엄청난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강물이 목 위로 차올라 가라앉아 버리고 싶을 때마다 생각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짊어진 무게만큼 그만한 무게의 세계를 우리가 발로 딛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불행히도 지상의 인간은 가볍게 이세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비상하듯 살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매순간 우리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산다는 것은 무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p.291


여러분 각자는 크리스토프일까? 아니면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일까?
 

아마 나는 너를 사람들로부터 외딴 섬처럼 고립시킬 거야. 다른사람들과 너를 차단시킬거야. 오로지 나를 통해서만 너를 알 수 있도록 만들고 말 거다. 나는 네가 그 무엇하고도 관계되지 않기를 바라게 될걸. 항상 너와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만 해서 우리는 둘 다 흉해질거다.
- 그럼 왜 약속을 했어?
- 나도 그러고 싶으니까. p357
 

이 소설에서 어쩌든 슬픔을 딛고 사랑 가까이 가보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이 읽히기를, 비관보다는 낙관 쪽에 한쪽 손가락이 가 닿게 되기를, 그리하여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언젠가'라는 말에 실려 있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꿈이 읽는 당신의 마음속에 새벽빛으로 번지기를...
작가의 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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