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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
마종기 지음 / 비채 / 2010년 5월
평점 :
yes24의 미투데이 포스팅글중에 마종기 시인님의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가 있었다..
어떤책인가싶어서 검색을 했을때 처음 눈에 들어온 글귀..
비오는 가을오후에 정신과 병동은 서 있다.
지금은 봄이지요. 봄 다음엔 겨울이 오고 다음엔 도둑놈이 옵니다.
몇살이냐고요? 오백두살입니다. 내색시는 스물한명이지요.
이게 뭐지 싶더라...
뭔가 맞지 않는 글귀같지만 묘하게 끌리는 글..........
조금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서 책 미리 보기 책을 열어봤다.
나역시 프로이트나 융의 정신분석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이것이 내 길이겠거니 하는 생각도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몇달 동안 정신과 병동에서 학생 의사로 여러 종류의 정신병 환자들을 만나면서, 정신과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말았다. 환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나는 우선 그들과의 흥미로운 대화를 되새김질하느라 자주 밤잠을 설쳤다. 환자들의 말에 혼동되기 일쑤였고, 객관적인 입장에 서지 못한채 그들이 왜 환자인지조차 알수가 없었다. 완전히 정신병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서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정상적인 생활에서 이탈되기 시작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나는 큰 결심이나 하듯 정신과 의사가 되려던 화려한 계획을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다 p.19
이 글을 읽으면서 이 책은 사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딸이 마음적으로 힘들어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뭔가 마음의 위안이 될 수 있는 글들을 읽고 싶어할 때였다.
환자의 말이 직업이 아닌 자기의 일상이 될 정도로 영향을 받는 사람..
참 맘이 따뜻한 사람일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딸이 마음적으로 많이 아팠었고, 병원 입원후 퇴원......
보다 넓은 세상을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본 여행을 보내줬었다.
여행짐을 챙기면서 "책한권 가져가라" "무슨책"
한참을 고르고 고르다가 울딸의 시선이 이 책에 쏠렸었다.
시집이라 간단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옆서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너무 예쁘다고...
알고 보니 책속의 사진들이 옆서에 고스란히 나와 있었다..
울딸이 가져가면서 한마디 한다..
"엄마, 나 이책 읽고 시에 대해서 전부다 답시 한번 적어볼래.."
그러더니 일본에서 돌아올때쯤 답시를 하나 가득 가지고 왔다.
거기에 작가님에게 직접 썼다는 편지도 가지고 왔다.
손으로 깨알같이 적은글이 자그마치 A4용지 4장이나 됐다.
보내고 싶은데 연락처를 알 수가 없단다.
무슨 내용인데??? 물어봐도 작가를 꿈꾸는 자신의 얘기를 적었단다.. 프라이버시라 알려주긴 싫단다.
"마종기 작가님 좋아?"
"응 좋아"
"어디가 좋은데??"
"그냥 끌리는데가 있어"
책을 다시 받아 들고 주소를 유심히 봤었다...
연락처에 대한 힌트가 있으려나???
주소지가 미국이다... 딸에게 얘기하니 알고 있단다........ 출판사에 전화라도 해볼까라는 생각도 한번 들더라....
책을 읽다보니 왜 미국에서 살게 됐는지 좀더 많은 얘기를 알수 있게 됐다.
내 집도 자동차도 없는 나라가 좋아?/아빠 나라니까./ 나라야 많은데 나라가 뭐가 중요해?/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돌아가셨잖아?/계시니까./ 그것뿐이야?/ 친구도 있으니까./ 지금도 아빠를 기억하는 친구가 있을까?/없어도 친구가 있으니까./ 기억도 못해주는 친구는 뭐해?/내가 사랑하니까. 사랑은 아무데서나 자랄 수 있잖아?/ 아무데서나 사는건 아닌것 같애/ 아빠는 그럼 사랑을 기억하려고 시를 쓴거야?/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썼지./ 시가 불이야?/ 나한테는 등불이었으니까./ 아빠는 그래도 어두웠잖아?/ 등불이 자꾸 꺼졌지./ 아빠가 사랑하는 나라가 보여?/ 등불이 있으니까/ 그래도 멀어서 안 보이는데?/ 등불이 있으니까. p69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 책 한번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사연들.....
돌아오고 싶었지만 돌아 올 수 없었던 사연들..........
그리움들.......
나는 그저 세상을 향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시라는 도구를 통해 힘껏 외쳐보고 싶었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 일을 행했다. p.143
시를 쓴다는거.......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힘들때 스스로 쉴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기 때문에...라는 말을 들었는데
마종기 작가님의 글들을 읽다보면 그말을 했던 친구의 마음이 같이 느껴진다.
모든 시에 사연이 없는게 없다..
그리움... 사랑......
나는 한때 열심히 문학평론을 쓴적이 있다. 마종기의 시를 텍스트로 삼은 평론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도 지금 나는 그 시의 특징을 단호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짐작하는 말투를 빌어서 말한다. 그의 시는 수식과 분식의 흔적이 거의 없어 읽을 때 화장 안한 맨 얼굴을 만나고 있는 느낌을 준다. 또 말에 얹힌 생각이 그 말을 고른 사람의 삶과 굳게 결탁되어 있어 '거짓 아님'의 느낌을 환기한다. 말하고 보이 이런 특징은, 사람들이 쓰기 좋아하는 '진정성'이라는 말과 속 뜻에서 같다. 말과 삶과 진정성이 어울린 어느 평화롭고 따뜻한 지점에 마종기의 시는 있다. p.257
진정성과 평화롭고 따뜻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그러네..... 하고...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까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바람의 말 p.60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당신의 시가 죽은 내 남편을 내 옆에 다시 데려다주었습니다. 나는 그가 그리울 때면 늘 이 시를 읽습니다.
나는 가끔 이분의 편지를 읽어보며 시 쓸 용기를 다시 얻는다.
내 시 한편이 영혼이 몹시 춥고 외로웠던 한분을 위로해 줄 수 있었다는 것에 황홀한 느낌을 받는다.
시속에서 위로를 받고
또 그 시를 읽고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인해 또다시 위로를 받고............
힘들게 살아오신 분이라는거 느껴지지만 또 나름의 행복도 느껴진다.
누가 나보고 사랑해본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요? 그 모든 만남의 시간을 다 합쳐보아도 며칠이 되지도 않고, 손을 잡아보지도 못하고 눈만 마주치고 미소만 나눈 것뿐이었는데, 누가 정말 사랑해보았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정직한 대답이 될까요. p 99
사랑하는거 맞으신거 같아요 ^^~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는 말을 나는 믿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만나서 서로 쳐다보는 스타일과 만나서 서로 같은 방향을 보는 만남이 있답니다. 서로 쳐다보는 만남은 두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나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을 신경 써가며 살필수는 없지요.
그리고 몸은 붙어 있어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잘 아시지요. 같은 방향을 보는 만남은 함께 손잡고 걸을 수도 있고, 동반자의 입장에서 서로 도우며, 생각하는 방향이 같아서 의견을 나누기가 더 쉽다고 하겠지요. 음악을 듣고 같이 즐길 수 있고 영화를 보거나 전람회에서의 엇비슷한 생각을 나누고 좋은 책을 함께 보고, 어쩌면 이렇게 쌍둥이같이 비슷한 사유의 범위를 공유할까, 속으로 놀라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이들입니다. 세상을 사는 이유가 비슷한 사람들, 인생의 자질구레한 조건들이 비슷해서, 부모에 대한, 가족에 대한, 친구에 대한, 사회에 대한, 국가에 대한 의견에서 큰 신경을 안 써도 되는 그런 사라이야말로 참으로 축복받은 관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끼리끼리 만난다는 것은 한 번 사는 인생에서 그리 쉬운일이 아니고 오히려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겨우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은 물끼리 만나야 서로 잘 젖고, 불은 불끼리 만나야 싱싱하게 살아납니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은 따뜻한 마음을 만나야 그리운 체온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p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