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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춘기 ㅣ 사계절 동시집 19
박혜선 지음, 백두리 그림 / 사계절 / 2021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박혜선님이 시를 쓰고, 백두리님이 삽화를 그려 넣어 내놓은 신간 동시집입니다. 겉표지는 하드 커버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민들레 씨앗이 날리는 모습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민들레 씨앗 사이에 턱을 괸 채 쪼그리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입니다. 바람이 불어오면 마구 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조금의 변화에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담아내려 한 것일까요? '바람의 사춘기'라는 제목과 표지 그림을 보면서 살짝 책 속에 담겨있을 법한 시의 내용을 추측해 봅니다.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책의 제목과 표지 그림만 보고 그 속 내용을 나름대로 추측해보는 것도 책과 함께 즐기는 하나의 놀이이니까요. 그것은 책과 처음 만나면서 치르는 경건한 의식이기도 합니다.
이 동시집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바람의 사춘기
2부. 태양이 진다
3부. 돼지의 궁금증
각각의 제목은 그 속에 담고 있는 동시 중 한 편의 제목을 가져와서 문패처럼 달고 있습니다. 그리고 1부와 2부는 각각 16편의 동시를, 3부는 17편의 동시를 품고 있습니다. 1부에서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감성과 그것에 어쩔 줄 몰라하는 어른의 모습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2부와 3부에서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여러 사물, 사람, 소식에 대한 이야기가 짤막한 동시 속에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언젠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튀어오를 준비를 하듯이. 어쩌면 동시집을 읽고 난 뒤에 '나도 동시를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마중물이 되어줄 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 작가는 시를 '말썽꾸러기' 같다고도 하고, 시를 쓰고 읽는 일을 '마음을 나누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시를 쓰고 읽는 것은 똑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서로 다른 마음을 표현하지만, 그것이 시가 되었을 때 다시 같은 마음으로 합일하도록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는 일이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만남이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시절에는 '바람의 사춘기'와 같은 동시집 한 편을 집어 들고 가까운 산이나 계곡, 아니면 번잡한 도심으로 발길을 옮겨봅시다. 그리고 계곡의 바위에 앉아 동시집을 읽다가 흐르는 물소리, 지저귀는 산새소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 경험을 동시로 풀어내어 봅시다. 도심의 길가 벤치에 앉아 살펴보면 보도블럭 사이사이 돋아난 풀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면 지난 겨울을 살아온 이야기, 보도블럭 틈을 비집고 싹을 틔우려 애쓴 이야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혔던 아픔에 대한 이야기, 꺾어졌던 잎사귀를 바로 세우고 다시 일어선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지도 모릅니다. 그 하나하나가 다 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이 기회에 주변 사물과 대화를 하면서 그것을 시로 쓰는 시인이 한번 되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