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장아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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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목과 성주, 달그림자 긷기와 정월 대보름. 한국형 판타지 특유의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화려하지만 무거운 중심이 자리한 이야기를 그린다. 환상적인 사건들이 끝없이 이어지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고요하다. 도시를 뒤흔드는 거대한 힘이 발휘되어도 이야기의 중심인물들은 본인의 자리에 굳건히 서 있다. 희미와 민진, 새별은 준호가 갑자기 새가 되어버린 순간을 함께 목도하게 되지만, 결코 접점이 없었던 세 사람은 준호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이 소설 내에선 다양한 변화의 모습을 그린다. 준호의 외양의 변화, 희미와 민진, 새별의 마음의 변화. 그리고 도시, 온 세상의 변화의 모습까지 나타나 있다. 이러한 변화의 토대엔 늘 염원하는 마음이 있다. 준호를 사랑하는 마음, 새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 모두 그들을 지극히 여기고 염원하였기에 모든 것을 진정한 의미로 남겨 지킬 수 있었다. 각자 대상은 다를지라도 무언갈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평온한 오늘을 거두어낸다. 현재를 인식하고, 끊임없이 염원하는 마음은 작은 불씨가 되고, 그렇게 모인 불씨들은 거대한 힘 앞에서 더욱 큰 불덩이가 된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진정한 죽음이라는 말이 있다. 하하헌을 지키는 업처럼, 도시를 지키는 신목처럼. 사람이 기억하는 마음, 그 온기만 있다면 모든 것엔 넋이 기릴 수 있다. 그저 기억하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을 온전히 인식하고 모든 기억과 경험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 그 자체만으로 나 자신이 존재할 아름다운 가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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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 자이언트 스텝 2
김서해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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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 그는 벼락치기 하듯 여러 가지 새로운 주제를 늘어놓았다.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어디인지, 가장 즐기는 스포츠는 무엇인지, 가장 자주 먹는 디저트는 어느 것인지.

 

 우리는 마티니와 맨해튼을 한 잔씩 앞에 두고 계속 우리만의 이상한 인터뷰를 이어갔다.

 

"지어내는 걸 좋아해."

"그게 왜 좋은데요?"

어린애처럼 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영원에게 나는 또 진지하게 답해주고 싶었다.

"혼자 지어낸 거라도, 이야기는 위로가 돼."

"그럼 잘하겠네요." p.148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만 유난히 인색하다. 사회가 정의한 정형화된 삶을 따르지 못한 이는 더욱 그렇다. 날 선 사회의 시선과 타인과 끝없는 비교에 지쳐 내린 방어기제이다. 텅 비어버린 듯 허망하고, 무어 하나 이루지 못한 자기 모습에 자조하는 이들.

 

 이런 이들은 지난 기억의 상처조차 상처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흘려보낼 뿐이다. 이들이 공통으로 겪는 이 얼얼한통증은 누구 하나 명확한 치료법을 일러주지 않는다. 누군가 손을 뻗어도 그 손이 실재하는 것인지 의심하고, 그런 의심의 과정에서 자괴감을 느끼는 부정의 굴레 속을 벗어날 수 없다.

 

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는 그런 이들에게 해인영원이라는 인물의 대사를 빌어 끝없이 질문하는 책이다. 처음엔 아주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한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내 마음을 침식시키는 그 아주 작은 씨앗이 무엇이었는지. 이러한 과정에서 독자들은 경계심을 거두고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마음을 점차 드러내게 된다. 혈액이 혈관 밖으로 나와 공기와 접촉하고, 응고되어 상처를 보호하는 딱지가 되는 것처럼. 같은 감정을 느낀 우리의 마음이 공명하는 것이다.

 


끊어져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런 대화가 잘 없어도 좋아할 수 있어요.”

그래도 그때만큼 낙담하지 않았다. 그저 어째서 그가 그렇게나 지어낸 사람 같았는지 아주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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큔, 아름다운 곡선 자이언트 스텝 1
김규림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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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사랑. 언뜻 흔한 흐름으로 전개될 것이 우려되지만 이 소설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사랑을 설명한다. 사람은 보통 아주 시시콜콜한 이유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이훈이 그레이스에게서 처음으로 발견해 낸 반사적인 웃음이 그렇듯 말이다. 하지만 외모가 아름답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진 이 등, 어떠한 조건 아래에서만 피어나는 감정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조건이 설령 모든 행동이 프로그래밍 되었을 뿐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인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임에도 말이다. 인간이 안드로이드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충분히 설명되었다. 살아있는 것과 조금이라도 비슷하다면 절로 감정이 피어오르는 사람의 존재란 어쩌면 지나치게 따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프로그래밍 되거나 타인에게 이식받은 기억을 기반으로 형성된 인공 지능의 감정 흐름도 방법이 다를 뿐 사랑의 어떠한 형태일 수 있다. 이는 소설 내에서 작가가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주제이다.

 


인간이란 시간 위에 선을 그리는 존재예요. …… 저는 당신이 그린 선의 뒤를 따르는 선이에요. 그렇지만 제 선은 삐뚤빼뚤하죠. …… 그래서, 당신이 말해줬으면 해요. 당신의 감정이 어디로 휘어지는지, 얼마만큼의 속도로 달려가는지. 그러면 저는 당신의 선을 따라 아름다운 선을 그릴 수 있어요. 꽤 근사한 섬광을 일으킬 수도 있겠죠. 당신이 기회를 준다면요. 그러니,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가르쳐줘요.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건지.” p.108

 

그러니까 큔은 버려지지 않기 위한 학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다 그만뒀다. 사람은 변덕스러우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큔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내가 자신을 지루해하지 않도록.” p.99

 


 큔의 버려지지 않기 위한 학습은 어떻게 보면 가장 사람다운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람 또한 사회적 동물이므로 어떻게든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의지하여 살아가야만 한다. 이것이 일종의 배려고 사회화다. 안드로이드의 버려지지 않기 위한 학습과 사람이 호감을 느끼고 서로 맞춰가고자 행하는 배려는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이식된 기억엔 한계가 있지만 그 뒤로 겪게 되는 경험의 기억은 무한하다. 그 경험 속에서 생성된 무수히 많은 선 중 어느 하나는 내가 그리는 선과 정확히 겹쳐 섬광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은 무척 아름다운 곡선을 그릴 것이다.

 

 이 소설은 이처럼 아름답지만, 꽤나 잔혹한 이면도 존재한다. 마인드 업로딩이 그렇다. 프릭셔널 게임즈의 SF 호러게임 소마에서도 유사한 선택지가 주어진다. 미래의 우리들은 뇌를 스캔하고 그것을 다른 신체에 이식하여 영생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 이식은 기존의 뇌를 옮겨온 것이 아니라 뇌를 복제한 것이다. 새로운 신체에 복제된 나와 기존의 뇌를 가진 나 둘 다 세상에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둘 다 의식을 가진 상태라면, 노쇠한 신체에 갇힌 기존의 내가 감내해야 할 현실의 좌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제이는 동전 던지기에서 선택받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절망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복제된 자신의 또다른 자아가 큔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것인가?

 

 하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톺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아름답고 서정적인 소설만은 아니다. 사랑의 본질과 과학 기술의 발전 윤리에 있어 어떠한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사람들은 모른다. 문제는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안드로이드는 멈출 수 있지만 사람은 스스로 마음을 멈출 수 없다.”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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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숲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천선란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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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명의 15세 청소년이 나오는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에 대해 내가 무어라 말을 얹는 것이 어려웠다. 사랑을 맹목적으로 좇지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지도 못하는 어른이 돼버린 내가 감히 어떤 이야길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래선 절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난 마음을 굳게 먹고 ‘이끼숲’에 몸을 던졌다.


 소설 내의 6명의 주인공, 마르코와 소마, 유오, 의주, 치유키, 그리고 톨가는 디스토피아 세계의 지하 도시에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이 지하 도시를 돌아가게 하는 하나의 톱니바퀴 같은 존재로, 기계적인 하루하루를 보낸다. 차갑고 딱딱한 사회는 인간을 인간으로 봐주지 않는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위의 통제를 피해 갈 수 없다. 인간성이라곤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여섯 명의 아이들에겐 추구하는 방향이 있고, 야망이 있고 사랑이 있다. 아름답고 이상적이기만 하지 않은 세상에서 찰나에 피어오른 꽃을 찾는다. 개개인의 얽히고설킨 사정 속에서도 여섯의 아이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의지한다. 


 밝은 이야기는 아니다. 마르코가 사랑했던 소녀 은희는 생계를 위해 목소리를 팔았고, 정부의 입김으로 쌍둥이로 살아갈 수 없었던 의조는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인간의 신체를 대체할 수 있는 클론을 생산해 소모품으로 활용하는 사회다. 이 사회에 거스르는 의견을 내는 인물은 커커스가 된다. 



“커커스는 어딘가로 떠났다. 완전히 사라졌다. 마르코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지하 도시의 끝에는 벽이 있다. 지상의 끝은 절벽과 바다라 했지만 이곳은 잿빛의 벽이다. 모래 한 알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벽. 숨을 곳이라고는, 벽과 벽 사이의 아주 좁은 통로뿐인 곳. 사람은 지나다닐 수 없지만, 짓밟혀 납작해진 사람만은 다닐 수 있는 그런 곳.” p.90

 


 이러한 세계를 깨트린 건 사랑이다. 소마는 유오와의 약속을 위해 그의 클론을 가지고 지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수많은 사투 끝에 도달한 돔에서 소마가 마주한 돔의 주인은 어쩌면 소마의 내면을 투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는다. 살아온 세상이 뒤집히는 아주 큰 선택, 그 선택 앞에서 느낄 수 있는 수많은 두려움 앞에서 소마는 상실의 슬픔을 지고 숲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



“이곳은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그 애를 잃은 슬픔이 유별나다. 분하고 억울하다. 슬픔이 유별나도 되는 곳으로 가고 싶다.” p.232



 독서란 게 참 이렇다. 전혀 예상치 못하는 부분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가리는 것은 '청소년'이라는 키워드가 아니었던 거다. 구하고 구해지는 서사, 이 고결하고 따뜻한 마음을 담은 이야기가 나와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서였다. 이건 일종의 자기혐오에 비롯된 감정이다. 사실 흔히들 그렇다. 진지함을 기피하고,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이 책으로 하여금, 나는 조금 솔직해져 보고자 한다……. 사랑의 구원은 근사하고,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단서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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