큔, 아름다운 곡선 자이언트 스텝 1
김규림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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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사랑. 언뜻 흔한 흐름으로 전개될 것이 우려되지만 이 소설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사랑을 설명한다. 사람은 보통 아주 시시콜콜한 이유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이훈이 그레이스에게서 처음으로 발견해 낸 반사적인 웃음이 그렇듯 말이다. 하지만 외모가 아름답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진 이 등, 어떠한 조건 아래에서만 피어나는 감정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조건이 설령 모든 행동이 프로그래밍 되었을 뿐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인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임에도 말이다. 인간이 안드로이드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충분히 설명되었다. 살아있는 것과 조금이라도 비슷하다면 절로 감정이 피어오르는 사람의 존재란 어쩌면 지나치게 따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프로그래밍 되거나 타인에게 이식받은 기억을 기반으로 형성된 인공 지능의 감정 흐름도 방법이 다를 뿐 사랑의 어떠한 형태일 수 있다. 이는 소설 내에서 작가가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주제이다.

 


인간이란 시간 위에 선을 그리는 존재예요. …… 저는 당신이 그린 선의 뒤를 따르는 선이에요. 그렇지만 제 선은 삐뚤빼뚤하죠. …… 그래서, 당신이 말해줬으면 해요. 당신의 감정이 어디로 휘어지는지, 얼마만큼의 속도로 달려가는지. 그러면 저는 당신의 선을 따라 아름다운 선을 그릴 수 있어요. 꽤 근사한 섬광을 일으킬 수도 있겠죠. 당신이 기회를 준다면요. 그러니,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가르쳐줘요.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건지.” p.108

 

그러니까 큔은 버려지지 않기 위한 학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다 그만뒀다. 사람은 변덕스러우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큔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내가 자신을 지루해하지 않도록.” p.99

 


 큔의 버려지지 않기 위한 학습은 어떻게 보면 가장 사람다운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람 또한 사회적 동물이므로 어떻게든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의지하여 살아가야만 한다. 이것이 일종의 배려고 사회화다. 안드로이드의 버려지지 않기 위한 학습과 사람이 호감을 느끼고 서로 맞춰가고자 행하는 배려는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이식된 기억엔 한계가 있지만 그 뒤로 겪게 되는 경험의 기억은 무한하다. 그 경험 속에서 생성된 무수히 많은 선 중 어느 하나는 내가 그리는 선과 정확히 겹쳐 섬광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은 무척 아름다운 곡선을 그릴 것이다.

 

 이 소설은 이처럼 아름답지만, 꽤나 잔혹한 이면도 존재한다. 마인드 업로딩이 그렇다. 프릭셔널 게임즈의 SF 호러게임 소마에서도 유사한 선택지가 주어진다. 미래의 우리들은 뇌를 스캔하고 그것을 다른 신체에 이식하여 영생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 이식은 기존의 뇌를 옮겨온 것이 아니라 뇌를 복제한 것이다. 새로운 신체에 복제된 나와 기존의 뇌를 가진 나 둘 다 세상에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둘 다 의식을 가진 상태라면, 노쇠한 신체에 갇힌 기존의 내가 감내해야 할 현실의 좌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제이는 동전 던지기에서 선택받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절망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복제된 자신의 또다른 자아가 큔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것인가?

 

 하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톺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아름답고 서정적인 소설만은 아니다. 사랑의 본질과 과학 기술의 발전 윤리에 있어 어떠한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사람들은 모른다. 문제는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안드로이드는 멈출 수 있지만 사람은 스스로 마음을 멈출 수 없다.”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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