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마지막 장미 - 단편
후지 타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이 꽃이 이 여름의 마지막 장미라면, 나는 이걸 나 자신에게 보내겠어. 기꺼이 선물하는 나를 보며 너는 분명 웃어줄 거야.

 

그러니까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게 어느새 10년이 다 되어간다. 마지못해 만나야 하는 거래처 사람을 대하듯 조금 뻣뻣하고 어정쩡하니 이 작가의 다른 만화들을 봐왔었다. 무언가 마음에 걸려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흔히 말하는 Y물이라서가 아니라, 인물 내면이 드러났을 때 숨막힘이 싫었다.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이 작가가 나를 불편하게 만드니 하나같이 싫었다. 하지만 종이 한장 차이라 하나, 10년이 채 안되어 어느 순간 그의 작품들이 불편하지 않아졌다.

동성애 코드를 뺀 이 만화를 읽고나니 오히려 단순해졌다, 내가 이 작가를 격렬하게 싫어하는 것도 아니면서 내내 불편해하고 있었더란 것. 하지만 이젠 좋아할 수 있다는 것.

장미는 값에 따라 아름다움에도 차이가 난다. 1송이에 몇 만원을 호가하는 장미는 조심스레 호흡을 가다듬어야할 정도로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그리고 길가의 다발에 2천원 하는 장미는 일견 조악하면서도 앙증맞은 구석이 있어 예쁘다. 꽃 중 꽃인 장미라선지 좋아하는 대상에게 바칠 때면 여지없이 등장한다. 로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도 있잖은가. 거기서 예쁘다 해도 백합이나 아이리스나 라일락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러니 여름의 마지막 꽃이라면 장미.

아니, 물론 이 만화에서는 주인공이 켜는 바이올린 곡 제목이다마는, 언듯 작가가 이 곡명을 듣는 순간 그의 머리 속을 꿰뚫듯 파고든 영상이 잡히지 않는가. 무더운 여름 매혹적인 짙은 장미향, 그래 그리고 그 장미향 짙은 여름날 오후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 만큼 싱그러운 소년들의 이야기,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이올린을 켜는, 음악에 대한 열정에 들떠있는 순진무구한 소년과 그의 친구이자 바이올린 제작을 공부하는 소년. 그리고 비밀을 감추고 있는 형의 친구와 엄격한 바이올린 선생님, 그들의 비밀을 들려주는 음악잡지 기자와 베일에 가려진 죽은 형.

연주는 못하지만 피아노를 더 좋아하는 나에게 바이올린이란 악기의 매력은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싱그러운 소년시대 이야기라면 풋풋한 눈물이 묻어있더라도 끌리기 마련이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아니 사실 무엇에 대한 이야기라도 결국 사람 이야기가 되듯이, 이 만화 역시 사람 이야기이다. 그리고 재능을 갈구하며 열정을, 마치 장미꽃을 바치듯 이상을 향해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한 권이란 짧다면 짧은 분량 속에 지나쳐온 아스라한 10대의 회상을 잠시 가져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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