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이야기 - 천상의 언어, 그 탄생에서 오늘까지
이은경 지음 / 열화당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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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지경사'의 [꿈꾸는 발레리나]나 [핑크빛 발레슈즈]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만화 [스완]이나 [스바루] [두다댄싱]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에 호기심이 들 것이다. 뿐인가 [빌리 엘리어트]나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왕의 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역시 이 책에 호기심이 들 것이다. 그럼, 호기심을 넘어서 과연 구입할 정도의 책이냐면...

열화당이라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출판사. 특히 열화당 사진문고는 그 속을 보지 않았더라도 서점에 진열된 걸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도판의 인쇄 상태라면 열화당이란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출판사. 발레리나들의 아름다운 사진을 골라낸 저자의 센스도 물론이고 그 사진들을 섬세하게 종이에 담아낸 것에 다시 한번 역시 열화당이구나, 싶다.

사실 발레 애호가(?)도 아닌 이가 선듯 손에 넣기엔 부담스런 가격이다. (더구나 나는 영화나 만화가 아니고는 실제로 발레 공연을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냉큼 사버린 건 어느 페이지를 어떻게 펼쳐 읽어도 재밌었기 때문이다. 기자 출신이라선지 문장력이 좋은 저자, 뿐인가, 기자인 탓에 구할 수 있었던 많은 도판 그리고 국립발레단의 협조가 있었다. 데스크에서 혹독히 단련된 기자다운 유려한 글은, 거기에 발레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나 있다. 저자의 머리글부터 읽는 이를 흥미진진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이렇게 짝사랑하는 사람이 쓴 글이라면"하고 본문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 책이 과연 기대할만한 책인지 염려스럽다면 책 머리든 책 뒤든 저자의 말을 찾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저자의 말이 없으면 옮긴이의 말이라도)

발레 문외한이라도 발끝으로 서서 춤을 추는 발레리나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리 없다. 그네들의 웃지못할 속사정, 세간의 환상과는 다른 비참함, 그리고 재능과 운과 노력으로 쌓아올린 정점의 자리에 있는 이만이 갖는 화려함. 저자는 그 이야기들을 재치있고 애정어린 말로 풀어간다. 더군다나 위에 언급한 책이니 만화니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궁금해할 발레 스타의 사진들을 고르고 골라 실었으니 눈요기로는 반가울 뿐이다. 글로만 알던 니진스키를 보게 된 기쁨이나, 만화가가 그렸던 [꿈꾸는 발레리나] 삽화보다도 더 만화에서 빠져나온 듯한 용모의 파블로바 사진을 본 뒤의 감탄. 조금이라도 발레에 관심있는 이라면 궁금해할 내용을 쏙쏙 담아준 것은 저자의 센스가 아닌가 싶다.

4페이지를 정신없이 읽어보다 서서 읽자니 시간이 맞질 않아 결국 그 자리에서 구입을 결정해버렸다. (온라인 서점이 아니면 도서구입을 아예 하질 않던 내가 몇년 만인지!)(그러고선 온라인 서점에 리뷰를 올리다니...)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어느새 새벽이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그리고 감탄스럽게 읽을 수 있었다. 큰 맘 먹고 사노라던 지갑을 열 당시의 작은 망설임조차 잊었다. 이제 남은 건 직접 공연을 보러 가는 것. 책 값보다 몇 배의 관람료가 나가겠지만 이걸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고 새로운 애정을 갖게 된다면 반가운 일일 것이다. 내게는 2차원의 예술로만 느껴지던 발레를 이제 3차원에서 만나봐야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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