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열망하다 - 하나님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일상
R. T. 켄달 지음, 손정훈 옮김 / 두란노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하나님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일상

 

이 책은 오늘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목도 하는 것을 돕는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하기보다는 그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오기를 원한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분임에도 사람들은 끝까지 자기가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 우리 삶은 너무도 분주하고 복잡해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기 어렵다.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고 싶은 이들은 <하나님을 열망하라>통해 다시금 기본으로 본질로 되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우리가 그분을 더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존재하는 분이라고 가르치는 이들이 있고, 이는 매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그런 가르침은 우리의 육체적인 본성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그분을 있는 그대로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셨음을 배울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결국 하나님은 그저 우리에게 무언가를 해 주시는 것 외에 그분 자체를 알고 그분을 더욱더 원하기를 바라신다는 전제가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31p)”

 

 

 

 

번영 신학은 돈과 물질의 소유로 귀결된다. 번영 신학을 따르는 설교자들은 하나님이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가지길 원하신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대부분의 성경 구절에서 이 같은 관점을 찾아내고 심지어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도 그 이유라고 주장한다. 왜 이런 주장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가 간다.(33p)”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슨 일을 할 때 그것이 나에게 어떤 득이 있는가 라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께 어떤 득이 있는가 라고 질문을 해야 하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더 경험하기를 구한다는 것은 그분을 있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다. 그분의 말씀이나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만 아니라 그분의 뜻도 함께 말이다.

 

성경 속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그분이 분명한 의지를 가진 분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명은 그분의 뜻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분의 뜻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비록 처음부터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행동하는 밑바탕에는 자기 생각이 하나님 생각보다 더 낫다는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과 그분의 임재를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의 차이는 머리로 아는 지식과 가슴으로 경험한 지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머리로 아는 지식도 중요하다. 머리로 아는 지식과 가슴으로 느끼는 지식의 차이점은 진리에 이성적으로 동의한 것인지 아니면 진리에 설득당한 것인지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차지할 자리는 바로 가슴이다. 머릿속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올 때 비로소 그것이 가능해진다.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또한 다른 어떤 것들보다 거룩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님이 근심하지 않고 거하실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쓴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면 성적인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커진다. 원수를 축복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소유하게 된다. 값비싼 수입 자동차를 모는 것이나 오성급 호텔에 머무는 것, 호화롭고 부유한 삶을 살기를 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없이 살고자 애쓰는 것이나 다름없다.

 

금이나 은, 보석 같은 행실들이 있다. 이것은 없어지지 않고 훗날 하나님 앞에서 상급을 받게 되는 것들이다. 저자는 건강한 신조, 빛 가운데 걸어가기, 방언의 은사에 마음 열기, 영혼 구하기, 성적 순결, 믿음 안에서 인내하기를 예로 든다.

 

반면, 나무나 풀, 짚 같은 행실들도 있다. 이것은 없어지고 훗날 하나님 앞에서 피할 수 없는 심판을 받게 되는 것들이다. 저자는 건강하지 못한 가르침, 분을 품는 것, 원망하기, 험담을 예로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고 생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면서 세상과 타협을 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경솔히 여기고 경외하는 마음이 사라져 버린다. 자신의 죄악을 가볍게 여기고 매주 하는 회개를 당연시 여기면서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훗날 하나님 앞에 설 모습을 이분법으로 계산하는 듯 하다. 말씀을 보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으며 전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한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존경하지만 그들은 나와 별개의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또한 교회와 여러 단체에 내는 헌금과 주일날 예배 및 여러 봉사 참석을 신앙의 전부인 양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마음을 보신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칭찬을 갈구하기보다는 사람의 칭찬을 갈구 하고 또한 타인이 경험한 하나님을 마치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으로 착각한다. 화를 당하면 갚아줘야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타인을 내려 깎고 짓밟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용서를 비는 모습은 달란트를 탕감받는 종의 비유를 외면하는 것이다. 책은 어렵지 않게 신학적 용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예시도 거의 없어 쉽게 읽혀지지만 내용과 메시지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저자는 냉랭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직설적이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만 한다. 하나님을 열망 하는가? 세상을 열망하는가?

 

 

 

 

 

 

 

 

완전한 용서는 타인이 행한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함을 뜻하지만, 동시에 내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선택한 타인의 그 악행을 분명하게 직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일에는 엄청난 은혜가 필요하며, 초자연적인 세계로 넘어가야만 가능하다. 복수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우리의 본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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