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와 <챔피언> 권투를 소재로 한 공통점을 갖고 있으면서
픽션과 논픽션이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전자는 지극히 영웅주의적이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성공시킨
미국의 또 다른 이야기를 전반에 걸쳐 논 반면,
후자는 소시민적이면서 박정희와 전두환을 잇는 시대성을
책에서 보는 행간 읽기식으로 전면에 보여 주지는 않지만,
음으로 더욱 강하게 알려 주고 있다.

권투가 주는 격렬함을 생각했다면 그것도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여인과의 로맨스의 애특함도 기대했다면 그 나름대로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각 배우들의 역할, 이건 말할 필요가 없다. 퍼팩트!

감독 곽경택의 멀티플레이적인 면을
가감없이 볼 수 있는 영화가 이 영화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다.
남성 속에서 여성을 느낄 수 있었다면 패미니스트에게 돌 맞을 얘길까?

곽 감독은 김득구라는 한 인물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를 잊지 않았다.
영화가 갖는 성격상 김 선수가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카메라 앵글에 담았어야 옳았겠지만, 시합 중간중간에 보여 주는 암시로서
그의 생의 끝을 현실 속의 분신 약혼녀로 이동을 시킴으로써
그와 지금까지 그를 아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독의 예의를 엿볼 수 있었다.

유오성이 김득구인가? 김득구가 유오성인가?를 자문해 볼 정도로
배우가 김 선수를 또는 김 선수가 배우를 소화해 냈다.
한 비평가는 김득구만이 갖고 있는 스텝과 펀치의 동작을
유오성이라는 인물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소화해 내
본인 스스로가 착각할 정도였다고 실토했다.

이 영화는 주연과 조연 배우는 물론이고, 액스트라 의상과 머리 스타일에서부터
자잘한 소품에 이르기까지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를 그대로 재연해 놓았고,
정권이 교체되는 시점 또한 잊지 않고 교묘하게 표현해 놓고 있었다.

<간첩리철진>에서 순진무구한 북한군인으로 열연했던 그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는 단순무식의 대명사가 이런 것이다를 보여 주었던 그가,
<친구>에서는 의리와 조폭의 대의라는 양갈래를 잘 표현해 주었던 그가,
한국 영화에서 또 한번의 영웅탄생을 예고 하고 있다.

유오성을 보면 다이엘 데이 루이스가 생각난다.
(<전망 좋은 방>, <나의 왼발>, <아버지의 이름으로>, <라스트 모히칸>
등 개성이 강한 캐릭터를 맡아서 열연한 배우)

자기에게 떨어진 배역을 소화해 내기 위해
오늘과 내일의 나를 다르게 만들고, 히딩크식으로 표현하자면
하루에 1%로씩 배역의 그로 바꾸어 나가 100%가 되는 그날은
배우가 아닌 그의 삶의 길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챔피언>은 홍보 포스터에서부터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
영화를 본 지금, 흑백으로 제작된 포스터 속의 배우를 보고 있으면
많은 일화들이 스쳐지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이기고 돌아올 게”라는 말을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하고 있는 듯하다.

유오성, 멋진 배우다.
단점을 극복한 배우라는 말은 이젠 어울리지 않다.

PS : 윤승원, 한참 최진실하고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모 전자회사 CF를 찍을 때만 해도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마냥 조용한 연예인으로 그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김 선수의 체육관 관장으로 등장, 진정한 스포츠맨이 무엇인지
그리고 스포츠맨십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몸과 소리로서 잘 표현해 주었다.
부드러운 외모로 관장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우려됐지만,
괜한 걱정이었다는 듯 무리없이 자기가 맡은 역을 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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