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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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줄기세포, 유전자 복제, 유전자 감식 등은 이미 전 국민에게 익숙한 단어다. 전 국민을 이렇듯 똑똑할 수 있게 된 계기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와 성공, 그리고 조작이라는 희대의 사건을 통해서다. 막 태어난 아이도 줄기세포는 안다고 할 정도로 지지난 해 몇 달 동안은 나라 곳곳이 흥분의 도가니였다.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연구가 상용화되었을 때 국가적 이익을 따지면 상상할 수 없는 천문학적 수치가 나온다는 언론의 발표로 국민적 열광은 더해갔고, 그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황 박사가 국민 영웅이 되고,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그의 승승장구는 ‘브릭’(젊은 과학자 모임)에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황 박사의 공로는 복제 개 성공(실제로 성공함) 말고도, 앞서 얘기했듯이 전 국민이 일순간에 배아가 무엇이며, 줄기세포가 무엇이고, 복제인간, 복제개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해준 것이다. 즈려 밟고 간 꽃잎들(난자 기증자)이 상징하는 것을 똑똑히 알게 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때도 말이 많았다. 난자 기증을 순수하게 기증으로 봐야 하느냐, 아니면 생명체의 희생으로 봐야 하느냐는 논란에 휩싸였던 것이다. 이 역시 전 국민의 눈을 한 번 더 뜨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여성에 있어 난자가 어떤 의미이며, 그 난자는 생명의 어떤 근간을 이루는지를 대략적으로 인식하게 했다. 그러고 보면 황 박사가 짧은 시간에 온 국민을 상대로 생명은 무엇이며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제대로 인식하도록 유식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번에 읽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읽는 내내 황 박사의 역할 대단했음을 실감했다. 줄기세포로 접했던 수많은 기사들, 그리고 항간에 떠도는 자료들을 읽은 덕에 이 책의 내용이 좀더 쉽게 와 닿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디까지 생물로 볼 것인가의 기준점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는 데 황 박사 사건 전말이 고마울 뿐이다.

이 책은 말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주저없이 그것은 “자신을 복제하는 시스템”이라고. 그러니까 자신을 복제하지 못하는 것은 생명체가 아니란 말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난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는가? 어떤 이유로 살 수 있는가? 그 근원은 어디이고 그 시발점은 어디인가? 하는 탐구정신의 발로로 생명의 명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모든 역사가 탐구를 바탕으로 ‘발견’에 이르듯, 과학의 역사도 시작을 일궈 과정을 만들고, 결과(결론)를 내놓는 같은 전철을 밟는다. 이 책의 핵심인 ‘생명’이라는 주제어 속에서 어떻게 생물과 무생물을 나누고 그것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또한 ‘발견’의 연속에서 이뤄질 수 있는 성과물이었다.

우리가 빌딩 옥상까지 가기 위해서는 1층부터 거쳐야 하듯이, 또 1층에서 2층으로 가려면 계단이나 엘리베이터의 순차적 이동이 필요하듯이 생물을 규명하기 위해서도 이와 같은 순차적 발견을 거쳐야 했다. 물론 모든 역사가 오랜 시간이 들여야 하는 것처럼 이 생물에 대한 과학적 발견과 규명도 오랜 시간과 많은 과학자들의 탐구와 실험 정신이 있어야 했다.

집을 지을 때 땅을 파서 다지고 그 위에 뼈대를 세우듯 맨 처음 땅을 파는 역할을 한 이가 있었다. 일본인 과학자 노구치 히데요다. 그는 바이러스를 발견했지만, 바이러스는 영양을 섭취하는 법이 없고 호흡도 하지 않음 알아냈다. 그는 바이러스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도 않을뿐더러 노폐물을 배출하는 일도 하지 않는, 즉 일체 대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단순한 물질과 분명히 구분 짓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큰 특성은 바로 스스로 증식한다는 것 또한 찾아냈다. 바이러스는 자기 복제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일본인 과학자 노구치는 생명을 규명하는 첫 문을 열어주었다. 그 뒤를 이어받은 사람이 바로 ‘이름 없는 영웅’ 오즈월드 에이버리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처음’으로 발견하거나 발명한 사람만을 인정한다. 과학이라는 분야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과학자들 사이에서 견제와 염탐, 그리고 시기는 기본 옵션으로 따라 붙는다.

에이버리는 최고의 견제를 받은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록펠러 대학 의학연구소에서 함께 있는 과학자들에게 말이다. 그렇더라도 에이버리는 세계 최초로 ‘DNA=유전자’를 발견했고, 유전자 본체를 찾아낸 인물이다. 독신으로 평생을 유전자를 규명하기 위해 바쳤던 에이버리는 사십이라는 늦은 나이에 과학도가 되었고, 결국 은퇴할 때까지 연구는 지속되었다.


에이버리의 DNA가 바로 유전자 본체라는 발견은 생명과학의 세기이기도 한 20세기의 최대의 업적이며 분자생물학의 막을 올린 발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바로 DNA의 구조 규명, DNA 암호 해독 등 DNA 연구가 빠르게 시작될 수 있었던 것도 에이버리가 연구 현장에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였다는 것이다.

생물이 살아있는 한 영양학적 요구와는 무관하게 생체고분자든 저분자 대사물질이든 모두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이란 대사의 계속적인 변화이며, 그 변화야말로 생명의 진정한 모습이다.(본문 143쪽)

생명을 규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도 된다. 바로 복제할 수 있다는 말이다. DNA를 규명하기 위해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속에서 분명히 지켜져야 할 것은 생명의 존엄성인 것이다.

하나의 세포에 들어 있는 핵과 핵을 둘러싸고 있는 막과 그 안의 물질들.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와 그 원자를 이루는 미세한 것들이 생명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이 책은 과학적으로만 접근하지 않는다. 바로 이 책의 저자 후쿠오카 신이치라는 과학자의 일상과 인간적 삶도 함께 이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결코 녹록치 않은 분야의 책임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생명과학 분야를 염탐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DNA란 무엇인가에 ‘생명’의 이라는 살을 붙일 수 있게도 해 주었다. 깊이 있는 학문의 길과 오랜 연구에서 터득한 과학적 지식이 이뤄낸 결과물이라 보아진다. 이 책을 읽으면 단순한 생명체가 아닌 그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입자들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게 만든다. 나 또한 언젠가 분해될 조립제품에 불과한 생명체임을 깨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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