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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둑 - 한 공부꾼의 자기 이야기
장회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타고난 공부꾼을 만났다. 공부가 무엇인지도 모를 어린 나이에 공부의 단맛에 푹 빠졌던 노학자를 만났다. 그러나 공부를 향한 열정의 길은 험난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중 다행은 전란 통에 공교육제도가 완고하다기보다 다소 융통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학구열이 높은 저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닌 뒤 중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억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좋아하는 공부를 못하게 된 것도 있으려니와 늘 우수한 성적을 자랑해온 저자는 집안 일을 하라고 하고 자신보다 못한 다른 사촌들은 버젓이 초등학교를 중학교를 잘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나만?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가?를 되씹어 보아도 억울할 뿐이다. 도통 할아버지의 의중을 알 수 없기에 하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소 풀먹이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달랐다. 소와 함께 들로 나갈 때마다 한손에는 언제나 책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지금 성공한 이들이 한결같이 보여준 강한 열망과 포기할 줄 모르는 자세는 저자에게도 있었다. 학교를 가지 못해도 일상의 체험을 통해 수학을 그리고 과학을 정확히 말해 물리학을 터득해 나갔던 것이다. 오히려 공교육에서 배운 것보다 더욱 깊이 있게 학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햇살이 비추는 각도에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대입하는 열정을 보인 것이 한 예라 하겠다.
일상생활에서 과학적 사고를 발전시켜 나갔던 저자는 관찰자적 입장도 시종일관 유지해 나갔다. 물음을 갖고 그 물음에 답을 찾으려 애썼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논리적 사고력 또한 함께 싹터 나갔다. 학교공부는 이젠 틀렸구나 싶을 때 아버지가 집을 떠나 멀리 청주에 직장을 잡게 되었고, 아버지를 따라가지 못한 어머니와 저자 그리고 여동생은 시골 집에 그대로 살아야 했지만 전화위복이라고 저자 어머니가 할아버지와의 협상을 통해 작은아버지가 설립한 고등공민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당시 고등공민학교는 정식 중학교가 아니었기에 초등학교 졸업을 못했어도 입학이 가능했다.
이렇게 저자의 인생이 끝나나 싶다가 희망의 끈이 다시 연결되는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고, 그것은 어머니가 아버지가 계신 청주로의 이사를 결행한 것에서 확실해졌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저자를 정식 중학교에 보내고자 했다. 하지만 어떻게?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는데. 요즘 같으면 말도 안 될 얘기겠지만 저자는 감곡중학교에서 낸 시험을 치렀고 그리고 2학년 2학기부터 편입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식 중학생이 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즐겼던 터라 중학교 1학년과 2학년 과정을 매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중학교를 졸업할 때 학교 최고의 성적을 거둬 학교 대표로 도지자상을 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청주 최고의 학교라는 청주고를 뒤로하고 오로지 물리를 활용할 수 있는 기계과에 가기 위해 청주공업고를 선택했다. 청주공업고의 입학을 위해 치른 시험에서 저자는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만점이 500점이었고, 저자는 만점에 가까운 1등을 했고, 2등과의 성적이 100점이나 차이가 난 것이다. 청주공업고의 경사는 신화를 낳았고, 그 신화는 저자가 다녔던 감곡중학교에 새로운 신화를 하나 더 보태주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고 될성부른 나무는 꼬이는 새부터 다르다던가. 공업고 담임선생은 저자의 뛰어남을 알아봤고, 각별히 신경을 써 과목을 보충할 수 있도록 대학에서 보는 물리와 영어 교재를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를 이해했다는 저자의 말에 다시 한 번 청주공업고는 신화가 된 학생을 더욱 신화적 인물로 여기게 되었고, 당연히 오랫토록 학교의 자랑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많은 우여곡절로 고등학교까지 간 저자는 드디어 학문에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학자로서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장회익 교수의 가치관과 학문적 지향의 길이 이때부터 서서히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아니 어렸을 때부터 만들어진 틀을 고등교육을 통해서 학문적 토대를 담기에 이른다.
장회익 교수는 6년 전에 솔출판사에서 나온 <삶과 온생명>으로 먼저 만났다. 그리고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과학과 메타과학>을 통해 만났다. 하지만 이 두 책 모두 이해하기엔 다소 힘이 부쳤다. 생소했던 온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TV매체를 통해 먼저 접하게 되었고, 확인차 책을 읽게 되었지만 상당히 어려워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어디까지 생명이라 할 것인가?에 한글의 최소단위가 형태소인 것처럼 낱생명 즉 온생명에 해당하는 것이 최소단위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저 과학의 한 부분이라고 하기엔 다소 철학적인 부분과 뉴에지적 정서가 강했다는 느낌이다.
공부로의 길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 역시 중간 이후부터는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을 연상시키기도 했지만, 이 책 <공부도둑>은 저자의 공부철학과 전공분야의 애정과 애착 그리고 학문으로서의 설파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책을 절반으로 나눈다면 전반은 다소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서 다소 흥미진진한 유년기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후반에서는 전공분야에 대한 학자적 입장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배움의 길은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준 책이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으련다. 그 어떤 난관이 있다 해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면 공부로의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려준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의 반성계기를 삼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