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난 가끔 영화를 볼 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그냥 볼 때가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무슨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어떤 장르의 영화인지 다만 누가 주인공이라는 것만 알고 볼 뿐이다. 이런 버릇이 발동한 영화를 볼 때는 내내 놀라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아주 드물게 만족하기도 한다. 대부분 후회와 놀라움이 동반된다는 안타까움만 뺀다면 나름 재미있는 놀이다.

책도 가끔 이런 식의 영화 관람을 하는 경우가 있다. 표지와 목차, 뒷표지와 앞 내용을 조금만 읽어보면 될 것을 전혀 그렇지 않고 내 직감대로 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그리곤 영화보다 몇 배는 더 땅을 치며 후회하곤 한다. “내가 미쳤지!” 하면서.

이번에 읽은 책도 이런 류에 속한다. 어쩌면 알고 있었음에도 책을 읽을 때까지 기억해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 이 책이 보편적 글쓰기에 대한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점점 읽어나갈수록 단순한 글쓰기가 아닌 ‘소설 쓰기’에 대한 책이었던 것이다. “맞아! 소설 쓰기 책이었지!” 거의 다 읽어갈 때서야 생각이 났다. 소설 쓰기 책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표지에 부제로 쓰여진 글이 새삼 떠올랐다.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교실이라니. 부제를 참 기가 막히게 잘 뽑아냈다. 적은 분량에 한 페이지에 차지하는 텍스트도 벙벙하게 자리잡은 이 책은 말 그대로 그림책을 보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다. 그래서 그런지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난해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둘 풀어놓는 그런 친근함이 있다.

저자는 자신의 글 속에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말과 인용 글이 하나로 연결해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설명과 작법 예가 칠판에서 이루어지는 듯한 구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 방식이 소설 쓰기의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어준다는 의외성을 찾아냈다. 

어려워 말라, 첫 줄은 나중에 써라, 의미 있는 내용으로 애써 채우려 하지 말라, 독자들에게 지식을 전하려 하지 말라, 자신의 생각의 무게를 놓아라 등등의 충고를 책 전반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지만 강조라기보다는 부드러운 조언 정도로 들린다. 무엇보다 글을 쉽게 그리고 즐겁게 쓰려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쓰고, 사소한 일들로 소설 쓰기를 시작한다면 글쓰기에 자신감이 생기고 말 그대로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글쓰기 책들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과, 앞서 말한 독특한 구성방식과 문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거의 다 읽을 즈음이 되어서야 알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 되면서 무엇보다 이 책을 더욱 특이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중반까지는 “그래서?”라는 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중반이 넘어서면 점점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들인 소설을 쓰기 위해서 꼭 하고 싶었던 말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참으로 더디게 노하우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소설을 쓰기 위한 지침서이자 한 권의 소설로 느껴지는 것이겠다. 나는 그렇게 보았던 것이다. 중편의 소설로. 

서두르지 않고 우리의 일상을, 우리의 아이 때의 모습을, 어린이였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라고 하는 저자의 태도가 참으로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마치 걱정말고 “나를 따르라!” 하는 것처럼 들리니 말이다. 아쉽게도 난 저자의 의도대로 독자들이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예문도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소설을 쓰기까지, 아니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기까지의 틀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보여준 저자의 텍스트의 힘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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