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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벗겨줘 - 빨간 미니스커트와 뱀피 부츠 그리고 노팬티 속에 숨은 당신의 욕망
까뜨린느 쥬베르 외 지음, 이승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젊은이들이 활보하는 거리를 가면 자신만의 개성을 매우 잘 살린 옷차림들을 보게 된다. 때로는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독특하고 특이하게 차려입은 학생들을 뚜러져라 바라본다. 경이로운 눈빛을 곁들여서 말이다. 회사원들의 삶터인 빌딩들이 널려 있는 곳은 어떨까. 광화문이나 삼성동, 또는 역삼동을 보면 젠틀맨과 커리어우먼들을 많이 본다. 포인트를 잘 살린 패션리더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일과 옷차림, 취향과 옷차림, 성격과 옷차림 등의 구분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만큼 옷차림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상징이자, 대변가인 것이다.
하지만 옷차림 그 자체에 때로는 감탄도 하고 때로는 시기도 하고 때로는 부러워만 하면 되는 것일까? 변하지 않는 옷차림에도 단순히 취향이니까라고 단정해 버리면 되는 걸까? 이 책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그런 의심의 눈초리로 볼 필요는 없겠지만, 삶이 고통스럽고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고 힘들 정도로 옷이 주는 억압과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몇몇 사람에게 숨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이 책에는 부모의 만족, 부모의 욕구, 부모의 욕망, 혹은 연인이었던 자의 취향, 등등의 이유로 그 틀에 맞춰 그들의 요구에 맞춰 옷을 입고 자란 많은 사람들에게는 옷이 삶의 고통이고, 감옥이고, 자신의 삶이 아닌 그들의 삶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읽어가는 내내 떠오른 친구가 있었다. 유독 그 친구가 생각난 것은 그 친구의 옷입는 습관과 그 친구가 아이들에게 옷입히는 관경, 그리고 1박2일의 여행가방을 2박3일 동안 싸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나 늘 같은 색깔의 속옷과 런닝을 세트로 아이들에게 입혔던 친구, 아이들에게 같은 옷을 이틀을 입히지 않는 친구. 고작 1박2일의 여행일 뿐인데도 마치 보름을 머물다 올 것처럼 옷을 챙겼던 친구, 그리고 자신도 역시 집 앞 수퍼를 갈 때조차 옷을 갈아입고 나갈 정도의 친구. 작년 여름, 이 친구 집에 머무는 동안 마트로 장을 보러갔을 때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서려는 나를 보고 기겁을 하더니 옷을 안 갈아 입을 거면 신발이라도 다른 걸로 신으라고 으름장을 놓던 친구. 이 친구가 말이다.
이 친구가 떠올랐던 사례가 있다. 바로 <빨간 미니스커트 아가씨-엄마의 환상에서 탈출하기>이다. 초등학교 친구라 어렸을 때부터 성장과정을 서로가 잘 안다. 그렇기에 이 사례가 더욱 와 닿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우리를 마치 주목받는 장식품처럼 진열했고,...."(26쪽), 딱 들어맞는 사례는 아니지만, 친구의 엄마는 딸의 생각보다는 엄마의 생각대로 옷을 입혀 학교를 보냈다. 고등학교까지 그렇게 잘 차려입은, 그리고 딱 떨어지는 옷만 입은 친구는 그렇게 옷을 입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그런 친구의 옷차림은 오히려 같은 반 아이들이 따라 입을 정도였다. 이 경우가 이 사례와 다른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성인이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친정 엄마에 대해 분노했다. 자신이 길러진 게 아니라 조련되어졌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엄마의 독특한 환상에 충실할 것인가, 그룹 내에서 생존할 것인가 하는 고민 사이에서 아이는 심한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27쪽), 이 부분처럼 친구는 자신이 엄마한테 조련되어졌던 것처럼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이런 사이에서 친구의 내적 갈등은 커져만 갔다. 자신이 벗어나고 싶어했던 것을 똑같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다른 이들의 눈에서 부모의 이미지를 보호하는 방법을 찾으려 애쓸 것이고, 이후부터는 학교와 가족이란 두 세계를 분리하려 들 것이다."(31쪽) 친구는 학창시절까지는 자신의 부모를 보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학부모가 된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삶에 충실해지기로 단단히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각오가 작용을 했는지 친구의 옷차림은 한결 가벼워졌다. 옷을 대하는 친구의 태도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대충대충이라는 단어가 어느 정도 통할 정도로 말이다.
이제는 속옷을 세트로 입으려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들이 답답하단다. 물론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친구는 그렇게 변해갔다. 지금도 변화중에 있다. 좀더 자신은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옷은 멋진 삶과 즐거운 삶만을 주지 않는다. 이 책이 강조하는 내용이다. 엄마 혹은 아빠 혹은 애인의 끊임없는 요구의 결정체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순간 과감하게 자신을 바꿔라. 그래야 프로이트가 말했다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병, 정신병을 주었던 옷. 늘 그렇지만 부정이 있다면 긍정도 있는 법. 바로 <슈미즈와 브래지어-사춘기 속옷의 탈피와 변화>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자연스럽게 성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노팬티-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발견>의 사례를 보면 자신감을 회복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다 그런 것처럼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 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것도 스스로의 만족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그런 내 모습으로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옷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하겠다. 다만 이 책 내용에 있어 아쉬운 점은 사례의 당사자들의 증상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하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왜 그랬는가"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설명되어졌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