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People : 이순신 Why? 인물탐구학습만화
권용찬 글, 임해봉 그림, 윤재웅 감수 / 예림당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와이시리즈를 보면 초등저학년에게어려운것도있어요 근데 인물을초등 저학년도쉽게접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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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텅 빈 충만의 바다, 그 무게와 울림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자신의 글을 다시 지우는 하얀 백지와도 같은 책이다. 몇 해 전인가 산에 올라 무념무상으로 바위에 내 몸을 의지했을 때 들렸던 저 나지막한 시냇물의 독백과 같은, 그 때 내 두 눈을 가득 채웠던 하릴없이 투명에 가까운 하늘빛과 같은 책이다. 나는 유난히 얇은 허리를 가진 무소유의 마지막 글을 아쉽게, 그러나 훌훌 털어 보내며, 매끈한 코팅지로 두른 그의 외투를 조용히 벗겨내 주었다. 그만큼 더 비워낸, 그래서 더 헐벗은 무소유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나상(裸像)과 같은 모습이었다. 무소유의 가녀린 속살에는 작은 오두막집 하나가 나룻배마냥 뿌리 없이 떠다닐 뿐, 책의 제목마저 텅 빈 여백으로 무한히 채워져 있었다. 나는 이제 그 무한을 조용히 사랑한다.  


  무소유는 모든 것이 넘치는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텅 빈 충만’을 수줍은 목소리로, 그러나 당당한 어조로 노래하는 한 편의 서정시다. 특히 법정 스님에게 ‘침묵’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있는 혹은 다물 수밖에 없는 소극성과 도피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은 지혜의 우물에서 미량의 ‘참말’만을 길어 올리기 위한 치열한 행위이며 내면의 철저한 여과과정이다. 빛 아닌, 침묵의 조명을 통해 생각과 말에 힘찬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다. 남모를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말은 허공을 호령하는 소음에 가까우며, 침묵의 나직한 치열함을 뚫고 난 자만이 사물을 깊이 통찰할 수 있고 자기존재를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로소 자기언어가 힘겹게 확보되고,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수 있게 되는 순간이다. 인격의 아름다움은 빛의 위태로운 만용 속에 거주하지 않는다. 스님은 아름다움은 조용히 안에서 번져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맑고 투명한 얼이 안에서 밖으로 향기처럼 배어나오는 것이다. 이름 모를 꽃내음이 저절로 바람을 타고 만물을 고르듯이, 그래서 또 다른 이름 모를 풀벌레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푸는 저 낮은 축제같이.  


  물론 새로운 지식을 얻고 책을 부단히 읽어나가는 자세는 중요한 미덕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우리 삶의 폭을 넓히는 데 매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 순간, 책의 한계 또한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책이란 지식의 매개체에 불과한 것이고, 거기에서 얻는 것도 복잡한 분별일 뿐이다. 그 뿐인가, 불필요한 집착과 아집만을 잉태할 수도 있다. 그러한 분별이 무분별의 지혜로 심화되려면 응당 자기응시의 여과와 자정을 깊게 거쳐야 한다. 좋은 술이 그렇고, 제 맛을 내는 백김치가 그렇듯 무엇이든 푹 익어 깊은 숙성을 거칠 때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 법이다. 그런데 그 과정은 결코 현란하거나 요란스럽지 않다. 땅 밑으로 들어가 곰이 마늘을 먹듯 되새기고, 충분한 시간을 온몸으로 견뎌낼 때 우리는 자신만의 香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이런 香에 비추어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 되돌아 볼 일이다. 자기도 모른 채 세속과 혼연일체가 되어 하루하루를 깨알같이 채워나가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은 또 어느 구석에 빈틈이 생기진 않았는지 요리조리 살피고, 쉴 새 없이 반성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오늘 갖지 못한 무엇을, 남이 갖지 못한 그 무엇을 내일 꼭 소유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앞만 보며 전력질주 하지는 않는지. 소유에 대한 욕망은 근원적으로 마음의 집착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한 집착은 자유롭게 훨훨 날지 못하고, 어디엔가 정박하고 끝없이 매달린다. 오히려 채우면 채울수록 내 몸을 더욱 옥죄어 올 뿐이다. 어느 순간 법정마저 꽁꽁 결박해 버렸던 그 죄 없고 사랑스런 ‘난초’처럼.  


  우리는 지금 광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질의 바다, 경쟁의 바다, 그것도 모자라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 위에서 쉴 틈 없이, 누구에게 질세라 표랑(漂浪)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 그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 그걸 채우면 채울수록 의심할 여지없이 더 행복해지는 것일까. 막상 저 깊은 바다의 뿌리는 말없이 조용할 뿐이다. 그 곳은 침묵과 침묵이 빙그레 마주치고, 꽃내음의 무게와 울림이 소통되며, 무엇 무엇에 대한 결여가 아닌 그 자체로 살아있는 여백과 충만함이 꿈틀대는 세계이다. 소유와 집착의 세계에선 그저 빈 공터처럼 보일 뿐이겠지만, 무소유의 세계에선 오늘도 텅 빈 환희의 축제가 찬란히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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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목소리
우찬제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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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한 평론과 문학을 보는 밝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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