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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황제 J. P. 모건
진 스트라우스 지음, 강남규 옮김 / 이상미디어 / 2017년 7월
평점 :
회사의 모 선배가 "금융시장을 이해하고 싶다면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존 피어폰트 모건의 자서전을 읽었다. 사실은 모 선배 역시 모 선배의 선배로부터 들었던 말이었지만. (정작 나의 모 선배는 나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도, 본인은 아직 읽지 않았다고 함)
1,2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요약하면 J.P.모건은 런던에서 금융가로 활동하던 모건 가의 금수저로 태어나 응당 그래야 할 필요성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위기를 막기 위해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을 최대한 활용했던, 그러니까 금융황제로서의 밥벌이를 아주 충실하게 하다간 위인이었다. 중요한 키워드는 "응당 그래야 할 필요성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라는 대목이다. 경제적 부를 소유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꼭 그 경제적 자유를 공공선을 위한 방향으로 쓸 책임은 없다. 매일 쇼핑을 하며 예술품이나 모으고 감상하며 즐거운 개인의 삶을 살아도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니까.
그렇지만 이 책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건, J.P.모건은 그럴 책임이 없었음에도 기꺼이 시장과 사회의 안정을 위해 자신의 경제적 책임을 자각했다는 점이다. 이 책에 등장한 "도덕적 지배" 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편하게 살기 원한다면 가진 돈을 펑펑 쓰며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는 신흥 국가가 남북내전을 이겨내고 강한 국가로 발돋움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세상과 인류의 발전을 위해 가진 자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했던 것, 그것이 금수저가 믿었던 도덕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다만 착한 사람 행세는 하지 않는다. 더 강하고 무섭게 다그치고 최고의 지위를 향해 달려간다. 최고가 되어 사회에서 지배적 위치가 되려는 세속적인 욕망이 있다. 현실적이다. 때문에 "도덕적 지배" 라는 말이야말로 존 피어폰트 모건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다.
J.P.모건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다양한 산업에서 강력한 트러스트(Trust)를 구성했다. 트러스트는 요즘의 재벌 기업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강력한 단일 Entity를 의미한다. 철강은 US스틸, 철도는 노던 시큐리티스, 해운은 IMM(International Marcantile Marine)이라는 강력한 트러스트 설립을 주도하며 금융 제국을 만들어 간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은 20세기 초에 독점을 규제하는 셔먼법이 입법된 뒤로 모건 제국을 둘러싼 바람의 방향이 정 반대로 바뀌게 된다는 거다. 독점적 기업 결합으로 성공한 그에게 독점은 위법이니 결합을 해체하라는 압박이 들어온다. 독점으로 흥한 자 독점으로 망했다고 해야 할까.
내가 다니는 그룹의 오너 일가 중 어떤 한 분이 "순풍 속에서 장사해야 한다" 라는 말을 얼마 전 구성원에게 남겼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또 사회 생활을 하면서 바람이 바뀔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지금까지 성공 방정식이라고 믿었던 것이 응 아니야 라고 부정 당하면, 지금까지의 순풍은 역풍으로 바뀌는 것인데 그러면 바뀐 바람 방향을 따라서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할까, 아니면 조금 더 참고 견뎌야 하는걸까? 바람의 변화가 일시적인지 영속적인지 그 시점을 통과하며 직접 따지기란 쉽지 않다. 뒤늦게, 멀리서 바라봐야 비로소 보일 뿐이다.
J.P. 모건은 순풍 속에서 때로는 순풍을 직접 만들어내며 강력한 제국을 만들었다. 세기가 바뀌고 순풍이 역풍으로 바뀌었을 때 그는 늙어 있었고 강력한 제국은 조금씩 해체되기 시작했다. 다시 처음의 <도덕적 지배>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된다. 칸트가 말한 정언명령도 아니고, 시대를 불문하여 절대적으로 옳은 도덕이라는 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긍휼히 여겨라, 거짓말 하지 마라, 다른 이를 사랑으로 대하라 ...... 이 정도의 보편적 윤리란 그리 많지 않다. 약 100년 전에 J.P. 모건이 믿은 윤리란 <시장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가장 강력한 기업 결합체를 결성하고 금융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이것 아니었나 싶다. 금수저로 태어나 돈의 권력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믿은 이 사람의 가치관은 아주 흥미로웠다. 적어도 그가 믿은 가치관이 도덕으로 통용되던 시대가 있었던 거다.
모건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철도회사의 증권이 모두 우량한 것은 아닙니다.
언터마이어 : 그렇다고 철도회사의 증권을 인수한 투자은행이 채권의 가치를 법적으로는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그렇지요?
모건 : 투자은행이 책임지지 않습니다만, 더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질문하시는 분이 살아 있는 한 보호되어야 하는 도덕적 책임을 집니다.
언터마이어 : (아주 냉소적인 어투로) 도덕적 책임이 돈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죠?
모건 : (투자자에게 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하며) 도덕적 책임은 돈이 됩니다. 회사는 워크아웃에 들어가거나 다시 설립되어 채권을 발행합니다. 투자자들은 원금과 이자를 받습니다.
- J.P.모건이 증인으로 소환되어 독점적 기업 결합에 대해 해명해야 했던 1912년 '푸조 청문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