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제도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20
다와다 요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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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다와다 요코가 쓴 Hiruko 여행 3부작 <지구에 아로새겨진>, <별에 어른거리는>, <태양제도>를 읽기 전 나는 작가로서의 이력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기 전에 하는 나만의 작은 습관 같은 것인데, 작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나면 작품을 읽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경계를 넘나드는 언어의 놀이성과 혼종성에 기반해 독창적 신화를 펼쳐온 작가라는 소개에 이어 그녀가 지금까지 저술했던 작품 목록을 눈으로 읽어나갈 때 나는 잠깐 멈칫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와다 요코 작가가 고 서경식 선생과 함께 썼던 <경계에서 춤추다> 책을 10년도 더 전에 읽었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출판사마다 외국어를 적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이전에 읽었던 책에서는 ‘다와다 요코’가 ‘타와다 요오꼬’였고 그때문에 처음 ‘다와다 요코’라는 이름을 보고는 엇 처음 접하는 작가구나, 라고 생각했던 셈이다.



다와다 요코 작가가 2010년 고 서경식 선생과 함께 공저했던 <경계에서 춤추다>는 말 그대로 이쪽 혹은 저쪽의 명확한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수 밖에 없는 두 작가가 서로에게 주고 받은 편지를 모은 책이다. 고 서경식 선생은 잘 알려진 것처럼 재일조선인으로 일본인, 한국인, 그렇다고 그의 부모의 국적이었던 조선인(일제강점기 이전의 조선) 중 어느 하나의 정체성에도 온전히 구속되지 않았고 때문에 디아스포라라는 화두를 일생에 걸쳐 고뇌하고 탐구했다. 다와다 요코 작가는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태어났으나 1982년 독일로 건너가 지금까지 40년 넘게 독일어를 제2의 모어로 삼아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두 작가는 태어나 익힌 모어(母語)에서 벗어나는 삶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모어(母語)는 주어진 것, 어렵지 않게 체화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만약에 나의 모어가 나의 정체성과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를 떠올려보자.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도 존재할 것이고, 영어로 읽고 쓰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고,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미국인이기 때문에 이민자 2세 자신의 정체성도 미국인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모가 사용하는 언어, 그의 부모의 국적, 부모의 정체성은 모두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그것이며,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 역시 모어는 어디까지나 부모의 언어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미국인인데 나의 뿌리가 규정하는 나는 미국인이 아닌 것이다. 이른바 국어와 모어가 일치하지 않는 지점에서 많은 이민자 2세가 혼란스러워하고 고뇌하며 결국은 하나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완전히 미국인 사회로 동화되거나, 혹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 궁금해하며 미국인이 아닌 나의 정체성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다와다 요코가 쓴 Hiruko 여행 3부작 <지구에 아로새겨진>, <별에 어른거리는>, <태양제도>는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뿌리의 정체성과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정체성이 대립하는 군상을 그려낸다. 주인공 Hiruko는 섬나라로 묘사되는 자신의 모어를 사용하지 않고 북유럽 언어를 조합해서 만든 판스카라는 인공언어를 사용한다. Hiruko의 친구 아카슈는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그는 대부분의 경우에 여성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며 그에 맞게 옷을 입는다. 나누크는 아예 인종의 혼란을 선택한다. 그는 그린란드에 이누이트족으로 태어났으나 동양인을 닮은 외모 때문에 종종 섬나라 민족으로 오해를 받는데, 그런 오해를 애써 불식시키려하지 않고 섬나라 태생의 초밥을 잘 만드는 사람으로 위장한다. 어차피 북유럽 사람이 초밥에 대해 얼마나 알겠는가, 하면서 말이다.



언어, 성(性), 인종, 그리고 그외의 다양한 지점에서 Hiruko 여행 3부작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규정하는 정체성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에게 원래 주어졌던 것을 무시하거나 애써 배제하려 들지 않는다. Hiruko는 자신이 만든 인공언어 판스카를 사용하지만 섬나라 출신인 Susanoo를 만났을 때는 고향의 언어로 세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카슈는 남성에서 여성이 되고 싶은 사람이지만 남성은 불행, 여성은 행복이라고 나누어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정체성이란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다. 때로는 이것이고 때로는 저것이며, 이것과 저것은 행복과 불행 중 하나의 측면에만 영원히 고정된 것도 아니다. 다와다 요코가 타와다 요오꼬였을 무렵 고 서경식 선생과 함께 그랬던 것처럼, Hiruko 여행 3부작에 등장 인물도 경계에서 계속해서 춤을 춘다.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경계를 넘나들며 춤을 추는 이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유랑하며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나다운 나,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을 일생동안 반복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단 하나의 정체성에 다다랐을 때 우리의 여정은 끝이 나며 그 여정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선형적이거나 혹은 이쪽에서만 계속 맴돌며 나선형의 움직임을 그릴 것이다. 그러나 경계에서 춤을 추는 이들의 여정은 긴 원을 그린다. Hiruko와 친구들이 코펜하겐에서 시작해 발트해를 따라 동쪽으로 향했다가 러시아 영토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하자 항로를 바꾸어 다시 발트해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는 여정은 길고 느린 원에 가깝다. “발트해 동쪽으로 가려면 (코판하겐에서) 남쪽으로 우선 가야해.” 라고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금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는 그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유영하며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그 여정에는 고정된 정체성도 없고 끊임없이 자신이 믿었던 것을 의심하고 버리게 만드는 새로운 경험과 문법이 등장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는 거다. 참다운 나를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나를 일깨우기 위해 떠나는 여행, 그런 여행이라면 “Hiruko와 친구들은 응답한다. 더 멀고 높고 깊은 곳을 향하는 일직선적 진보와 확장의 욕망 없이, 따지고 뒤섞고 넘나들고 헝클고 엮으며 사랑과 우정의 세계로 움직이고 옮아 갈 수 있다고.” 말한 윤경희 작가의 평은 이 3부작을 완성하는 훌륭한 문장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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