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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 입문 - 데리다, 들뢰즈, 푸코에서 메이야수, 하먼, 라뤼엘까지 인생을 바꾸는 철학 ㅣ Philos 시리즈 19
지바 마사야 지음, 김상운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5월
평점 :
1년 전 무렵 게이오기주쿠대학 다카쿠와 가즈미 교수의 <철학으로 저항하기>를 읽으며 느낀 것이란, 일본 철학자 내지 사상가만의 갖는 일종의 특징이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현대철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매우 쉽고 친절하게 철학 사상을 소개하는 경향이라거나,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주장에 강요당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하는 점 등이 그렇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는데, 우선 나쁜 점이라고 한다면 뭔가 책을 읽을 때는 친절한 손짓에 이끌려 내용을 아는 것 같지만 책을 덮고 나면 막상 남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책을 뚫고 들려오는 저자만의 박력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반면, 반대로 세밀하고 꼼꼼하면서도 친절한 접근이 일본 철학 사상서가 갖는 장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기질의 차이는 책을 쓰는 입장에서도 묻어나는 것일까?
리츠메이칸대학 지바 마사야 교수가 펴낸 <현대사상 입문>은 기본적으로 프랑스의 포스트 구조주의 삼인방,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미셸 푸코에 대한 설명을 바탕으로 과거로는 자크 라캉을 연결시키고 현재로는 20세기 후반 등장한 사변적 실재론을 연결시킨다. 군데군데 일본 작가 특유의 겸손한 자기 업적 소개가 등장하는데 2018년에 현우와 함께 읽었던 <공부의 철학>의 작가라는 점을 알고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꽤 놀라기도 했다. 놀람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7년 전에 <공부의 철학>을 읽고 나서는 크게 남는 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 <현대사상 입문>을 읽으면서는 포스트 구조주의를 개념의 탈구축, 존재의 탈구축, 사회의 탈구축으로 압축시키며 설명하는 글솜씨가 훌륭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차이가 비교되어 놀랐던 것 같다. 참고로 1978년생인 지바 마사야 교수가 <공부의 철학> 책을 펴낸 것이 2017년으로 그가 갓 마흔 살이 되었을 때이고, 이번에 <현대사상 입문>을 펴낸 것이 2023년이니 6년 동안 사상의 깊이와 글을 쓰는 힘이 더 갖추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덧붙이게 된다.
두 번째로 놀란 지점은 책 말미에 실린 옮긴이 후기다. 보통 철학 책에 옮긴이의 후기가 실린 것을 본적이 없어서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는데, 단순히 번역 후기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지바 마사야 교수의 의견을 옹호하거나 보충 의견을 덧붙이는 것을 보고, 옮긴이 김상운은 누구인가 궁금했다. 여기서 잠깐, 시간 순서에 따라 나의 놀람 감정을 서술하자면, 옮긴이 후기를 읽기 조금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사변적 실재론, 말라부, 메이야수 등의 이론은 다소 생소하던 차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가 ‘멀티튜드’라는 개인 블로그를 알게 되었는데 외국의 철학 논문 또는 뉴스를 직접 번역해서 포스팅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매월 <월간 멀티튜드>라는 것을 직접 발간하기도 하는데 번역자 김상운이라고 되어 있어서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 정도로 그 이름을 기억했는데, 책 말미에 옮긴이 후기를 읽다가 이 책의 번역자 이름을 찾아보니 역시 같은 이름이라는 점을 발견하고는 무척 신기하면서도 옮긴이의 진심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졌다. (참고로 김상운 번역가는 현대정치철학연구회 연구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10년도 훨씬 이전에 현대철학, 포스트구조주의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2012년의 기록을 살펴보니 나는 기본적으로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철학사를 전체적으로 개괄하는 책을 몇 번 읽었고 이어 기본적으로 미학이라는 장르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이유로 박정자 상명대학교 명예교수가 펴낸 책을 거의 다 찾아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박정자 교수의 정치적인 성향을 나중에 확인하고 기분이 묘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박정자 저자가 쓴 책의 수준은 높았다고 기억한다. 미셸 푸코 <성의 역사>를 국내에 최초로 소개한 이력 때문인지 박정자 작가의 책을 읽으며 미셸 푸코와 포스트구조주의에 관심을 가졌고 다음 해인 2013년 봄까지는 이와 관련한 책을 여럿 읽었다. 최근 읽어보려고 했던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도 이미 이 시기에 읽었던 모양이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현대사상 입문>에 대한 소감은 저자가 책에서 살짝 언급한, 독서의 방향이랄까 방법이랄까, 그것과 연결해서 마무리하게 된다. 너무 진지하지 않게 그러나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얇은 레이어를 여러 층 깔 듯 그렇게 책을 읽으라고 저자는 말한다. 20대 후반의 나와 40대 초반의 나는 다시 연결되어 포스트구조주의나 현대사상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다.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을 읽었지만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레이어들을 바탕으로 나는 <현대사상 입문>을 생각보다 꽤 이해하며 읽었다. 라캉의 상상계-상징계-현실계도 칸트의 감성-오성-물자체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것이라는 내용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게 된다. 독서 경험의 레이어를 계속해서 얇게 여러 겹 쌓아나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