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의 모든 역사 -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 뇌를 이해하기 위한 눈부신 시도들
매튜 코브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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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뇌과학에 흥미가 생겼던 건, 이 과학이 사람의 가장 깊숙한 곳을 들여다볼 수 있는 렌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 몇 권을 읽었을 땐 이제 곧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인간은 결국 뇌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자신감. 그 후에도 몇 권을 더 읽었다. 그리고 나는 꼭대기에 다다랐다. 그게 더닝 크루거 곡선 속 ‘우매함의 꼭대기’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우매함의 골짜기 정도인 것 같은데, 이번에 읽은 『뇌 과학의 모든 역사』를 보니 사실 내가 아니라 이 학문 자체가 그 골짜기에 서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단 저자 스스로 “여러 세부 분과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기에”, “수면 연구, 비시지각, 호르몬, 정서, 뇌 발달 및 유전자가 뇌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등에 대한 내용을 깊게 다루지 않는다”고 말하는데(p.284), 다른 과학에서는 드문 광경이었으리라(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미래 파트에선 에누리 없이 “뇌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는 이제 교착 상태에 다다르고 있는 듯하다”고 말하는데(p.499), 이 말이 꼭 ‘우리는 골짜기에 빠졌다’는 선언으로 들리는 것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뇌를 알면 인간도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만만했으니, 지금의 내가 보기에도 딱히 보기 좋았다곤 못하겠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은 역설적이게도 이 책에서 얻은 큰 수확이기도 했다. 일단 겸손해질 수 있었고, 뇌과학의 지금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수확이 여기에 그쳤다면 『뇌 과학의 모든 역사』는 그저 그런 책으로 남았겠지만, 이 책은 그 수준을 가뿐히 넘어선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오늘 서평에선 그걸 정리해보려고 한다.

 

 

 

인공지능과 가소성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

 

그 다음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아주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단 점이다. 인공지능이 여러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훌쩍 뛰어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지능(인간 지능)을 이렇게나 많이 모르는 와중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만큼’ 발전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인간의 뇌는 단순 연산 기계를 넘어 감각과 상호작용하며 정보를 처리하는 반면, 인공지능에겐 아직 어려운 일이고, 기술 발전을 감안하더라도 그 감각을 완벽하게 이식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신경가소성이 있다. 나는 자연지능의 신경가소성이 인공지능 개발자와 신경과학 연구자들에게 사차원의 벽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이 뇌를 미궁으로 끌고 가는 견인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개발자의 입장에선,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해가는 뇌를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을까? 최근 인공신경망으로 어느 정도 구현해냈다고 하지만, 저자는 그 또한 동물과 다른 종류의 인지 오류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동물 뇌의 메커니즘과 다르다고 말한다.

 

미스터리를 더하는 트릭처럼 가소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연구자들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저자는 우리 뇌가 유전의 유산을 물려받았더라도, 그로 인한 기능적 제약은 대단히 미미하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든 최근의 사회 변화가 더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것이 바로 가소성의 결과라는 것이다. 책의 비유를 빌려 말하자면, 가소성은 “높은 고도로 날면서 동시에 기존에 제작된 모든 부품들을 기내에서 새로 생산한 성분들로 교체하는 비행기와 같다”고 한다(p.344). 이런 뇌에서 법칙을 찾는 일이, 나에게는 마치 중력과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만물 이론처럼 느껴진다. 스티븐 호킹이 찾다가 끝내 포기했던 그 이론 말이다.

 

자연지능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까지 부족한 마당에 ‘일반지능’(AGI)의 탄생을 장담한다는 건,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물론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점 때문에 일자리 위협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넘어 일반지능의 탄생과 인간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게 뭐랄까, 저 허풍쟁이들에게 잡히지 않아도 될 멱살을 내어주는 모습 같다.

 

 

 

마지막으로, 인간 본성에 관하여

 

인간 본성 같은 건 없다는 게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이다. 어떤 본성도 (앞서 인용한 것처럼) 환경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 내가 이해한 신경가소성이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기질을 부인하려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뉴런 사이에 연결이 뛰어나서 빠른 학습이 가능할 테고, 누군가는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서 누가 봐도 ‘상남자’ 같을 수 있겠지. 하지만 예전에 읽은 『나의 뇌를 찾아서』에서 말하길 “상호의존성이야말로 두뇌가 발휘하는 놀라운 능력의 핵심”이라고 한다. 기질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는 뜻이다.

 

굳이 본성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여기저기에서 넘쳐나는 본성 타령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특히 『이기적 유전자』를 잘못 읽은 이들이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각자 도생은 자연 법칙”이라 여기며 지금의 아수라장을 정당화하는 꼴이 몹시 마땅치가 않은 것이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이제는 내 인생책이 되어버린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셀 수 없이 강조한다. “다양성이 표준이다.” 배럿 또한 뇌의 신경망 배선이 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배럿의 책은 감정의 형성을 따져보는 책이지만, 우리 생각에서 감정이 차지하는 무게를 따져보면, 나는 배럿의 저 선언이 우리 본성에 대한 설명으로 읽힌다. 우리는 환경에 따라 다른 본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과학의 방식으로는 우리 뇌, 나아가 인간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만약 환경에 따라 신경망의 배선이 변한다면, 환경에 대한 공부 없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의식에 관한 연구를 이끌었던 프랜시스 크릭은 “그들(철학자들)의 물음에는 귀를 기울이되, 그 답에는 귀 기울일 것 없다”(p.482)고 말했지만, 글쎄, 환경이 본성을 좌우할 정도로 큰 압력을 발생시킨다면, 다가올 미래에는 두 학자 집단이 함께 답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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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ㅣ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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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박완서 작가를 잘 몰랐고, 그의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트위터(지금은 X라고 불리는)에서 어떤 기자의 추천사를 보고는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는 못하겠더라. “저는 박완서 작가를 도스토옙스키보다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하는데요.”라는 내용이었다. 도스토옙스키도 그닥 관심은 없었지만, 책장에 꽂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마음의 짐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위대하다고 하는데, 심지어 한국 작가라고 하니 읽지 않으면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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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었고, 내 감상은 ‘기자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거였다. 마음속 거품을 그대로 두고 말하자면, 이보다 잘 쓴 (한국어) 이야기를 읽어본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아니, 한국어뿐 아니라 내가 읽은 모든 이야기를 통틀어봐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대체 이런 글은 뭘 먹으면 쓸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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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아주 개인적인 의미를 되새겨보자면 그 어떤 역사책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점이다. 1930년대 중반 즈음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이야기를 읽으며 그 시절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개성에서의 (나에게는) 꿈 같았던 작가의 어린 시절, 서울로의 이주와 함께 마주한 여러 고민들, 해방 이후 시대상, 그리고 전쟁의 비인간성을 묘사한 대목까지. 마치 그 시대를 살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역사책으로는 얻기 어려운 감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느꼈다. 이게 바로 문학의 힘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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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문호를 몰라뵈었다니 빚 보증 잘못 선 수준의 손해를 본 기분이 들었고, 그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최대한 빠르게 읽어보자고 마음먹었다. 혹시 나처럼 이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안 읽으신 책스타그래머가 계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 하나를 놓치는 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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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ㅣ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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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포함한 서사 장르)에 긴장감과 개연성,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좀처럼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편인데, 내 주의력 수준이 진입 장벽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최고의 장점은 당연히 손발에 이마까지 땀을 솟게 하는 재미와 긴장감이 되겠다. 태양에 기생한 이상한 생물체 때문에 멸종을 불과 수십 년 앞둔 지구인들이, 늦어도 십수 년 안에 성간 우주 여행 기술을 개발해 11.9광년 거리의 항성계에 보내 태양의 기생충을 처리할 방법을 어떻게든 알아내야 한다는 설정에서부터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미션 수행 과정에서 이쯤이면 장애물 하나 넘었네 싶은 순간에 적절하게(?) 일어나는 사고 때문에 긴박함과 안타까움을 강제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것만 해도 내 문학 수준에선 별 네 개를 꽉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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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적어도 석사과정 이상은 되어야 언급 가능한 과학 설명으로 (조금 과장하면) 소설 분량 절반을 채우는데, 이게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잘 만든 영화조차 긴 과학 해설 때문에 ‘설명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별 반 개 정도는 깎이기 십상인데 말이다. 간혹 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인과 정도는 알 수 있도록 풀어 쓴 필력, 나아가 해설이 필요한 시퀀스를 기막히게 배치한 본능이 더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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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소설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 외계인 로키와 주인공 그레이스의 이야기였다. 로키와 그레이스가 만나는 과정부터 내 마음의 설렘 수치는 이미 맥스를 채웠는데, 둘의 협업 과정은 정말 환상적이면서도 즐거웠고, 로키와 그레이스가 죽음을 무릅쓰고 서로를 구하기 위해 번갈아 자기 목숨을 걸었을 때, 우주선 폭발 사고 때 로키가 자신은 생존이 불가능한 공간으로 나가 그레이스를 치료하고, 그리고 결정적 오류 때문에 위험에 빠진 로키와 그의 종족을 위해 그레이스가 우주선의 항로를 틀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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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대목을 소설의 절정이자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 읽었는데, 두 인물이 결정적 위기 상황에서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희생이 가능했을까? 인류와 에리디언(로키 종족의 이름)은 멸종을 막기 위해? 그 또한 당연히 중요했겠지.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썩 공감하기가 어렵다. 소설 후반부에야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그레이스는 헤일메리 프로젝트에 우주인으로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헤일메리 프로젝트’가 연료 부족으로 인해 수행원들의 자살로 마무리된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레이스는 ‘인류’라는 집단에 대해 애정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랬던 그레이스가 로키를 위해 죽음을 감수하고 로키를 위해, 망설이지 않고 진로를 돌린 이유는 아마도 우정 때문이었을 거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거리에서 만나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위기 상황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자신을 지키려 했던 로키를, 자신 또한 지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이 소설이 어떤 경지를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도덕 또는 윤리가 세워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도덕 또는 윤리는 철학에서 논증 등의 과정을 통해 세워져왔다. 조선 시대의 유학이 그랬고, 칸트의 윤리학이 그래왔으니까. 물론 철학의 방법으로 세워가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너무 먼 곳에서 찾으려 들어왔던 건 아닐까? 도덕이나 윤리는 결국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일 테고, 그렇다면 일상에서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레이스와 로키의 우정이 그걸 보여준 건 아니었을까?

물론 도덕이나 윤리는 친구가 아닌, 보편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 우정이 윤리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생각에 이 장면은 보편 윤리로 나아가기 위한, 충분히 멋진 출발이었던 것 같다. 둘은 우정으로 인류와 에리디언을 구해냈던 것은 상상의 한계를 넘어선, 말 그대로 숭고한 순간이었다고 해도 부족함 없었다. 이렇게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렇듯 좋은 이야기는 쇼츠의 시대에도, 아니 쇼츠의 시대이기에 더 소중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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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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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부의 증식, 과연 공정했나요?


자산 시장만 두고 봤을 때 코로나19 시대 최고 화두는 ‘자산 증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실물 경기는 역성장했는데 코스피 지수는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금 같은 자산 가격 또한 우주까지 뻗어갈 기세로 올랐어요. 그리고 이 상승 열차에 올라타느냐 못 올라 타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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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이 시기에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바로 자영업자와 일용직 근로자가 그 주인공이죠.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일용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자영업자들은 돈을 벌기는커녕 가지고 있던 돈조차 소진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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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을 수놓았던 이런 풍경은 ‘공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죽어가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거의 모든 세계 정부들이 돈을 풀기 시작했잖아요. 유동성 확장이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한 투자자들은 돈을 벌었지만, 방역의 최전선에서 비용을 부담했던 자영업자들은 벌어놓은 돈 마저 써야 하는 풍경. 이런 상황은 ‘공정’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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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의 함정


마이클 샌델 선생님이 쓴 ‘공정하다는 착각’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실마리가 담긴 책이에요. 우리 사회(뿐 아니라 거의 전 세계)를 강력하게 사로잡은 이념, ‘능력주의’가 과연 ‘정답’인지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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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선생님이 책이 던지는 질문 중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만 소개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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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은 과연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가?”

✏ “능력주의는 정말 노력하는 만큼 보상을 돌려주는가?”

✏ “능력주의는 1원칙이 된다면, 구성원 모두 보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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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저자 선생님의 답은 모두 ‘아니다’에 가까워요. 가령 능력 측정 문제부터 살펴볼게요. 미국의 최상위권 명문 대학(아이비 리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상위권 SAT 성적을 받아야 한다고 해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최상위권 성적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노력’이 아니었다는 점! 바로 부모님의 소득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이미 ‘부모님의 소득’이 ‘명문대 입학의 제일 조건’이 되어버린 건데, 과연 이 기준은 ‘학비 지불 능력’을 입학 조건으로 여겼던 100여 년 전과 뭐가 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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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르브론 제임스만큼 노력한 농구 선수들이 왜 르브론만큼 수입을 올리지 못하는지, 1980년대 일반 노동자들의 30배 소득을 올리던 금융회사 임원들이 왜 2010년대에는 300배 이상의 수소득을 올리는지 등등을 ‘능력주의’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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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결정적인데요. 능력주의를 신봉하게 된 결과 맞이한 게 바로 포퓰리리즘(과 브렉시트,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었다는 거예요. 능력에 따라 보상한다고 했지만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해외로 떠나는 일자리를 붙잡을 수 없었잖아요. 경제적 보상도 없는데, 이걸 ‘능력의 문제’라고 지적하니까 무력감이 안 느껴질 수가 있나요? 그들은 사회로 버림 받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세계화에 반대하는 방식으로 자기 의사를 드러낸 거였어요!(그 방식의 옳고 그름은 일단 논외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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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원을 위한 새로운 정의를 위한 정치


살펴보았듯이 능력주의가 답이 아니라면 우리에겐 어떤 선택지가 남아 있을까요? 다시 한번 우리나라 상황에 빗대어 설명해볼게요. 일단 팬데믹 시기의 혼란 틈탄 자산 증식이 온전히 ‘자기 능력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정치를 통해 이런 생각을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내는 것 또한 남은 과제 중 하나일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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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게 쉽진 않을 것 같긴 해요. 얼핏 ‘능력에 따라 보상 받는다’는 원칙은 틀린 구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견고하니까요(사실 이 책을 읽은 저도 쉽게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이 책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보상을 논의하기 위한 첫 걸음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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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의를 함께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여러분께도 일독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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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 개정증보판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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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이 말을 썩 좋아하진 않아요. “너 역사 공부 안 하면 옛날에 맞은 데 또 맞는다? 응? 그래도 안 할 거야?” 세계 최고의 쫄보 책판다는 도리어 이 말에 더 겁이 나는 거예요. “너 이눔 시키 또 맞기 싫으면 열공해!” 라고 하는 것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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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역사 때문에 겁을 먹고 있었는데, 세상에, 역사책을 읽어버렸네요? 유시민 선생님이 쓴 ‘나의 한국 현대사’란 책이에요. 좋아하는 작가 선생님의 신간이라 별생각 없이 펼쳐 들었어요.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꽤나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중 하나가 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이었어요. 역사를 기억해야 할 이유가 꼭 미래 때문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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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나를 긍정하는 매지컬 모먼트
‘나의 한국 현대사’를 다 읽고 난 뒤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보기에 유시민 선생님은 ‘지금의 나를 알기 위해’ 역사를 기억하는 것 같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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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소개된 2020년의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예요. 세계에서 꽤나 잘 나가는 부자 나라이자, 서구 선진국 못지않은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나라이구요. 그러면서도 잘 사는 사람만 잘 사는 나라이기도 해요. 코로나19 방역은 꽤나 훌륭했지만, 산업재해가 앗아가는 목숨은 아직까지도 어쩌지 못하는 나라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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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이 책에서 과한 자기 긍정이나 부정 없이, 지금 이 순간의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들여다보고 있어요. 그닥 정당하지 않은 출발(건국)을 결국 뒤집었는데(4·19) 그걸 또 뒤집어 엎고(5·16), 그게 또 어찌어찌 곯아 있던 배는 채워내는 과정(경제발전), 죽은 줄 알았던 독재의 망령이 다시 등장했지만(신군부) 그걸 또 뒤집어내는 데 성공한(6월 항쟁) 나라. 그 어느 것 하나 빼먹거나 비난하지 않고 살펴보니 왜 이 나라가 ‘흉하면서 아름다’워졌는지 알겠더란 말이죠. 그걸 알고 나니 역사 공부가 이렇게 신기한 것이었다는 돈오의 순간이 뙇(!) 오고 말았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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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협주의자 아니죠~ 현실주의자 맞구요!
또 하나 신기했던 건, 이 과정을 서술할 때 선생님의 어조였어요. 이 모든 과정을 어떻게 보면 건조하게, 다르게 보면 평온하게 설명하고 계셨거든요. 제가 그래도 선생님을 아주 모르지는 않는데요. 말로 논평할 때와는 사뭇 달라서(최근에는 논평도 많이 순한 맛 됐지만) 조금 놀라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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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골똘히 생각해 보니 꼭 놀랄 일은 아니더라구요. 선생님은 책의 말미에 이루고 싶은 소망을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그 소망이 ‘흉함’을 부정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가령 책판다가 월급을 많이 받고 싶은데, 월급이 적은 현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월급이 오르진 않는 것처럼 말이죠. 어쨌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유를 따져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니까요. 저는 이 책을 그렇게 이해했어요. 역사나 현상이 흉하든 아름답든 일단 이해부터 하고, 그 다음에 흉한 부분을 고쳐보자는 것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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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흉한 건 지금 당장 없애버려야 한다”며 선생님 같은 사람을 ‘타협주의자’라고 낙인 찍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선생님의 방법이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진짜 변화는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얼마 동안 역사 때문에 겁을 먹었는데(혹시나 미래가 없어질까봐…), 이 책을 읽고 나니 역사를 공부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막연하나마, 앞을 뭔가 변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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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보람은 순전히 이 지점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과거를 열심히 공부했는데 반대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혹시 그 보람과 희망을 책판다와 같이 느끼고 싶은 분들 계신가요? 그렇다면 ‘나의 한국 현대사’를 꼭 읽어보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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