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
홍진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했습니다.

⠀

지난 6월 1일 업로드한 『뇌 과학의 모든 역사』 서평에서 말했듯이 나는 인공지능(AI)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편이다. 인간 지능(자연지능)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은 와중에, 인간 지능의 어떤 강약점을 뛰어넘고 보완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와중에, 어쨌든 다 해내겠다는 AI 회사들의 자신감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나는 AI의 성능 향상보다도 오히려 AI의 출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일어날 변화들이 좀 걱정스럽다. 일자리 축소리든지 과제 작성 시 높아지는 AI 의존도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이런 변화가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을 대체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AI 개발사들의 희망사항을 필터링 없이 수용하고 그들의 입지를 꾹꾹 다져주는 현상 같아 마음이 좀 꺼림칙해진다.몇몇 돈 많은 너드(Nerd)에게 인류의 미래를 맡기는 것 같아서 더 그렇다.

⠀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를 텐데, 나는 AI의 발전 속도보다는 쓰임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럼 또 “무엇을, 어떻게?”라고 묻는 이들이 있겠지? 그분들을 위해 내가 『사고외주』(@across_book)를 먼저 읽어봤고, 꼭 한번 같이 읽어보자고 권해야겠다.

⠀

——

⠀

“이렇게 답이 빨리 나오는 시대에 우리가 왜 굳이 힘들게 생각해야 하나요?” 언뜻 그럴 듯해 보이는 질문이 『사고외주』의 문제 의식이다. 사실 무작정 답을 내놓기도 애매한 것이, 어떤 작업은 정말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운영 결과보고서를 자주 작성하는데, 며칠이 걸리던 초안을 몇 분 안에 그럴 듯하게 해내는 걸 보면, 안 쓰는 사람이 도태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

『사고외주』는 (‘답정너’의 뉘앙스가 또렷하게 담긴) 이 질문에 다른 답을 내어놓는데, 나는 그 답을 “이것저것 다 맡기다 보면 도태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도로 요약해보겠다. 어떤 영역에서 AI는 분명 인간의 능력을 아득히 넘어서지만, AI에게 맡길 수 없는 영역이 있으며, 정작 미래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

그래서 그 능력이 무어냐면, 저자는 정체성, 욕망, 윤리를 꼽는다. 여기에서 조금 적극적으로 행간을 읽어보면, 나는 문제 설정과 해결책의 적합성 도출에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내가 누구인지, 무얼 원하는지 알아야 문제(question)를 설정할 수 있고, 그 해법이 문제(problem)를 일으키지는 않는지를 판단하는 것만큼은 AI가 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자의 경우, 명시적인 문제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 AI의 해결 능력이 인간 대비 0.1% 수준에 불과하다는 연구가 있었으며, 후자의 경우 개발자의 성향이 알고리즘에 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알릴레오북스 최태웅 의장 편 참고) ‘AI에게 맡겨서는 안 될’ 일일 것이다(이미지에서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AI 답변 참고).

⠀

——

⠀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답이 빨리 나오는 시대에 우리가 왜 굳이 힘들게 생각해야 할까? 저자의 답은 ‘그렇다’이고, 나도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자신 있게 답하기에는 몇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가령 AI의 활용에 따른 ‘인지적 부담 덜기’1️⃣가 비판/반성/분석 추론 능력의 저하를 유도하는 것은 대체로 입증되었으나, 도구가 AI인 경우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이다. 현재 AI 활용과 사고력 저하 사이의 인과 방향이 확인되지 않았고(현재는 상관관계까지만 확인), 상관 관계를 확인한 연구 공통으로 AI의 사용 방식에 따라 오히려 추론 능력 향상될 수 있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A근거 문헌 확인 완료).

⠀

다만, AI 시대에 필요한 인간 능력의 향상을 위해 이 책에서 소개한 방법들은 소개한 방법들은 실제로 입증된 방법인 만큼, ‘대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고 싶다면 『사고외주』를 꼭 읽어보는 게 좋겠다. 참고로 책에는 없지만, (비판적) 독서도 사고력 향상에 괜찮은 방법이라고 하니, 이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


1️⃣ 인지적 부담 덜기(cognitive offloading): 외부 도구를 사용해 정보를 저장하거나 처리함으로써 내부 인지 자원을 절약하는 것

⠀

덧 1. 참고문헌을 표기해주었다면 더 깊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책의 분량 때문인지 실리지 않은 점이 아쉽다.

⠀

덧 2. 나는 인공지능을 공부할 때 뇌과학 분야의 책을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업계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살피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업계 종사자에게 투자 유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니체를 쓰다 ㅣ 슈테판 츠바이크 평전시리즈 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대 시절, 나는 니체라는 바다 한가운데 빠져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오른손에는 망치를 들고서 세상의 가치를 모두 부숴버리는(써놓고 나니 얼굴을 들 수가 없네). 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부끄럽긴 하지만, 그 또한 내 일부였다는 걸 애써 지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때 나는 (그때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우울감이 절정에 다다랐고, 니체의 철학은 최선의 돌파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2500년 가까이 세계를 억압해온 객관적 질서를 전복하는 차이의 철학, 운명을 긍정하며 스스로 가치를 창조해내는 초인(위버멘쉬)의 철학. 나를 홀려버린 니체의 철학이었다. 극에 달했던 정신적 방황을 니체의 철학과 함께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침 완역되었던 니체 전집(책세상 판)을 사서 경전처럼 읽던 시절이었다.

⠀

시간이 오래 지났다. 그동안 우울감은 현대 의학이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극복했고 방황도 그럭저럭 잠재웠지만, 여기에 니체 철학의 기여도가 얼마나 큰지는 모르겠다. 세상 일 때문에 철학을 진지하게 파고들 겨를이 없었고, 니체가 남긴 흔적도 세월의 바람과 함께 희미해졌으니까. 그런 와중에 『니체를 쓰다』 서평을 읽었고, 문득 니체를 파고들었던 그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니체는 어떻게 다가올지, 지금의 나는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

⠀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

“그들 모두는 확고하고 분명한 걸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길을 나아가는 데 반해, 니체는 항상 쫓기면서 자신도 모르는 길로 접어들곤 했다. 이런 이유로 니체의 인식의 역사는(돈 후안의 모험처럼) 완전히 극적으로 형성되었고, 위험하고 놀라운 에피소드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끊임없는 흥분의 도가니속에서 돌발적 급전으로부터 더 높은 단계로 뛰어 오르다가, 결국에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떨어져버리는 하나의 비극이었다.” p.57

⠀

『니체를 쓰다』에서 다시 만난 니체는 여전히 서양 세계를 규정지은 질서를 깨부수며 새로움을 탐닉하던 철학자였으며, 그의 철학은 언뜻 규격 바깥의 세계(혹은 사람)를 무시하면서 생겨나는 모순을 지적한 『평균의 종말』의 메시지와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철학에 다시 한번 주목할 수도 있었겠으나, 결국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

“인식이라는 것에서 “맹안盲眼은 오류가 아니라 비겁”이고, 선한 마음은 범죄인 것이다. 왜냐하면 수치와 아픔을 고려하고, 알몸의 절규나 추함에 대해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마지막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종 한계까지 가지 않는 진리, 철저함이 결여된 진실성은 윤리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 이 때문에 니체의 엄격함은 태만이나 소심한 사고로부터 결단을 위한 성스러운 의무를 소홀히 하던 모든 자들과 대립하게 되었다.” p.72

⠀

적어도 이 책에서 내가 읽은 니체는 더 나은 것, 더 높고 위대한 것을 갈망하는 철학자였다. 다시 말해, 그가 추구했던 차이는 질서에서 소외된 약자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철학은 위대함을 위해 투쟁하는 개인(초인)을 위한 것이었을 뿐, 공존하는 세계를 지지하지 않는다. 니체가 ‘파시스트’였다는 일부 평론가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는 츠바이크가 그린 니체(와 그의 철학)를 강자의 언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그가 자신의 철학을 예술의 테두리에 가둬두었다면, 이 책을 읽으며 20대 시절에 보냈던 공감을 온전히 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삶이 예술보다 더 크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되었고, 초인이 될 수 없는, 혹은 되지 않으려는 삶 또한 긍정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때와 다른 나는 “선한 마음은 범죄”가 되고, “수치나 아픔을 고려하고” “추함에 대해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마지막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는” 그의 철학에서 더는 이정표를 찾을 수가 없었다.

⠀

『니체를 쓰다』 속 니체와 그의 철학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격정적인 문체를 만나, 특유의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 어느 책보다 또렷한 니체를 나에게 데려다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또렷하게 내 앞에 나타난 니체의 초인 때문에 나는 니체에게서 여러 발짝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초인이 되기에는 버거운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니체를 쓰다』는 좋은 책이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작가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저 내가 변했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 ㅣ 현대지성 클래식 3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홍대화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지성 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실린 작품 대부분은 종교 세계관에 바탕해 쓰였다. 그런데 하필 그 종교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서평을 비아냥으로 꽉꽉 채워두겠다고 마음먹었지만(‘요즘 그 종교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톨스토이의 신앙이 아무리 깊었어도 차마 이런 소설을 쓰지는 못했을 것’ 같은…), 표제작이자 첫 번째 수록 작품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기 전부터 그런 마음을 제쳐두었다. 작가의 솜씨인지, 소재의 강력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 작품에서 구두수선공 세묜이 이름 모를 청년을 추위에서 구했던 그 선행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온기가 차오르는 걸 느꼈던 것이다.

⠀

그렇다. 이 책은 조건 없는 선행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이야기이다. 세묜을 비롯해 자신의 가게에 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준 제화공 아브제이치(「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 가족을 믿음으로 대했던 옐리세이(「두 노인」), 형들과 달리 도깨비의 꾐에 넘어가지도 않았으며, 도리어 타락한 형들에게 바보같이 내어주었던 이반(「바보 이반」), 은수자에게 도움을 주었던 황제(「세 가지 질문」)는 자신의 것을 모두 거리낌 없이 나눠주었고 이들 모두 어떤 형태로든 구원을 받으면서 이야기들은 마무리된다.

⠀

냉소를 머금고 보면 이 모든 이야기가 세상에 없는 동화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선의보다는 욕망으로 가득 차있는, 그래서 온갖 충돌이 일어나는 지금 냉소 하나를 보태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들의 구원을 다르게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들이 선행을 실천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선행 그 자체가 구원이었다고 말이다. 구원의 성격은 「세 가지 질문」에서 잘 나타나는데, 황제가 힘겨워하는 은수자를 돕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면, 다른 세계선에서 황제는 ‘선행을 베풀던 그 시간’에 미리 매복해있던 원수의 가족에게 복수를 당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톨스토이의 구원은 인과가 아니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으로 읽었다는 이야기다.

⠀

지금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하지만, 톨스토이가 살았던 시대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을 거다. 급격한 산업화, 열강의 충돌,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차르까지, 어쩌면 그가 살던 러시아의 혼란은 지금보다 덜하진 않았을 터. 그런 시대에 살았던 톨스토이가 이런 작품들을 발표한 것은, 인류가 서로 사랑하기를 바랐던 자신의 희망을, (신의 의지를 빌어) 세상에 전한 것 아니었을까? 15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이야기가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런 톨스토이의 희망이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내 희망을 과하게 투영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감상을 남기고 싶었다. 연대, 배려, 사랑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요즘, 이 소설이 도도한 흐름을 돌려세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

이 책을 이렇게 읽어서였을까?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끼어 있던 냉소는 「바보 이반」의 세 도깨비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적독 생활 -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타이키 라이토 핌 지음, 정아영 옮김 / 서해문집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애독가가 애서가인 것은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겠지만, 애서가는 애독가일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지 않을까? 정말 필요한 책을 제외하면 대부분 빌려 보던 이들이 문득 짧은 대출 기간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렇게 책을 한권 두권 사다 보니 아니 이게 웬걸, 사고 싶은 책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깨달음을 득한 후로는 자기 읽는 속도는 안중에 없이 책을 사들이면서 결국 집은 어느새 책 창고가 되어버리는 과정. 내가 애서가가 된 과정인데, 아마 다른 애서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거쳐왔으리라.

⠀

재미있는 것은 애독가에서 애서가가 되는 과정에서 책의 성격이 변한다는 것이다. 초보 애독가 시절, 나에게 책은 ‘읽으면 좋은 것’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면, 애독가 경력을 나름 적지 않게 쌓은 지금은, 다음 달 장바구니에 골라 넣어야 할 고민거리,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훌륭한 구경거리, 내 지적 성향을 보여주는 수집품, 읽은 책에 대해서는 지적 허영을 뽐내게 해주는 자랑거리, (사실과 달리) 박식함을 전시하는 인테리어까지, 책은 단순히 정보 전달을 아득히 넘어서는, 천하무적 만능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

다만 하나 결정적인 아쉬움이 있다면 내 덕질을 소재로 함께 떠들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적독 생활』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냉큼 주문한 것도 그래서였다. 책 수다에 대한 갈망을 이렇게라도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되어 소구 포인트를 정확히 채워준 것이다. 반갑지 않을 수가 있을까.

⠀

특히 마음을 꺼내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공감이 갔던 대목을 요약해보면 이런 것들이다. 필요한 책만 얼른 사서 나오겠다는 마음을 아무리 굳게 먹어도 그럴 수 없는 우리 종족의 (아마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할) 버릇, 필요한 책을 집에 가지고 있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책에서는 이 감정을 낭만으로 표현했지만, 크게 다른 감정은 아닐듯), 과제 때문에 꼭 읽어야 할 책은 이상하게도 꼭 미뤄두는 습관, 읽던 책을 마무리하고 새로 읽을 책을 고르는 데 몇 날 며칠이 걸리는 우유부단함(모든 책이 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사야 할 책이 늘어나는 탐욕(?)까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내 습관을 신묘한 무당처럼 지적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가지지 않아도 될 양심의 가책과 공감의 사이를 오가느라 무척 바쁘면서도 무척 즐거웠다는 이야기.

⠀

단 하나, 아쉬웠던 것은 이 책을 쓴 독자 집단이 그렇게 쌓아놓은 책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남이 읽는 책, 남이 채워놓은 책장이 그렇게 궁금하고, 또 엿보는 과정이 즐거운 사람인데 그 과정이 생략되어서 무척 아쉬웠던 것이다. 그래서 내 거실 책장을 구역별로 나눠 보여주는 것도 나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궁금한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는 것만큼 민망한 일은 없으니까. 혹시 궁금한 분이 계신다면, 댓글에 남겨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서평 끝.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이우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뇌과학 서적을 자주 읽으면서 귀가 닳도록, 아니 눈이 닳도록 눈에 띄는 부분이 있는데, 인간 인지 능력의 한계에 관한 것이다.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의 뇌는 입력된 정보(자극)를 모두 처리하지 않는데, 우리 뇌가 가뜩이나 코끼리가 물을 마시듯 열량을 먹어치우는 마당에 주변의 모든 자극을 처리한다면 터져나갈 게 분명하다. 터진 뇌가 없지 않느냐고 먼저 물어볼까봐 얼른 답하자면, 입력된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인공지능의 전력 소모량을 보면 되겠다. 사람이 불완전한 정보의 빈틈을 메우는 이 과정을 ‘예측 처리(predictive processing)’ 또는 ‘예측 부호화(predictive coding)’라고 부른다.

⠀

『평균의 종말』을 다 읽은 나는 이 책이 다룬 평균 개념을 곱씹어보았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아! 평균 개념을 몰랐다는 게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시길(확률·통계가 어렵긴 했다. 그것도 매우 많이). 저자가 제목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낸 목표, 즉 종말시키고자 한 평균(또는 평균주의)이 아주 익숙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뇌과학 책에서는 기시감 또한 예측 처리의 여러 결과 중 하나라고 말하는데, 혹시 나도 뭘 잘못 본 건 아닐까?

⠀

이 책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평균에 관한 이야기이고, 평균에서 시작해 평균으로 끝난다. 책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다. 주의할 것은 평균을 곱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끝장을 내고 싶은 쪽에 가까운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는 평균 바깥을 바라볼 때가 되었다는 거다. 저자는 평균이 일군 공헌을 다짜고짜 부인하지는 않는다. 너무나 거대해서 도저히 알아낼 수 없었던 세계의 많은 일들을, 평균의 탄생과 함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정치인들은 평균 덕분에 시민이 무얼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었고, 가격을 매길 수 있었다. 정치 경제 행정 사회 과학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평균은 마법의 힘을 발휘했다. 저자가 평균의 공헌을 부인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책을 덮었을 거다.

⠀

책을 덮지 않았던 것은 저자의 평균 비판, 정확하게는 평균의 공헌만큼이나 중요한 평균의 빈틈을 날카롭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책의 서문에 소개된 예부터 강렬했는데, 1940년대 말 이상할 정도로 잦은 전투기 추락 사고 때문에 골치를 앓던 미국 공군이 찾은 원인이 바로 평균이었던 것이다. 당시 전투기의 조종석은 조종사 신체 평균 치수에 맞춰 생산됐는데, 아니 당장 자동차 시트조차 위치가 바뀌면 운전이 어려워지는 마당에 전투기 조종은 말해 뭐할까. 여기에서 더 재미있는 사실은? 평균에 해당하는 인원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거다.

⠀

저자 자신의 이야기는 ‘평균의 비극’처럼 느껴질 정도다. ADHD 진단을 받은 저자는 친구들의 따돌림과 선생님의 무관심 가운데 낙제점을 받아 고등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철저히 평균에 기반해 설계된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문제아이자 낙오자였던 그가 십수년 후에 하버드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 교수가 되었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ADHD인의 멋진 개과천선 스토리? 학교가 품지 못한 평균 바깥 아이들의 이야기? 그는 버림 받듯 평균의 전당인 학교를 그만둬야 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에게 최적화된 학습법을 깨달았고, 이후 학창시절과 달리 공부에 대한 열의가 불타올랐다. 그렇게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일 때문에 야간 강의를 들으며 대학을 졸업했으며, 하버드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끝내 하버드 교육대학원 교수가 됐다. 이러한 인생 경로를 걸어온 저자는 자신처럼 평균 바깥에서 가능성을 찾지 못했던 이들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

꼬리를 물던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니 서두에서 느낀 기시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측 처리가 만들었던 정보의 빈틈을 개개인이 인지하지 못했듯 평균이 만든 사회의 빈틈을 우리 또한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랬기에 내게 예측 처리와 평균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 쌍둥이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렇게 알 듯 말듯한 기시감을 걷어낸 채로 책을 덮었다. 하지만 기시감이 남긴 답답함은 같은 자리에 남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각해보면, 사람 개개인의 뇌가 만들어낸 빈틈은 과학, 나아가 학문을 통해 완전하진 않더라도 상당부분 보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사회의 빈틈은? 이걸 메울 방법이 있을까? 저자는 8장에서 학생들의 재능을 빠르게 발견하고 그에 맞는 특성화 교육을 실시한다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솔직히 이 대안이 이상론처럼 느껴진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 평균적 경로 의존 성향이 뚜렷하고 강력한 우리나라에선 더더욱 그럴 것이다.

⠀

그러나 설익은 대안이 이 책의 가치를 낮추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사람들에게 평균의 빈틈을 알렸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자기 할 일을 충분히 해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