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 관계, 그 잘 지내기 어려움에 대하여
정지음 지음 / 빅피시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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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작가의 책. 읽으려고 기억해뒀던 책인데 기대한 것만큼 재밌게 읽었다.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하려는 면에 깊이 공감했다. 같은 작가의 다른 책도 얼른 읽어보고 싶다.

때로는 나와 나의 거리가 타인과의 그것보다 훨씬 멀었다. 나는 나의 고향이자 타향이었고, 모국이자 외국이었으며, 그 어딘가의 경유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삶이란 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현재는 집 밖에 있음을 인식하게 되는 여행일지도 몰랐다. - P006

사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입을 모아 좋다고 하는 것들이 하나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생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누구도 내 삶에 나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 P017

한 사람의 악행에 어째서 두 사람의 순수를 해하는 힘이 실릴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지독한 억울은 거의 통증에 가깝다는 사실을 배웠다. 실제로도 가슴속이 아렸고, 그 부분에 얹힌 울분을 빼려고 팡팡 두드리다 보면 겉도 아파졌다. - P028

사랑은 어감이 예쁜 글자를 취한 것만으로 아름다움을 다하여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남은 거라곤 어떠한 추잡이나 멸시나 포기 따위의 축축한 심정인 것만 같았다. - P037

나를 꼭 닮은 사람이란 초상화라기보다 필터가 하나도 적용되지 않은 셀카 같은 것이었다. 아름다움보다 아름답지 못한 결함을 비춘다는 얘기였다. - P38

부모님은 진작 ‘네 멋대로 살아라’라며 포기했는데, 의외로 또래 친구들이 열띤 말을 보탰다. 부모님은 절대적 공경의 대상이고 드높은 태산일 뿐 시시때때로 클라이밍하는 암벽이 아니라는 거였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이 더 높아지려고 나를 낳지는 않았다고 믿었다. - P117

공포는 마비의 형태로 온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 P121

이제는 아파트 단지 불빛이 디즈니랜드보다 비현실적이야. 진정한 꿈과 환상의 세계는 놀이동산이 아니라 수도권 24평형 신축 아파트인 거야. - P132

너무 깊은 우정과 너무 맞는 말의 조합은 어쩐지 재수가 없다고 느껴졌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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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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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책이라 안 읽어도 외울 정도로 본 듯한 책. <새의 선물>도 그런 책 중의 하나였다. 수백 번도 더 들여다 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접한 적이 없어서 더욱 새롭게 읽었다. 제목만 보면 내용을 선뜻 추측할 수 없는 까닭에 첫 장부터 탐색하듯 살폈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처럼 동네 전체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떠오른다. 앗, 예시로 든 드라마도 제대로 본 적은 없는 것들이다.

작품을 통으로 읽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에 발췌는 많이 하지 않았다.

개정판에서는 문제될 수 있는 표현이 다듬어졌다고 했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나는 사랑이란 것은 기질과 필요가 계기를 만나서 생견났다가 암시 혹은 자기최면에 의해 변형되고, 그리고 결국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 P11

나는 거짓과 위선이 한통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 P56

아줌마들은 자기의 삶을 너무 빨리 결론짓는다. 자갈투성이 밭에 들어와서도 발길을 돌려 나갈 줄을 모른다, 바로 옆에 기름진 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번 발을 들여놨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뼈빠지게 그 밭만을 개간한다. - P75

아무런 이지적 노력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그따위 신체적 성장을 남의 눈앞에 앞당겨서 보이려 한다거나 다만 금기라는 사실 때문에 본뜰 가치도 없는 어른 흉내에 매료된다거나 하는 것은 역시 봉희 같은 어린애들만의 생각이다. - P86

머리가 너무 좋으면 머리를 돌리다가 머리가 돌아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로 머리가 돌기는 틀린 아이들 간에는 공공의 의학 상식이었다. - P176

어쩌면 이모의 내면에는 수많은 다른 모습들이 함께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들 중에 하나씩을 골라서 꺼내 쓰는 제어장치, 즉 이모의 인생을 편집하는 장치가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되면 이모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 우리들이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나라는 존재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 P357

위급한 순간에는 그토록 자랑하는 남자다움을 포기하는 것이 아저씨가 가진 호방함의 이면이었다. - P364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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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아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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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만으로 대단하고 담백한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재미까지 있으니 희귀한 책이다. 만족도 도합 104%, 사서 고생 결혼 해방 일지라는 문구부터 재미를 예감했는데 역시나. 덕분에 지루하기만 했던 출·퇴근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흥미진진하게 보냈다.

바로 짐 싸서 나와. 요즘 세상에 시집살이하면서 사는 여자 없고,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딸이 그렇게 살 필요 없어. 너 한 몸 스스로 먹여 살리지 못하게 키우지도 않았고, 부족해도 능력 쌓을 때까지 아빠가 지원해줄 테니 그냥 나와. 그럼 얘기 끝! - P20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 시작한 10대 때부터 품어온 나의 상상 속 아이는 이제 족히 스무 살은 되었을 것이다. 클 만큼 큰 그 아이를 내 삶에서 떠나보내고 나니 삶의 무게가 절반만큼은 가벼워진 것 같다. - P60

우리 집 장녀는 태어날 때부터 위아래를 헷갈려 거꾸로 태어났다고 한다. 위치를 돌려보려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방향을 고집함으로써 위아래 없는 노빠꾸의 삶을 예고했다.
(중략)
어린 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리지만 차마 입을 열 용기는 없어 꿀꺽 말을 삼킨다. 하지만 우리 집 노빠꾸 장녀는 이럴 때 입을 다물면 죽는 병을 앓고 있기에 눈치 따위 보지 않고 크게 입을 열어 이 분위기를 박살낸다. - P67

그 집에서 벗어난 이상 그들이 무엇을 의도했든 더 이상은 내 알 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번에도 무사히 마감을 해냈다는 사실이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무수히 많은 ‘할 수 있다’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 P92

20대에 들어간 첫 직장은 열심히 다니다가 한 번 월급이 밀리고, 두 번 월급이 밀리자 뒤도 안 돌아보고 그만두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회사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그만둔다며 손가락질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힝. 손가락질할 거면 월급이나 주고 하세요!’ - P98

정말 돈은 삭막하고 차가운 것이고, 사랑은 따뜻하고 계산하지 않는 것일까? ‘사랑하니까 네가 그냥 해줘’보다는 ‘연봉 잘 챙겨줄게’에 더 큰 배려와 존중을 느끼는 내가 삭막하고 메마른 사람일까? 나는 모르겠다. - P101

그렇다면 나의 이혼은 무엇의 실패일까? 나는 명확히 말할 수 있다. 이건 가부장제의 실패다. 한 집안의 가부장제가 균열을 일으키다 무너진 것이다. 더 이상 우리는 이혼이라는 사건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이혼은 한 여성의 인생을 무너뜨릴 수 없으며, 결혼과 이혼으로 우리를 협박하고 옭아맬 수 있던 시대는 이미 붕괴되고 있다.
실패한 사람은 없다. 실패하고 무너지는 것은 오직 퀴퀴한 냄새를 뿜어내는 낡은 사고방식과 제도뿐이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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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휴고의 일곱 남편
테일러 젠킨스 레이드 지음, 박미경 옮김 / 베리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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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 흡입력이 폭발한다. 인터넷에서 추천글을 봤을 때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재밌었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이 그려지기도 했는데, 배역이나 각색 등 어느 부분에서든 아쉬움이 남을 게 뻔한 실제 영화보다 책을 읽으며 본인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 더 즐거울 것이다.

세상은 자기가 판을 쥐고 흔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떠받든다. - P14

협상할 땐 무자비하게 굴어야 하는 거야, 모니크. 백인 남자에게 지불할 만한 금액을 당당히 요구하란 말이야. 일이 다 끝나면 돈은 전부 네 차지가 될 거야. - P43

네 인생을 바꿀 기회가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으라는 거야. 세상이 알아서 너를 챙겨주지 않아. 네가 차지해야 하는 거야. - P55

나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어. 그게 문제였어. 톡 까놓고 말하면, 나는 내 몸을 구석구석 알아차리게 됐어.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 딱히 남자애가 필요하지 않았어. 그걸 깨닫자 내게 엄청난 힘이 생겼어. 나는 누구에게도 성적으로 끌리지 않았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따로 있었거든. - P65

남자가 처음 손찌검을 하고 사과하면, 너는 그런 일이 다신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 P120

나는 이미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어. 그렇게 느꼈었고 그에 따라 행동했었어.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를 아낀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어. 그건 그 사람과 운명을 같이 한다는 뜻이야. 무슨 일이 벌어지든 너와 나는 함께 할 거라는 뜻. - P165

비통함이 손실이지. 이혼은 그냥 종이 쪼가리일 뿐이야. - P205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당신이 덜 유명하다는 뜻이겠죠. - P308

어떤 내용이 동시에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으며, 누군가가 사심 없이 상대방을 사랑하면서도 자기 욕심을 다 채울 수 있다니, 신기한 일이지. - P356

단 한 번도 옛날로 돌아가서 돈과 제대로 살았더라면 하고 바라진 않았어. 내 인생은 스스로 개척했고, 내가 내린 결정으로 쓴맛과 단맛을 두루 경험했어. 그런 일련의 경험 덕분에 지금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을 갖추게 되었지. - P363

내 전성기가 한참 지난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셀리아 세인트 제임스를 향한 내 마음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 했어. 예전과 달리 이번엔 내 감정을 하나도 숨기지 않았는데도. - P499

내가 아주 오랫동안 사랑이 뭔지 잘 몰랐다고 전해. 하지만 이젠 잘 알기에 그들의 사랑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전해. - P504

남자들은 흔히 말로만 가족을 버리지 않겠다고 해. 그런데 네 아버지는 실제로 그런 상황에서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어. 나는 네가 그 점을 알아차리길 바랐어. 만약 내게 그런 아버지가 있었다면, 나는 알고 싶었을 거야. - P517

전혀. 그들은 그냥 남편일 뿐이고, 나는 에블린 휴고니까. 그건 그렇고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나면, 내 아내에게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일 걸. - P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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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내가 배운 것들 - 내일의 세상에 ‘다름’을 던지는 젊은 리더들의 성장 수업
최다혜 지음 / 토네이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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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의 개발 소식에 좀처럼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지만 끝까지 읽었다.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열쇠는 교육에 있으니까. 어떤 놀라운 기술이 개발되든 결국 살아남는 건 양질의 교육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국가가 될 것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내가 배운 것들>을 읽으면 HBS에서 어떤 교육을 하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교수법이 아니라는 건 예상했지만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할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부터 배울 줄은 몰랐다. 철학과 멀어진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교육공간의 맥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이런 모습 아니었을지.

책 자체는 어렵지 않아서 HBS를 경험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양심의 중요성을 짚고 넘어간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HBS에서 만난 많은 리더들은 결코 성공을 과시하거나 도취되어 있지 않았다. 언제든 어려워질 수 있고, 언제든 넘어질 수 있고, 오늘의 찬사가 내일의 비난이 될 수 있으며, 자본시장과 미디어, 그리고 고객은 늘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 P160

단순히 범법행위가 아니더라도 법과 규칙이 요구하는 의도와 맥락을 벗어난 행동이라면 이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불이익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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