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람의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 것일까?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던 의학도가 어떻게 환자들의 마음을 생생한 글로 전달해주는 독특한 글을 쓰는 작가이자, 수많은 환자들에게 친구 같은 신경과 의사가 되었을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뮤지코필리아> 의 저자인 올리버 색스는 십 여 권의 저서를 통해, 독특한 환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그려왔다. 저자는 여든이 넘어 암이 재발하자 삶의 여운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 책 <온 더 무브>를 썼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20158)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떠났다.

 

저자는 1933년 영국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 삼촌, 사촌 모두 의사인 집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에 의대에 입학한다. 옥스퍼드 의대에서 신경생리학을 공부하던 첫 학기에 나 자신의 전기 에세이집을 쓰고 싶었다” (p.24)고 한다. “, 의학적으로 약간 비틀어서, 흔치 않은 결함이나 장점을 지닌 개인들을 다루되 그런 특성이 그들 삶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요컨대 임상적 전기 말하자면 일종의 병례사를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스물 일곱에 미국으로 떠나 50여년을 뉴욕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며 환자들의 병례사를 책으로 남긴다. 이 책은 열 여덟 살에 품었던 소망을 평생을 통해 하나씩 완성해가는 이야기이다. 또한 저자의 삶에 비친 빛과 그림자를 솔직하게 대면하는 고백이기도 하다.

 

<온 더 무브>(나아가는 삶) 라는 제목은 친구인 톰 건의 시에서 가져왔다. “열두 살 때 한 통찰력 있는 교사가 생활기록부에 색스는 멀리 갈 것이다. 너무 멀리 가지만 않는다면이라고 적었다고”(p.16) 한다. 모터사이클을 타다가 몇 번의 사고를 당하고, 역도를 하면 신기록을 세우다 허리 신경통을 얻고, 파도타기를 하다가 죽을 고비를 맞이하는 등, 그의 삶은 늘 끝까지 밀고 나아가는 삶이다. 편두통 클리닉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아 첫 책 <편두통>의 초고를 쓰지만, 병원 원장은 책을 출간하면 미국 내 신경과에는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며 경고를 한다. 책을 출간하면 처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갈등 속에서도 그는 출판을 결심하고,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아간다. 대중의 좋은 평가와는 달리 의학계에서는 냉랭한 반응뿐이지만, 환자들의 삶 전반을 비추는 새로운 접근법으로서 병례사가 꼭 필요하다고 여겨 <깨어남>,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었다> 등을 펴낸다. 그리고 198350세 때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26주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크게 알려지게 된다.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증세를 묻는 편지를 보내오면서, 저자는 진료실을 넘어 다양한 환자들과 관련 전문가들과 교류하게 된다.

 

올리버 색스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인생 이야기, 내면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 이야기가 곧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하다”(p.349)고 말한다. 어린 시절 제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기숙학교에 무력하게 갇혀 있던 경험 때문에 초자연적인 힘을 추구하는 한편, 유대감, 소속감, 사랑받는 문제에 있어서 평생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또한 정신분열증을 앓던 형으로 인한 혼돈과 괴로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미국으로 향했지만, 형에 대한 연민은 환자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또한 십대 시절,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성정체성을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는 어머니의 말에 그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마약에 빠져들기도 한다. 4년간 암페타민에 빠져 지내다 죽음을 느끼며 스스로 마약을 끊겠다는 결심을 한다. 만날 그렇게 도를 넘는다는 친구의 지적을 듣고, 중독과 자기파괴 성향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과 상담을 시작한다.

무엇보다 환자들을 진료하며 상태가 호전된다. 환자들에게 매료되고, 환자를 치료하는데서 기쁨을 느끼자 마약은 덜 찾고 정신과 상담 때는 더 열린 마음으로 임할 수 있게 된다. “정신과 상담과 좋은 친구들, 임상과 글쓰기 활동이 주는 충족감, 그리고 무엇보다 행운이 나를 만인의 예상을 뒤엎고 여든이 넘도록 살아 있게 해주었다”(p.188)고 한다. 수영을 할 때도 작은 공책을 준비해 글을 쓸 정도로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기록하며, 글쓰기에 몰두하는 순간의 기쁨은 황홀할 정도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온 크고 작은 사건들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노르웨이 산에서 다리를 다친 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었다>란 책을 쓸 때는 9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자신의 체험을 글로 쓴다는 것은 그때 느꼈던 공포를 다시 체험하는 것이라 그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80년간의 생애를 돌아보는 이 책을 쓸 때는 어떤 기분이었까? 저자가 자신의 슬픔과 고통의 밑바닥을 보여주고, 기쁨과 환희의 순간들 또한 생생하게 묘사하는 만큼, 독자는 올리버 색스와 함께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총 480페이지에 달한다. 이전 책에 비해 두껍지만, 신경생리학에 관한 전문적인 용어는 많이 생략되고, 일화 중심으로 구성되어 쉽게 읽힌다. 올리버 색스의 가족뿐만 아니라 그와 교류한 많은 학자, 예술가, 영화인 로버트 드니로, 로빈 윌리암스 등에 대한 일화도 만날 수 있다. 책 사이에는 올리버 색스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다. 라이딩 자켓을 입고 BMW 모터사이클에 탄 모습, 역도를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 기차역에서 수첩에 글을 쓰고 있는 모습 등, 진료실 밖의 모습도 만나게 된다.

 

그동안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고 매료된 독자라면 책 이면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자서전을 먼저 접한다면, 아마 그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질 것이다. 자신을 경계에 선 이방인처럼 느끼는 청년들이 있다면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남다른 그의 정체성이 경계를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간 것처럼, 자신만의 길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아끼며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읽혀도 참 좋겠다. 과학과 문학의 만남, 과학적 글쓰기를 지향하는 독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환자들의 삶에 있어서 결핍의 문제 보다는 삶을 의미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 보살핌의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올리버 색스의 이야기에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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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7-29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를 어찌나 감명깊게 읽었던지요. <온더무브>가 480페이지의 두께라도 꼭 읽어야겠군요. 모터사이클에 탄 올리버 색스 교수의 모습, 상상이 안 갑니다^^ 이래저래 매력적인 지성인이시죠

세뽀 2017-07-30 11:51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해요. 리뷰를 올리는 일도, 이렇게 나누는 일도, 수줍음이 많아서 한참 망설였어요. 그런데!! 댓글을 보니 엄청 기쁘네요. 매력적인 올리버 색스. <온더무브>와 함께 이 여름나기! 추천합니다^^

얄라알라 2017-07-3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에 세뽀님 꼭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