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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air conditioner (원제 : 자몽에이드 인생)





그날도 현과 혜는 농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엔 바보가 과포화 상태라며 혀를 차고는, 현대 인간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진보라는 신화에 너무 심취하여 단지 염색체 개수가 동일하다는 조건 하나만 충족하면 죄다 평등한 인간 등급을 준다고 불평해댔다. 그런데 어떻게 평등한 집합체 안에 바보편차가 이렇게나 클 수 있냐며 각 개인의 가격을 비교하는 헛소리를 꺼냈다. 아마도 동아시아 어느 반도 최저임금은 염색체 실타래 한 짝 가격을 131원으로 놓고 국제 표준법이 인증한 시간 단위 1아워 갈굼질에 6030원을 지급한다고 속삭였다. 너도 나도 염색체 내용물은 다양성으로 포장하고 모로 가도 숫자만 맞으면 결론은 너나 나나 똑같이 6030원이라며 그래도 쟤보다는 내가 더 비싸야 되지 않겠냐고 자조했다.


현은 4월 말일을 기점으로 백수가 되었다. 실업급여 통장에 찍힌 숫자 중 3800원이 차감되었다는 문자를 보면서 씁쓸하게 운을 더했다. 휴양도 피서도 오포세대에겐 연애보다 더 비현실적인 단어일 뿐이라고. 에어컨 바람 빵빵하게 맞으며 목구멍 축이는 음료 나오는 카페에서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썰 풀며 시간을 죽이는 게 우리 세대에게 걸맞는 vacation이라고 평했다.


혜는 휴가라는 한글을 두고 굳이 혀 끝에 걸리는 영국 악센트를 고수하는 현이 재수없다고 여겼지만 또 걸고 넘어지진 않았다. 영재원 친구로 만나 동네 외고 석차 한자릿수라는 자존심도 이해할 수 있고, 용어는 그 정의와 어원을 분명히 밝혀야 소모전을 피한다는 현의 지론에 마지못해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혜 역시 과고 자존심을 버리지 못해 메일과 카톡으로 줄기차게 알림을 찍는 청첩장근황을 애써 무시 중이었다.


입 옆이 부르튼 알바생이 건낸 차임벨을 들고 에어컨 바람이 일직선으로 쏟아져 내리는 테이블에 앉았다. 현은 진보는 워낙 속이 좁아서 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보수의 다양성을 말살시키는 편협한 인간들이라고 툴툴거렸다. 혜는 그런 현을 못 참고 요가나 명상을 해보라고 대꾸했다.


덜덜 거리면서 울부짖는 차임벨을 돌려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자몽에이드를 접시에 받쳐왔다. 혜는 빨대로 자몽시럽과 사이다 혼합물을 쪽쪽 빨았다. 이내 131원짜리 염색체 수개가 만들어낸 엄지손가락 두개를 바삐 움직이며 자몽에이드가 4500원이라고 짜증을 냈다. 자몽은 염색체가 대체 몇개나 되기에 나보다 고작 1530원 저렴할 뿐이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존심은 허리를 못 굽히게 만들고 학벌은 과거의 영광으로 눈을 멀게 만든다.


현은 역시 262원 어치의 손가락을 눌러 문장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마주 앉아서 트위터 스크롤만 내리는 혜를 힐끔 쳐다보고는 마저 문장을 만들었다.


6030*2hr=12060hr

에어컨 가동 전기료를 직접적으로 포함하지 않은 요금으로 피서를 즐기기에는 카페만큼 적절한 곳은 없다.


120분에서 100분이 부족한 지점에서 둘은 일어섰다. 두 명분의 호주머니에서 끌어모은 동전과 지폐로 부족해서, 결국 현의 실업급여 통장에서 얼마간의 현금을 인출했다. ATM기가 바로 옆에 있어서 개이득이라고 키득거리며 6030원보다 값진 1시간을 맛보자고 모텔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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