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책 향기] 누가 누굴 용서해?

  • 이청준 ‘벌레이야기’
  •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입력 : 2007.06.09 00:05 / 수정 : 2007.06.09 00:05
    • 사랑을 하면 가슴이 열리고, 거기서 미세한 생명들이 불꽃놀이를 합니다. 가슴 속을 수놓는 수많은 불꽃들, ‘나’는 불꽃놀이로 아름다운 하늘입니다. 반면 사랑을 빼앗기면 그 하늘이 꺼지고, 불꽃들이 꺼지고, 마침내 가슴이 꽉, 막혀버립니다.

      영화 ‘밀양’으로 다시 태어난 이청준의 ‘벌레이야기’를 보셨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을 유괴범에게 빼앗긴 후 명치끝이 막히고 가슴이 막히고 숨이 차올라 문득문득 넋을 놓는 여자가 주인공입니다. ‘벌레 이야기’는 아들을 유괴당한 여자와 유괴범과 하나님의 삼각관계를 통해 용서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소설입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어린 아들을 영영 볼 수 없게 된 여자는 살아 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초열지옥에서 마음을 태우며 혹독한 세월을 견디다 못한 여자는 교회로 갑니다. 오로지 하나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그것은 참담하게 죽어간 아이의 구원이었지요. 여자는 아이의 구원만을 빌고 또 빌었습니다.
    • 억울하게 생을 빼앗긴 아이의 구원을 확신할수록 여자는 유괴범이 불쌍해진 모양입니다. 마침내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자가, 극악무도한 유괴살인범을 용서하기로 한 거지요. 모두들 마음으로 용서하면 됐다고, 굳이 교도소까지 갈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렸지만 여자에게는 형식이 필요했습니다. 여자는 아이를 죽인 살인범을 용서해주러 교도소로 갑니다.

      그런데 사형을 기다리는 범인의 얼굴이 성자처럼 차분하고 침착한 거예요. 그건 무죄한 어린이를 죽이고 불안과 절망으로 죄과를 치러야 할 범인의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주님의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죄과를 참회하고 그 주님의 용서와 사랑 속에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고 하였다.” 생명 같은 아이의 목숨을 빼앗기고 절망의 늪에서 괴로웠던 바로 그 만큼 여자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자에게 용서를 받을 필요도 없이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평화를 누리고 있는 범인을 보고 여자는 범인도, 범인을 용서해준 하나님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너무 뻔뻔스럽게 느껴져서… 그 사람은 내 자식을 죽인 살인자예요. 살인자가 그 아이의 어미 앞에서 어떻게 그토록 침착하고 평화로운 얼굴을 할 수가 있느냔 말이에요. 게다가 주님께선 그를 먼저 용서하시구, 내게서 그를 용서할 기회를 빼앗고, 나는 질투 때문에 더욱더 절망하고 그를 용서할 수 없었던 거예요.”
    • 용서할 수 없는 곳, 그곳이 울울이 맺혀있는 내 삶의 매듭입니다. 내 가슴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고통 속에서 엉키고 맺힌 그 삶의 매듭을 내가 풀기도 전에 누군가가 끊어버린다면 오, 주여, 그걸 어찌 내 삶이랄 수 있겠습니까? 용서가 없으면 삶의 평화도 없는 거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용서를 내가 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해버린다면 어떻게 인생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인생을 믿을 수 없으니 차라리 벌레라 할 수 밖에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이주향의 책 향기] 움직이는 것은 사라진다

  • 김아타 ‘ON-AIR’
  • 이주향 수원대교수·철학
    입력 : 2007.06.22 23:55
  • 아마 고흐는 그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살기 위해, 그림을 그렸을 것입니다. 슬픔과 불안으로 요약되는 그의 자화상들은 모두 어쩔 수 없이 붓을 잡아야 했던 자의 고독으로 섬뜩하기조차 합니다. 고흐의 그림 앞에서 진지한, 숱한 관람객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요? 그들 중에 누가 저 무서운 고독과 지긋지긋한 가난을 껴안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그럼에도 왜 고흐 그림 앞에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까요? 영혼의 발작 같은 그림이 세월을 더하고 이야기를 더하면서 아예 신화가 되고 종교가 된 건 아닌지.

    ‘ON-AIR: 뉴욕의 신화가 된 아티스트 김아타의 포토로그’(예담)에서 김아타는 관람객들을 지우고 작품과 미술관만을 남긴 사진을 선보였습니다. “명화를 배경으로 한 공간에서 움직이는 관람객들을 모두 사라지게 하고, 그림과 건물만 소리 없이 남게 될 것이다.” 이상하지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안에 설치된 카메라는 8시간 동안 나비처럼 왔다가는 숱한 관람객을 찍었건만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 속에 사람은 없으니.
    • 그러고 보니까 얼마 전 오르세 미술관전에서의 느낌이 기억나네요. 모로의 ‘오르페우스’ 앞에서 나는, 내가 그림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림이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림은 내게, 목숨과도 같은 말을 품고 품어서 오히려 영원히 침묵의 잠을 자는 마음결을 아느냐고 묻고 있었습니다. 그 느낌을 품고 있던 차에 관람객들이 점점으로 사라진 김아타의 사진을 보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그는 ‘나’를 압도하고 우리를 압도하는 ‘바로 그것’만을 사진으로 남긴 것입니다.

      김아타의 사진은 사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철학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포함한 뉴욕시리즈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정적’(靜寂)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바쁘고 빠른 것들이 모여 있는 현대문명의 심장 뉴욕이 김아타의 카메라를 통과하면, 저승사자의 도시 같은 고요와 정적만이 남습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사라졌으니까요. 자동차들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부끼는 성조기가 사라졌습니다. 움직였던 것은 꼭 그 속도만큼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아타가 말하는 것입니다. 빠르게 움직인 것들은 빠르게 사라진다고. 남는 것은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면서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은 바로 그것뿐이었고, 그것이 그의 ON-AIR 프로젝트였습니다.
    • 김아타가 뉴욕에서 신화가 된 이유는 현대문명의 심장인 미국문화의 공허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바쁘고 빠르게’가 어디 미국문화뿐이겠습니까? 여유 없이 으르렁거리면서 삶이 전장이라고 믿는 현대인들에게 김아타의 사진은 바쁘고 빠른 것은 그만큼 바쁘고 빠르게 사라지는 거고, 남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고요한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수원대교수·철학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이주향의 책 향기] 삶이 녹아 사리가 되고
  • 김수남 '아름다움을 훔치다'
  •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
    입력 : 2007.07.06 23:13
    • 완벽하게 멋진 이 앞에서는 쭈뼛거리게 되지요? 바짝 긴장합니다. 저이라는 멋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하염없이 초라해서 아예 반감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소박한 이 앞에서는 마음이 부드럽게 풀어지지 않나요? ‘아름다움을 훔치다’(디새집)의 김수남 앞에서는 모진 인생을 살아온 만신들까지 마음결이 곱게곱게 풀어졌던 모양입니다.

      평생 굿판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돌연히 오지의 굿판에서 세상을 떠난 아름다운 사진작가 김수남을 아십니까? 생전에 나는 그를 두 번 만났습니다. 두 번째는 돌아가시기 두 달 전쯤이었지요. 착한 뒷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이었지만, 애환이 묻어나는 삶의 현장을 사랑한 사람답게 나이가 들어보였습니다. 그 나이는 세월에 찌든 나이가 아니라 달관의 나이였습니다.
      왜 그렇게 굿판을 돌아다니시냐는 질문에 씨익, 웃으셨던 우문현답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아름다움을 훔치다’는 바로 그 웃음을 풀어낸 책입니다. 김수남식 언어로 말하면 “세상의 관심밖에서 차가운 세월을 견딘 분”들에 대한 사랑이지요. 그는 정말 만신들을, 박수들을 사랑했습니다. 무병은 세상과의 불화의 징조지요? 만신들은 대부분 사랑을 잃고 사람을 잃고 마침내 세상을 잃은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외로운 사람들이 삶을 지탱할 힘을 잃고 세상 밖으로 쫓겨난 또 다른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굿판을 제 몸처럼 사랑한 남자! 그러니까 그 남자가 사랑한 것은 굽이굽이 사연 많은 삶의 현장이었던 거지요. 꿈틀꿈틀한 건강한 욕망이 짓밟히는 곳, 뜨거운 애욕의 칼이 스스로를 되찌르는 곳, 어처구니 없는 죽음으로 자식을 잃고 말문이 막혀 꺼억꺼억 통곡으로 밖에는 하소연할 수 없는 곳, 그는 그 고통이 정화되는 신명의 과정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을 붙들어두겠다고 무턱대고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냥 그렇게 삶이 녹아 사리가 되는 과정을 사랑했던 거지요. 그리하여 제주도 무혼굿판에서는 큰 심방(제주도 박수무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 “통곡과 신음 같은 슬픔의 소리가 들리는 곳, 몸져누운 망자의 노모 앞에서 차마 카메라를 꺼낼 수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 앉아 있는 나에게 동네 사람들은 ‘무사(왜) 저 심방은 굿 준비는 안하고 울기만 허염수광(합니까)’ 하며 의아해했다. 어떤 할머니는 머리에 썼던 수건을 풀어 나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안사인 심방이 나를 가리키며 ‘큰 심방은 이땅(이따가) 큰 굿 할 때 헐꺼우다’ 라고 말했고 그 때부터 나는 제주의 굿판에서 큰 심방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들을 먼저 보낸 어미의 그악한 통곡 앞에서 감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하고 함께 울기만 하는 마음, 만신들이 어찌 그 어머니 마음을 몰라보겠습니까? 그 마음이야말로 만신들의 마음일 텐데요. 오죽하면 김금화 만신은 그를 ‘사진박수’라 불렀을까요. 그를 보고 싶습니다. 고통을 받아들일 힘을 키우는 굿판에서 생을 긍정하는 힘을 키웠던 그 미소를 잊을 수 없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동무와 연인/③ 이덕무와 박제가

    잡된 글쓰기의 개척자인 이덕무(1741~1793)의 짧은 에세이 ‘나를 알아주는 벗(知己之友)’은 동무의 그윽한 멋을 뽐낸 기념비적 명문이다: “만약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10년 동안 뽕나무를 심고 1년 동안 누에를 길러 손수 오색실을 물들일 것이다. 10일에 한 가지 빛깔을 물들인다면 50일이면 다섯 가지 빛깔을 물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따뜻한 봄볕에 내놓고 말려서 여린 아내에게 부탁해 백 번 달군 금침 바늘로 내 벗의 얼굴을 수놓게 하리라…. 이것을 가지고 뾰족뽀족하고 험준한 높은 산과 세차게 흐르는 물이 있는 곳, 그 사이에 펼쳐놓고 말없이 서로 바라보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 때면 품에 안고 돌아오리라.”(권정원 옮김)

    대의(大義)가 푯대라면 그 푯대 아래 ‘동지’가 모인다. 그들은 거사(擧事)에 함께 투신하고 혁명에 신명을 바친다. 그 과정에서 취향은 무시되어도 좋고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부차적이다. 다만 배신만은 용서할 수 없는 짓이다.

    그러나 친구에게는 대의도 이데올로기도 없다. 전두환들이나 김영삼들이 웃는 표정만으로 족하다. 이론이 부재한 자리를 정서적 일체감이 들물처럼 채우는 우연성, 그것이 친구다. 공유된 이념이 없으니, 원칙상 배신도 존재할 수 없는 관계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배타적 관계의 형식은 대의와 이념의 부재가 남긴 정서의 진공 속에서 생긴다. 대의가 없는 대신, 친구는 ‘시간’을 먹고 산다. 이와 대조적으로 동지는 무시간적 관계인데, ‘같은 뜻(同志)’은 원리상 시간을 초월해서 동아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햇차가 좋고 묵은 술이 좋다고 하듯이, 친구는 시간의 명암과 굴곡을 거치며 얻은 탁하고 묵은 관계다. 그것은 시간이 보존해온 향수이며, 그 향수를 공유하는 몸의 기억이 만든 관계다. 그래서 친구의 관계가 정실에 치우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동무는 동지도 친구도 아니다. 동무는 동무(同無)! 오히려 서로간의 차이가 만드는 서늘함의 긴장으로 이드거니 걷는다. 공유된 이데올로기 아래 히틀러나 스탈린의 수염 같이 가지런히 정돈된 길을 행진하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길 없는 길’을 걸으며, 잠시만 한눈을 팔면 머-얼-리 몸을 끄-을-며 달아나 그림자조차 감추어버리는 관계다. 그것은 일찍이 짐멜(G. Simmel)만이 거의 유일하게, 그러나 다소 흐릿하게 파악한 ‘신뢰’의 관계다: ‘기분’과 ‘감정이입’의 차원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그것은 친구가 아니며, ‘뜻(이념)중심주의적 결집’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지도 아니다.

    동무의 예시로서 청장관 이덕무-초정 박제가(1750~1805) 등의 이른바 백탑파 지식인들의 관계는 그런대로 적절해 보인다. 담헌 홍대용(1731~1783)과 연암 박지원(1737~1805)을 종장(宗匠)으로 하는 이른바 북학파의 선비들이 유달리 교우도(交友道)를 강조한 것에는 그 나름의 뜻이 있었다. 무릇 동무란 부모의 집에서 벗어나려는 사춘기적 영웅숭배에 그 연원을 두는 법이다. 아이가 부모를 벗어나는 방식은 프로이트나 라이히(W. Reich)의 말처럼 성적 성숙만으로 읽어낼 수 없다. 동무와 결탁해서 아버지의 법과 어머니의 애착을 벗어나는 일탈 역시 성숙의 주요한 계기다. 이덕무와 박제가의 교우를 굳이 이 틀 속에 넣어 보자면, 담헌과 연암으로 대표되는 당대 최고의 아웃사이더 지식인들이야말로 인정투쟁의 대상인 영웅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개신유학적 체계(왕)와의 창의적 불화 과정에서 영웅/스승을 본뜨고, 동무를 사귀고, 외부(청나라)에 눈을 돌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절차였다.

    이덕무와 박제가 그리고 유득공 등은 서얼 출신이라는 계급적 한계에 떠밀려 동무로서의 상호인정과 우의가 더욱 두터웠다. 명문세가 출신인 담헌이나 연암 역시 서얼의 존재구속적 부조리를 비판하고 ‘의청소통소(擬請疏通疏)’ 등을 통해 그 혁파를 주장하면서 후학들의 입지를 돕는다. 부르디외의 유명한 말처럼 취향이 계급의 문제일 수 있지만, 계급이 취향을 아우를 수는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도 이덕무와 박제가는 그 대조적인 기질과 성향 탓에 동학(同學)이자 지기의 인연을 나누면서도 자잘한 긴장과 마찰을 피할 수 없었다.




    박제가는 열정적이며 당찬 성격으로 얼핏 무인(武人)을 연상시킨다. 자신의 얼굴을 ‘물소 이마에 칼날같은 눈썹’이라 묘사할 정도였다. 박제가는 이덕무의 외모를 두고, “신체는 허약하나 정신이 견고함은 지키는 바가 내부에 있기 때문이요, 외모는 냉랭하나 마음은 따뜻하니 몸가짐이 독실하기 때문”(안대회 옮김)이라고 했으니, 병약하고 고고한 암혈숙덕지사(巖穴宿德之士)의 풍모였던 듯하다.

    이덕무가 아홉 살 아래의 박제가에게 보낸 편지는 사형(師兄)으로서의 애정이 은근하면서도 서늘하다. <북학의>(1778)의 저자인 박제가는 중국어 공용론을 주창할 만큼 급진적 북학론자였고, 당시의 경화사족(京華士族)간에 유행했던 중국의 소설류를 무척 즐겼다. 스승 연암이 탁출하게 예시했지만, 소설적 서사는 근대적 계몽과 해방의 기법으로도 쓸모가 많은데, 볼테르와 디드로 등에서 보듯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18세기는 정신문화적 근대화의 맥락 속에서 철학소설의 기틀이 짜인 시대이기도 하다. 루카치나 머독(Iris Murdoch)의 지적처럼 근(현)대는 정녕 소설의 시대인 것.

    그러나 박학한 실학자이면서도 정통 유학자의 틀 속에서 온건했던 이덕무는 초정과 달리 특히 중국에서 들어온 연의소설(演義小說)류를 싫어했다. 소설은 귀신이나 꿈과 같은 헛것을 내세우며 천한 것을 고취하고 경전을 등한시하는 등, 마음을 훼손하는 미혹된 것이라고 매도한다. 그는 초정의 와병도 나쁜 책을 읽는 탓이고, 그와 더불어 <논어>를 강독하면 병조차 물러갈 것이라고 훈계한다.

    18세기 말, 연암의 물가에서 학(鶴)과 물소가 노닐었다. 무심한 듯 곰살갑고, 다정한 듯 서늘하다.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동무와연인] 여자의 조국은 사랑이런가/김영민
    “확실한 것을 버리고 불확실한 것을 찾아 헤맬 이유가 어디에 있겠어요”
    스무살 연상 아벨라르를 향한 엘로이즈 사랑을 매개로 남자의 세상과 화해하다
    한겨레
    »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관련기사]
    동무와 연인/② 엘로이즈와 아벨라르

    조국은 남자의 발명품이다. 광개토대왕의 조국이든 윤도현의 조국이든 그것은 죄다 남자의 것이다. (21살의 내가 군대에 가기 싫었던 이유는, 내 실존이라는 ‘발견’을 조국이라는 ‘발명’ 속에 구겨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효도가 부모들의 발명품이고 우정이 약소자의 발명품이며 연애가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사실과 다를 바 없다.

    여자에게는 워낙 조국이라는 게 없다. 물론 대부분의 여자들도 조국이라는 게 마치 존재한다는 듯이 살아간다. ‘인생연극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혹은 프로이트 식의 ‘마치 ~처럼(as-if)’의 철학에 기대지 않더라도, 조국이 있다는 듯이 사는 것은 꽤 중요한 근현대적 삶의 조건이다. 그리고, 국민의 통상적 의무를 위해서라면 그것만으로도 넉넉해 보인다. (나 역시 조국이 있다는 듯이 선선히 입대했고, 그 조국을 위해서 32개월의 젊음을 바쳤다!) 그런 점에서는 유관순 열사나 한명숙 총리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여자들 역시 충량한 국민으로서 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 조국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에 전념/투신하기에는 사회적 약소자로서의 여성은 너무 현실적이다. 반복하지만, 잘난 남자는 대개 추상적으로 흐르지만, 아무리 잘난 여자라도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부권제 사회이기 때문이다. (가령 사형수들의 유언을 견주어 살펴도 여자의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공적, 사적 의사소통에서 여자와 남자가 달리 반응하고 운신하는 이유 중의 한가지는, ‘조국은 남자의 발명품이며 여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명제 속에 숨어 있다. 애국심이라는 것도 결국은 어떤 제도와 관행에 대한 일련의 반응양식일진대, 무릇 여자는 다르게 반응하며, 그로써 실존적 무국적자로서의 여성적 정체성을 설핏 드러낸다. 아, 명심할지라, 남자들이여, 여자는 남자들의 제도와 체제에 ‘직접’ 순종하지 않는다는 사실.

    요지는, 여자는 사회적 유력자인 남자를 사랑함으로써만 비로소 그의 제도를 승인한다는 것이다. (물론 시속과 세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지적은 아직 별무소용!) 남자의 세계 속에 여자의 조국이 없다는 말은, 결국 여자의 조국은 사랑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남자는 세계를 지배하고 여자는 그 남자를 지배한다’는 통속의 격언은, 공적 영역을 빼앗긴 여자의 약소자적 위상에 대한 반어적 지적만을 담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여자는 사랑을 매개로 비로소 남자의 세상과 화해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확실한 것을 버리고 불확실한 것을 쫓아 헤맬 이유가 어디에 있겠어요?” 이 말은 스승이자 동무였고 또한 연인이었던 아벨라르(1079∼1142)에 대한 엘로이즈(1098∼1164)의 사랑을 요약한다. 그것은 남자의 세상(제도)과 남자(사랑) 사이를 가로지르는 여자들의 기초적 동선(動線)이기도 하다. 한 걸음 나아가, 그것은 루 살로메나 엠마 골드만처럼 신과 조국과 남자의 제도를 뚫어내고 제 자신만의 현실을 찾아내는 여성적 현실주의와 곧장 이어진다. 물론 엘로이즈는 살로메도 아니며 엠마 골드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엘로이즈의 사랑법은 남자의 세계와 묘하!게 어긋나는 여자의 동선을 증거한다.

    아벨라르가 누구던가? 스승 기욤(Guillaume de Champeaux, 1070~1121)과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까지 논파하던 당대 최고의 논객이 아니던가? 사랑이 그의 숙명통(宿命痛)이 되기 전, 그는 당대 정신계의 좌장으로 입신의 탄탄대로를 밟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20살 연하의 제자 엘로이즈의 살을 살살 만지다가 급기야 임신시킨 후, 이를 사련(邪戀)으로 치부한 그의 친지들로부터 궁형의 테러를 당한다. 졸지에 좆을 뽑힌 이 천재적 지식인은 육체의 허약에 따라붙는 만고의 보수주의로 회귀한다; 그의 신앙은 더욱 근엄해지며, 그의 학문은 더욱 추상적으로 변한다. 여담이지만, 실연한 지식인은 더욱 추상적인 학문에 몰두하는 법이라던 바르트, 그리고 자신의 동성애를 숨기기 위해 철학 속으로 도피했다는 누명을 쓴 바 있는 비트겐슈타인 등의 얘기를 참고할 만하지 않은가?




    단숨에 좆의 그 초절한 맛을 잃어버린 아벨라르가 신과 예수를 더 가까이 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낳은 여자를 갑자기 ‘예수의 신부’라고 강변하면서 종교적 회오의 마조히즘에 빠진다. 또 여담이지만, 이들의 사랑은 종교의 현실적 기능에 대한 좋은 방증이다: 종교는 예방이 아니라 참회의 기능이 보다 현실적인데, 이로써 종교가 왜 늘 모자란 사회철학일 수밖에 없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모든 종교의 핵심적 기능은 애도’라는 엘리아스 카네티의 지론도 여기에서 멀지 않다.

    육욕의 쾌락을 잃은 아벨라르가 발밭게 경건해지지만, 여전히 젊고 열정적인 엘로이즈는 현실적이다: “확실한 것을 버리고 불확실한 것을 쫓아 헤맬 이유가 어디에 있겠어요?”라든지, “제게는 아내보다는 늘 애인이라는 호칭이 훨씬 달콤했어요”라고 단언하는 엘로이즈에게 유일한 실체는 연인 아벨라르뿐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황후가 되기보다 오히려 당신의 창녀가 되겠어요.” 아니, 수녀인 그녀에게 아벨라르는 그리스도에 버금가는 ‘나의 주님’이 되는 판국이니 차라리 점입가경.

    연인과 동무의 관계를 살피면서 그 현명한 분별과 실천을 꾸려갈 때, ‘조국’의 문제는 그 관계의 판도를 결정하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요컨대, 남자들은 조국과 명예(<인형의 집>의 가부장 헬머처럼)를 빌미로 사랑에서 멀어지지만, 여자들은 조국을 통해 사랑으로 나아간다. 여자들에게는, 조국이 확실한 게 아니라 확실한 것이 조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사랑이며, 그리고 여자들은 종교와 신조차도 사랑을 대하듯 접근해가는 것이다.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jajaym@hanmail.ne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