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의 책 향기] 삶이 녹아 사리가 되고
  • 김수남 '아름다움을 훔치다'
  •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
    입력 : 2007.07.06 23:13
    • 완벽하게 멋진 이 앞에서는 쭈뼛거리게 되지요? 바짝 긴장합니다. 저이라는 멋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하염없이 초라해서 아예 반감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소박한 이 앞에서는 마음이 부드럽게 풀어지지 않나요? ‘아름다움을 훔치다’(디새집)의 김수남 앞에서는 모진 인생을 살아온 만신들까지 마음결이 곱게곱게 풀어졌던 모양입니다.

      평생 굿판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돌연히 오지의 굿판에서 세상을 떠난 아름다운 사진작가 김수남을 아십니까? 생전에 나는 그를 두 번 만났습니다. 두 번째는 돌아가시기 두 달 전쯤이었지요. 착한 뒷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이었지만, 애환이 묻어나는 삶의 현장을 사랑한 사람답게 나이가 들어보였습니다. 그 나이는 세월에 찌든 나이가 아니라 달관의 나이였습니다.
      왜 그렇게 굿판을 돌아다니시냐는 질문에 씨익, 웃으셨던 우문현답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아름다움을 훔치다’는 바로 그 웃음을 풀어낸 책입니다. 김수남식 언어로 말하면 “세상의 관심밖에서 차가운 세월을 견딘 분”들에 대한 사랑이지요. 그는 정말 만신들을, 박수들을 사랑했습니다. 무병은 세상과의 불화의 징조지요? 만신들은 대부분 사랑을 잃고 사람을 잃고 마침내 세상을 잃은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외로운 사람들이 삶을 지탱할 힘을 잃고 세상 밖으로 쫓겨난 또 다른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굿판을 제 몸처럼 사랑한 남자! 그러니까 그 남자가 사랑한 것은 굽이굽이 사연 많은 삶의 현장이었던 거지요. 꿈틀꿈틀한 건강한 욕망이 짓밟히는 곳, 뜨거운 애욕의 칼이 스스로를 되찌르는 곳, 어처구니 없는 죽음으로 자식을 잃고 말문이 막혀 꺼억꺼억 통곡으로 밖에는 하소연할 수 없는 곳, 그는 그 고통이 정화되는 신명의 과정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을 붙들어두겠다고 무턱대고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냥 그렇게 삶이 녹아 사리가 되는 과정을 사랑했던 거지요. 그리하여 제주도 무혼굿판에서는 큰 심방(제주도 박수무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 “통곡과 신음 같은 슬픔의 소리가 들리는 곳, 몸져누운 망자의 노모 앞에서 차마 카메라를 꺼낼 수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 앉아 있는 나에게 동네 사람들은 ‘무사(왜) 저 심방은 굿 준비는 안하고 울기만 허염수광(합니까)’ 하며 의아해했다. 어떤 할머니는 머리에 썼던 수건을 풀어 나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안사인 심방이 나를 가리키며 ‘큰 심방은 이땅(이따가) 큰 굿 할 때 헐꺼우다’ 라고 말했고 그 때부터 나는 제주의 굿판에서 큰 심방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들을 먼저 보낸 어미의 그악한 통곡 앞에서 감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하고 함께 울기만 하는 마음, 만신들이 어찌 그 어머니 마음을 몰라보겠습니까? 그 마음이야말로 만신들의 마음일 텐데요. 오죽하면 김금화 만신은 그를 ‘사진박수’라 불렀을까요. 그를 보고 싶습니다. 고통을 받아들일 힘을 키우는 굿판에서 생을 긍정하는 힘을 키웠던 그 미소를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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