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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책 향기] 움직이는 것은 사라진다

  • 김아타 ‘ON-AIR’
  • 이주향 수원대교수·철학
    입력 : 2007.06.22 23:55
  • 아마 고흐는 그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살기 위해, 그림을 그렸을 것입니다. 슬픔과 불안으로 요약되는 그의 자화상들은 모두 어쩔 수 없이 붓을 잡아야 했던 자의 고독으로 섬뜩하기조차 합니다. 고흐의 그림 앞에서 진지한, 숱한 관람객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요? 그들 중에 누가 저 무서운 고독과 지긋지긋한 가난을 껴안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그럼에도 왜 고흐 그림 앞에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까요? 영혼의 발작 같은 그림이 세월을 더하고 이야기를 더하면서 아예 신화가 되고 종교가 된 건 아닌지.

    ‘ON-AIR: 뉴욕의 신화가 된 아티스트 김아타의 포토로그’(예담)에서 김아타는 관람객들을 지우고 작품과 미술관만을 남긴 사진을 선보였습니다. “명화를 배경으로 한 공간에서 움직이는 관람객들을 모두 사라지게 하고, 그림과 건물만 소리 없이 남게 될 것이다.” 이상하지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안에 설치된 카메라는 8시간 동안 나비처럼 왔다가는 숱한 관람객을 찍었건만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 속에 사람은 없으니.
    • 그러고 보니까 얼마 전 오르세 미술관전에서의 느낌이 기억나네요. 모로의 ‘오르페우스’ 앞에서 나는, 내가 그림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림이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림은 내게, 목숨과도 같은 말을 품고 품어서 오히려 영원히 침묵의 잠을 자는 마음결을 아느냐고 묻고 있었습니다. 그 느낌을 품고 있던 차에 관람객들이 점점으로 사라진 김아타의 사진을 보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그는 ‘나’를 압도하고 우리를 압도하는 ‘바로 그것’만을 사진으로 남긴 것입니다.

      김아타의 사진은 사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철학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포함한 뉴욕시리즈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정적’(靜寂)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바쁘고 빠른 것들이 모여 있는 현대문명의 심장 뉴욕이 김아타의 카메라를 통과하면, 저승사자의 도시 같은 고요와 정적만이 남습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사라졌으니까요. 자동차들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부끼는 성조기가 사라졌습니다. 움직였던 것은 꼭 그 속도만큼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아타가 말하는 것입니다. 빠르게 움직인 것들은 빠르게 사라진다고. 남는 것은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면서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은 바로 그것뿐이었고, 그것이 그의 ON-AIR 프로젝트였습니다.
    • 김아타가 뉴욕에서 신화가 된 이유는 현대문명의 심장인 미국문화의 공허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바쁘고 빠르게’가 어디 미국문화뿐이겠습니까? 여유 없이 으르렁거리면서 삶이 전장이라고 믿는 현대인들에게 김아타의 사진은 바쁘고 빠른 것은 그만큼 바쁘고 빠르게 사라지는 거고, 남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고요한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수원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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