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불안 / 체스 범우 세계 문예 신서 1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오영옥 옮김 / 범우사 / 1997년 1월
평점 :
품절


또 혼자가 되었다.

논산 훈련소로 떠나는 남자친구 가방에 '체스, 아내의 불안'을 찔러넣었다. 혹여 어둡고 쓸쓸한 밤에 좋은 친구가 될까 해서였다. 그가 가장 힘들 때 내가 사랑하는 작가의 위로를 나누고 싶었다. 내게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런 의미다. 행간을 읽어 내려가면서 독자를 자신의 미로로 끌어들이는 위대한 숨결을 읽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의도에 순순히 몸을 맡기는 것을 즐긴다. 어쩌면 '나'를 해부하고 파헤쳐 내면의 가장 추악한 욕망, 강박증의 덩어리를 끄집어 들어내는 거장의 솜씨를 즐기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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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전쟁과 격정의 시대에 오스트리아 빈에 거주하던 유태인이었다. 한 때 로망 롤랑과 함께 평화주의 지식인 계층을 이끌었고, 브라질에서 그의 두번째 부인과 유럽의 경도에 절망하여 자살하였다고 한다. 개인의 자유를 꿈꾸면서.

뛰어난 소설가이기도 했지만 전기작가이기도 했다. 그 중 "에라스무스 평전"은 특히 유명하다. 그의 특이한 소설 작법은 여기에 기인한다. 마치 '전기문'을 쓰듯 한 인물의 옆에 서서 그의 감정과 심리를 손에 잡힐 듯, 숨이 닿듯이 그려내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소개하는 "체스" "아내의 불안"은 그의 심리 기술의 최고봉이자 소설의 정수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전기적 작법과, 심리의 탁월한 묘사가 가장 잘 드러나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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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유람선의 선상에서, 다혈질 상인이 세계 최고의 체스 마이스터에게 한 수를 청한다. 비참할 정도로 깨져나가지만, 지나가던 사람의 훈수를 듣는다. 결국 그 사람에게 판을 맡기게 되고, 그는 거의 져 가던 판을 무승부로 이끈다. 그는 한 번도 체스를 두어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 나치에 의해 하얀 방에 감금되어 몇 달을 심문 받는 과정에서 우연히 체스 마이스터들의 게임 모음집을 훔쳐내 그것을 달달달 외우고, 자신의 머리 속에서 수 천번 수 만번 체스를 두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상대로 한 체스 게임은 강박증으로 자신을 이끌게 된다.

아내의 불안은 여자의 심리를 파헤치는 데 있어서 그네들 조차 모를 기저의 심리마저 드러낸 소설이다. 일상 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는 수많은 행위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맺어지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주체인 우리마저도 그 이유와 양태를 모른다. 알고 싶지 않은 것 고상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주저하고 감추기 때문일까. 이 소설은 일상생활의 권태 때문에 바람을 피게 된 상류층 부인 '이레네'가 정부의 애인에게 이 일을 들키고 협박을 당하면서 구석으로 몰리게 되는 그녀의 심리를 그린다. 협박에 의해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가정과 일상의 행복이 파괴되는 위험에 처한 이레네는 주위를 새롭게 보게 되는 동시에 그 안에서의 자신의 위상를 깨닫게 된다. 죄책감과 숨김, 그리고 파멸과 구원을 숨가쁘게 그려낸 수작이다.

혼자 집에 오면서, 버스 앞 좌석에 붙어 있는 광고를 봤다. 문자로 궁금한 걸 물어보면 사람이 답변해 준단다. 심심해서 " 논산 훈련소의 하루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라고 물어봤더니, 1분 안에 "하절기 아침 6시 기상해서 6시 30분까지 점호 집합, 7시까지 조식식사후 세면 8시 30분부터 일과 시작, 12시 중식 1시 오후 일과 시작 5시 일과 종료 6시 석식 10시 취침입니다" 라는 문자가 왔다. 다시 한번 " 6시 부터 10시 까지 뭐 하나요? 휴식하나요?" 라고 문자를 보내자 " 제 애인이 논산 조교 인데 ㅋㅋ 6시 부터 10시까지는 일과 시간으로, 종교 행사에 참여할 수 있으며 편지도 쓰고 일기도 쓰고 하고 싶은 거 합니다 ^^ 곰신인가봐요.. 힘내세요" 라는 문자가 온다.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한테 논산 훈련소 일과를 물어봤는데 위로까지 받다니, 우습다. 그가 그 편지도 쓰고 일기도 쓰고 하고 싶은 거 하는 그 시간에, 고된 일과를 끝내고 침대 턱 위에 앉아 슈테판 츠바이크와 좋은 시간 보냈으면 좋겠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원저작자가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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